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기억

by 허니모카


친구와 대화 중에 영화 ‘라라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 또한 좋았던 영화라 호응을 하며 들었는데, 우리가 영화에 대해 공감 혹은 감동을 받았던 포인트는 달랐다. 친구는 여주인공(엠마 스톤)이 꿈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깊은 공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모 혹은 고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 꿈꾸는 일에 대한 열망을 말하는 장면이었나 보다.


듣는 순간, 그런 게 있었나? 물론 여주인공이 배우를 꿈꾸고 열망했던 건 아는데, 그런 장면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듣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난 라라랜드를 보면서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기에 여주인공이 카페에 들어와 피아노 치는 남자를 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라이언 고슬링)가 치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만약에...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장면 말이다. 일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했다면 그 인생은 어땠을까. 그래, 그것도 나름 괜찮았겠지. 그럴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하는 장면. 하지만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었다. 연주가 끝나자, 감정을 정리하고 일어난다. 아주 짧은 꿈처럼.


난 그 장면이 가장 좋았다고 하자, 친구는 어, 마지막도 좋았어. 하고 한 마디로 압축해버렸다.



영화에 대한 기억이 달랐던 경험이 또 있는데,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다. 밀양을 보고 나서 가슴이 답답했었다. 전도연의 연기에 탄성을 지르며, 그녀의 표정과 눈빛에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답답함을 느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공감을 넘어 속이 타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재미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영화야’라고 치부하고 말면 좋을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영화 속 장면이 자꾸 되새김질된다.래서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감정이 남는다. 영화가 끝나고도, 다 먹고 남은 팝콘 통을 버리듯 툭 버리지 못한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홍종두(설경구)한공주(문소리)가 사랑에 빠졌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들(경찰이었나?문소리의 오빠였나?)이 설경구를 억지로 떼어놓고 데려갔을 때, 문소리가 울부짖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뇌성마비여서 말을 하지 못하는 자의 울부짖음은 아무도 듣지 못한다. 그녀가 사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저 남자가 나에게 나쁜 짓을 했다가 아닌, 우리는 서로를 원했다, 였는데 말이다.



밀양에서도 아이를 잃은 전도연이 하느님을 거부하고, 신을 따르는 목사의 믿음을 가볍게 짓밟으려 유혹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많은 말을 품은 듯한 전도연의 눈빛이 뇌리에 박혀있다. 그리고 교인들 사이에서 전도연이 ‘거짓말이야’ 노래를 틀어놓던 장면도. 영화 <밀양>은 아이를 잃어버린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인가 우연히 밀양의 포스터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첫 번째는 이 영화에 송강호가 나왔었나? 싶어 놀랐고, 두 번째는 ‘이런 사랑도 있습니다’라는 카피에 놀랐다. 이 영화가 사랑 얘기였어? 송강호가 전도연을 사랑했다고? 전혀 기억에 없었다. 궁금증을 해소할 겸 다시 볼까도 싶었지만, 보고 나면 또다시 큰 돌 하나가 가슴을 짓누를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이노우에 마사지가 쓴 <한 개라도 백 개인 사과>라는 동화책이 있다. 과일 가게에 놓인 사과는 하나지만, 그걸 본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생각을 한다는 내용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같은 영화지만, 모두 제각각 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한다.


오늘 본 영화 혹은 내일 볼 영화는 또 어떤 식으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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