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강화도 마니산 아래.
나도 모르게 속으로 되뇐다. ‘너, 미쳤구나. 정말 여기까지 오다니.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려. 아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여관에 방 하나 잡고, 등산이나 하며 하루 푹 쉬었다 가자. 응?’
내 마음에 동조라도 하듯, 먹빛 겨울 하늘에 한껏 짓눌린 마니산은 그닥 매력적이지도 않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금방 눈발이 날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날씨다.
그렇게 몇 분을 서성이다 마지못해 터벅터벅 산 쪽을 향해 걸음을 뗀다. 20kg이나 되는 배낭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키 작은 나를 꾹꾹 눌러 내린다. 마음속 갈등의 무게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온통 유리로 된 카페가 신기하다 싶은 찰나, 출입문이 살짝 열리며 아주머니가 말을 건네신다. “한동안 서성이시던데,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반가운 마음에 대답보다 먼저 발길이 그쪽으로 향한다. ‘아직 주사위는 던져지지 않았지. 그럼, 그렇고말고.’
결국 산은 뒷전. 강화도 명물이라는 맵싸한 순무김치를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며 젓가락에 탱탱하게 걸쳐진 라면발을 훌훌 불고 앉아 있다. 국물까지 다 비우고 나니, 커피 한 잔은 서비스다. 마니산이고 도보여행이고 다 관두고 난롯가에서 몸이나 좀 녹이다가 해지면 그만 돌아가야지, 하는 유혹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졸리기까지 하다.
“평일인데, 등산 오셨나 봐요?”
“음... 등산은 아니고요. 음... 그러니까, 음... 참성단까지만 올라갔다 내려오려고요.”
“허긴 날이 흐려서 올라가도 경치가 별로겠네요. 날을 잘못 잡으셨네요. 맑은 날엔 주변 경치가 제법 근사하거든요. 근데, 배낭이 엄청 크네요.”
“아, 그게... 제가 도보여행을 하거든요. 여기 참성단이 출발점이고요.”
“어머, 도보여행요? 이 겨울에? 어디까지요?”
“전국 해안 한 바퀴 쭉요.”
“와아, 정말 좋겠다. 멋지네요. 그런 거 아무나 못할 텐데.”
“아무나 못하긴요. 시간 있고 두 다리 멀쩡하면 다 하는 거죠, 뭐. 배낭 좀 맡기고 잠시 참성단에 다녀올게요.”
호기롭게 나서긴 했는데, 괜히 겸연쩍다. 마음속은 여전히 갈등 중인데, 아주머니가 창밖으로 보실 것 같아 발걸음은 제법 씩씩해진다. ‘힝, 근데 이거 아닌 거 아닌가?’
이왕 내친걸음. 기슭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마니산 참성단은 이번이 두 번째. 오래전 둘이 왔었고, 그 하나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산허리를 바람이 때릴 때마다, 괜스레 나는 더 흔들린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기억들. 꽁꽁 언 산 길에 자꾸만 미끄러지는데, 하늘은 점점 사나운 표정이 되어간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마침내 참성단에 도착.
기억 속 참성단은 거의 그대로인데, 사방으로 철조망이 둘러있다. 군부대 초소 분위기다. 해마다 가을이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이 오늘따라 신성함은 간 데 없고 초라해 보인다. 마음 탓이리라.
‘강화도 마니산(江華島麻尼山)’ 여섯 글자가 새겨진 기둥 옆에서 셀프 인증샷을 찍고, 잠시 산 아래를 굽어본다. 흐린 들판과 바다는 황량함으로 동맹을 맺었다. 겨울 들판에서 먹이를 찾지 못한 작은 새 두 마리가 내 근처까지 날아와 언 땅에 대고 온몸으로 절구질을 한다.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나눠 줄 게 없다. 녀석들에겐 운수 없는 날이다. 내 주머니 사정을 눈치챘는지 새들은 이내 날아가 버린다.
잠시 눈을 감는다. ‘천지신명이시여, 제가 이제 전국 해안을 한 바퀴 걸어보려 합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소서.’
하산 시작. 이제 출발이다!
하지만 멋진 출정의 모습은커녕 가파른 산기슭을 두 팔 허우적거리며 내려가기 급급하다. 어느 순간 주위가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후두두두, 후두두두 온 산이 시끄럽다. 쌀알보다 더 굵은 싸락눈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사납게 얼굴을 때린다. 몇 번을 미끄러지고서야 간신히 평지에 도착한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배낭을 찾아 가게를 나서는데, 아주머니가 갓 구운 따뜻한 군고구마 몇 개를 봉지에 담아주시며 성공을 빌어주신다. 뭉클한 마음으로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천천히 큰 길가로 향한다.
대장정을 격려하는 팡파르 대신 어둠 내리는 신작로만 구불구불 이어진다. 눈발에 비가 섞인다.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낯선 길에서 배낭 방수덮개를 꺼내느라 허둥대고 있노라니, 괜히 처량하다.
‘오늘은 그냥 근처 여관에서 묵고 내일 아침 출발할까? 좀 있으면 어두워질 텐데.'
'아니지. 그래도 첫 날인데 좀 걸어줘야 되는 거 아니겠어? 그래, 좀 더 걷자. 초장부터 꾀부리면 곤란하지.’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 결정은 무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랑비는 굵은 비로 변하고 사방은 이미 어둠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어쩌다 느껴지던 인기척도 끊겨, 아주 가끔 매섭게 곁을 지나는 자동차가 반가울 지경이다.
이정표에서 강화 읍내 방향만 계속 확인하며 걷는다. 읍내엔 당연히 여관이 있을 테니 오늘은 읍내에서 자고, 내일은 동쪽 강화대교 방면으로 이동한 뒤, 동쪽 해안을 따라 쭉 남하한다. 아까 가게에서 들은 조언이다.
하지만, 오늘의 숙박 예정지인 강화 읍내는 점점 오리무중이다.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조차 가늠이 안 되고, 인가마저 드물어지며 점점 무서움이 몰려온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반가울 지경인 이 어둠.
추적추적 비를 맞는데도 배낭 무게 때문에 온몸은 땀범벅이다. 내가 생각한 도보여행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후회막심이다. 어깨는 점점 무너져 내리고, 물집이 잡히는지 아까부터 발바닥도 따끔거린다.
비 내리는 어둠 속의 강화도는 섬이 아니다. 그저 희부옇고 너른 논밭들 너머로 산들이 그냥저냥 놓여 있는 시골일 뿐이다. 사람을 닮은 나무들이 외길의 산기슭에 작정한 듯 서 있을 땐 마음이 쪼그라들어 그 앞 지나기가 골백번도 더 싫지만, 그래도 이건 양호한 편이다. 무심히 비춘 플래시 불빛에 순식간에 한껏 부풀어 오르는 길가의 무덤들은 몇 번이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그동안 살면서 한 밤에 무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마주한 적이 없었던 거다. 설사 있었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일 게다. 풍광 좋은 해안을 따라 우아하게 섬을 걷는 낭만 같은 건 내팽개친 지 오래다. 그냥, 어딘가 밝은 곳에 들어가 이 배낭만이라도 내려놓고 싶을 뿐이다. 첫날, 신고식 정말 제대로다.
저 모퉁이를 돌면 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꾸불꾸불한 시골길, 정말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워지는 여관, 점점 따로 노는 몸과 발, 그리고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후회.
‘아,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반쯤 넋이 나간 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터덜터덜 걷던 중. 와우! 제법 큰 불빛 몇 개가 빨려들듯 눈에 들어온다. 마을이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이런 건가 보다. "살았다!"가 절로 튀어나온다.
아무 집 문이나 두드려야 하는가 싶을 즈음, 다행히 여관 간판이 보인다. 이 시간의 손님은 기대에도 없는지 현관 안의 조명이 어둡다. 벽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다. 네댓 시간은 걸었나 보다.
마니산부터 걸어왔다는 말에 주인장 아저씨가 좀 놀라시더니, 감사하게도 여관비를 만 원 깎아 주신다.
“근데, 여기가 어디쯤인가요?”
“선원면 선행리 찬우물 고개요.”
찬우물 고개? 내내 비를 맞고 와서 그런지 동네 이름마저 어째 으스스하다. ‘전설의 고향’처럼 자고 일어나면 이 여관은 쓰러져가는 초가집으로 변해 있고 근처엔 오래된 우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뭐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럼, 저 아저씨는?
따뜻한 방에 들어서니 배낭과 함께 몸이 무너져 내린다. 몸을 추스르고 어두커니 앉아 한동안 벽과 천장을 두리번거린다. 방안 가득한 형광등 불빛이 현실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찬우물 고개라...
(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 화도터미널 ~ 양도면 ~ 선원면 선행리 찬우물고개 근처. 18Km. )
* 후일담 : 마니산 아래 가게 주인 아주머니께서 ‘석모도’를 권해주셨는데, 동선이 맞지 않아 가지 못했다. 영화 ‘취화선’과 ‘시월애’를 촬영한 곳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했다. 언젠간 인연이 닿으려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