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완성하면

by 살라

완성의 순간은 언제나 이별과 닮았다.
책을 덮고 나면 그들은 나를 떠난다. 더는 내 숨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독자의 폐로, 독자의 맥으로, 독자의 방 안 공기 속으로 옮겨 간다. 누군가는 지하철에서, 누군가는 불 꺼진 방에서 책 속 인물들의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독자가 페이지를 넘길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간격마다 내가 건넨 숨이 얇게 끼어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완성을 믿는다. 나 없이도 숨 쉬는 인물, 그것이 소설의 자립이자 작가의 투명이다.

비워진 뒤의 생활은 느리게 돌아온다. 설거지 물에 손을 담그면 미지근함이 맥박을 기억하게 한다. 시장 입구에서 미나리와 젖은 박스 냄새를 맡으면, 속이 묵직해진다. 고양이가 창턱을 건너뛰는 소리, 현관 입구 센서 등이 한번 깜빡이는 순간, 그런 사소함들이 내 피를 서서히 채운다. 투명은 다시 약간의 탁함을 얻는다. 다음 소설을 위한 재료가 되는, 삶의 침전물.
글은 결국 그 침전물을 걸러내는 일이고, 걸러지는 동안 나는 다시 옅어지겠지.

가끔 묻는다. 왜 이렇게까지 내어주어야 하냐고.
대답은 단순하다. 이야기는 매개를 통해서만 살아 움직인다. 내가 두께가 되어 빛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그들의 표정은 어둠 속에 남아 있다. 내가 투명해질수록 문장 사이의 공기가 맑아지고, 독자는 그 여백을 자기 호흡으로 채운다. 그러니 투명해진다는 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과 심장으로 길을 내주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숨을 비축한다. 들숨을 길게 끌어 모으고, 날숨을 아껴 둔다. 피를 뜨겁게 데우고, 체온을 한 겹 더 입는다. 다음 인물에게 건넬 체온을 담은 한 숨, 한 방울의 피를 준비한다. 언젠가 또 완성의 순간이 오면, 나는 다시 유리처럼 얇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얇아진 나를 통과한 이야기들이, 어느 밤 누군가의 방을 환히 밝힐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내 생명이 문장으로 옮겨 가는 동안,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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