[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를 읽고
다만 나는 작고 온화하게 오래 타오르고 싶다. 될 수 있다면 누구도 상처 주지 않는, 무해한, 내 곁의 타인에게 작은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모닥불이 되고 싶다. p9
E아줌마가 I아이가 되고 싶었던, 열정 덩어리가 우아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마음. 나는 불쏘시개 같다. 초반 화력이 너무 세서 주위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곤 한다. 불도저 같은 성격을 칭찬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잘 알고 있다. 나의 거침없음이 연약한 친구들에게 때론 크고 작은 상처가 되었음을. 공룡처럼 내뿜던 시절을 반성만 하고 살았는데,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책을 만나고 그 불꽃을 일으키기 위한 연소의 요소가 어쩌면 '선의'였을 수도 있다는 위로를 받게 되었다. 화력의 세기와 지속력은 다르지만, 김민섭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나를 만나고 또 다독여 줄 수 있었다.
1. 헌혈증
은진 대리님은 나에게 늘 따뜻했던 첫 '여자' 선배였다. 특별히 괴롭히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막내에게는 팀원들의 사무적인 말투와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어깨가 굳는다. 경직되어 있던 나에게 늘 따뜻한 미소와 온화한 말투로 말을 걸어준 선배님. 잘하려고 애쓰는 막내를 가장 애써서 알아봐 주었던 분. 그분이 있었기에 낯선 사무실에서도 숨통이 트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혈액암이란다. 나는 대리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때 학생 때부터 열심히 모아 온 헌혈증이 있었고, 고등학교, 대학교, 교회 친구들까지 수소문해서 헌혈증을 모아 그분께 드릴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헌혈증을 모아 왔냐고 울먹이며 놀라워하던 선배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헌혈증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즐겁게 일하기를 선배가 얼마나 기도하고 있었을지. 나는 선배의 응원과 지지를 잊고 살았다.
2. 롤모델 찾기
그 회사를 결국 때려치우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회사는 잘 나갔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경영지원 업무는 그 당시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었던 뜨거운 나에게 시시했다. 영국에 체류한 이후 더 이상 헌혈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_헌혈 간호사님이 어렵게 돌려서 얘기해 준 바로는 영국에서 먹었던 소고기가 나중에 어떤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아직 확인된 바가 없어서 우리나라에서는 헌혈을 받지 않는다고_) 영국에서 만난 인연들의 환대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 나도 저렇게 멋진 노부부로 나이 들고 싶다.'
그야말로 영국 신사였다. 리처드 할아버지는 아내인 주디스 할머니가 식사를 마치고 여자들끼리 즐거운 티타임을 가질 수 있게 매번 설거지를 해주셨다. 아니, 해주신 게 아니라 '본인의 일'이라 생각하셨다. 다 알아듣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종종 그분들의 식사 초대에 흔쾌히(_한 번도 빠짐없이_) 응했고, 선물로 중고 자전거도 받았다. 한없이 베풀어 주시면서도 혹시 내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지 세심하게 나의 감정까지 돌봐주셨다. 영국 음식은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주디스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시는 영국식 디너는 참 고급스럽고 특별했다. 오븐에서 짠 나타나는 통구이 스테이크와 (밀가)루를 볶다가 만드는 전통 게이비 소스, 각종 익힌 채소, 빠질 수 없는 포근포근 삶은 감자, 청포도가 잔뜩 올라간 머랭 케이크까지. 나는 주디스에게 베이킹도 배우고 레시피도 받아왔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한 번도 시도해보진 못했다.
'리처드 같은 남자를 만나야지.'
내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사실 이십대 후반에 만난 남편과 바로 결혼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어머님 생신 때 초대받아, 처음 인사드리러 가게 되면서 리처드 같은 '아버님'을 목격하게 되었다. 소라 껍데기를 조용히 까서 어머님 접시 위에 소복이 올려주시던 모습. 그래, 이런 아버님의 아들이라면? 됐다! 이만하면 됐다!! 우리 결혼할래요?
3. 차사고
"쿵"
부부모임을 마치고 대리기사를 불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막 도착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먼저 내렸고, 기사님이 주차를 하시다가 그만.
"아이고 큰일 났네. 정말 죄송합니다. (허둥지둥 명함을 내밀며). 여기.. 여기로 연락 주시면..."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냥 가셔요. 고생하셨습니다."
(여.... 여.... 여보?!!!!!!!!!!)
"왜 그랬어?"
"아니, 우리보다 나이도 많아 뵈시고, 저거 사고 처리하면 오늘 일하신 것도 다 허탕되실 거고..."
"아니, 그건 그래도. 회사에서 보험 처리할 수도 있고, 차가 이렇게 찌그러졌는데~"
"여보, 차는 그냥 차예요. 찌그러질 수도 있는 그냥 탈 것."
더 이상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때의 나는 더 해댔을 것이다. 그렇지만, 더 얘기할수록 나만 더 쪼잔한 사람이 될 테니 여기까지만 쓰자. 히히. 사실 나도 그이에게 비슷한 용서를 받은 적이 있다. 연애할 때, 남편 회사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좀 늦어지길래 심심해서 주차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남편의 새 차 옆구리를 완전 박살 내 버렸다. 각도가 충분할 줄 알았던 초보는 후진을 너무 좁게 해서 앞기둥에 차가 끼어 빼지도 더 넣지도 못한 채 "오빠~~~" 하고 흐느끼며 전화를 걸었더랬다. 그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지.
차는 그냥 차일뿐이다. 그냥 탈 것.
내가 놀라거나 다치지 않은 것에만 관심을 보여준 사람. 자라온 환경이 많이 달랐기에, 분명 책망과 화를 면치 못할 거라 생각했던 순간에, 늘 예상과 달리 다정한 위로를 받게 되는 게 신기하고 고마우면서도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 선한 남편과 살면서 항상 뭔가 인격적으로 매우 부족한 사람인 것만 같았다. 신혼 때는 정말 이런 '사고'들을 대처하는 '사고'의 차이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던 것 같다. 나의 고민을 잘 알고 있던 친구는,
"네가 더 훌륭해. 화가 안나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거고, 너는 화가 나도 어떻게든 참고 맞추며 살잖아. 그런 노력을 하는 네가 더 훌륭한 거야." 이 말을 해 준 친구의 직업이 판사여서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평생 이 말을 성경처럼 품고 산다. 나에게 진짜 큰 힘이 된 관점이었다. 그 이후로 화, 짜증 불편한 감정이 솟구쳐와도 조금 더 잘 다스리려고 노력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게 위선일지라도 선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남편이 나처럼 이해득실을 따지는 쪼잔한 사람으로 물들지 않고, 내가 남편의 여유로움과 관용을 흡수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이제는 나도 그 어떤 "그만한 일"로 화가 나지 않는다. 괴물에게 괴물의 방식으로 대응하지도 않는다. 내가 잘되기를 바랐던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서 나는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4. 느슨한 연대
함께 브런치 작가가 된 동기들이 있다. 화끈한 첫인상의 나는 또 여기서 어쩌다 회장이 되었는데, 하는 일은 없다. 그냥 작가님들이 계속 읽고 계속 쓰고 계속 건강하기를 바라는, 서로에게 도전이 되고 응원을 주는 그런 카톡방의 투명 왕관을 쓰고 있을 뿐이다. 처음엔 뭐라도 자꾸 하자고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또 사람들에게 부담이나 강박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흐르는 대로, 너무 톡이 많지도 적지도 않길 바라는. 뭘 하라고 강요하지도 뭘 하지 않는다고 내쫓지도 않고 그냥 서로를 가끔 감각하는 느슨한 연결. 나도 그런 몰뛰작당 같은 모임이 있다.
이번에 그중 몇 분과 함께 써온 매거진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는데, 이 느슨한 연대 속에 숨어있던 작가님들의 뜨거운 응원과 지지를 받게 되었다. 아, 어떻게 갚지?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선물하는 혹은 빵을 대접하는 이벤트들을 해보고 싶은데, 뭐가 좋을지 모르겠다. 일단 출판사에서 제안한 [책 무료 나눔 서평이벤트]를 하기로 했는데, 사실 이미 많은 분들이 책을 예약하시고 구매해 주셔서 나의 브런치 글벗들에게 이 이벤트가 반가울지 모르겠다. 그래도 사랑을 전하고 사랑을 받고 그 다정한 주고받음의 시간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다.
https://brunch.co.kr/@jumploogi/331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서평을 남겨주신 분께는 제가 따로 빵선물을 들고 찾아가고자 합니다. 진짜입니다. 헤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