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영화 촬영장이 되다

영화 <탐정 리턴즈>

by 허니모카

2017년 여름 어느 날.

외출 후 돌아와 보니, 현관문 앞에 종이 한 장이 붙어있었다. 촬영 장소를 섭외 중이라는 제작부의 요청 혹은 안내문이었다.

이게 뭐야? 생전 처음 보는 문장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남겨진 번호로 당장 전화를 걸었다.


곧 제작부의 팀원이 전화를 받았고, 집을 방문해서 살짝 이곳저곳을 보고 사진도 찍었다. 매우 예의 바르고 겸손했다.


그런 후, 며칠이 지나 감독, 조명감독, 촬영감독 등의 주요 스텝 분들이 다 같이 집으로 와서 직접 둘러보았다. 한 열 분 가량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촬영 장소로 선정됐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우리 집에서 영화 촬영을 했다.


우리 집이 나오는 건 단 세 씬.

장소는 거실과 아이방, 주방, 그리고 안방 약간.


그 영화가 올해 여름 개봉했고, 전편보다 많은 관객수를 모았다. 바로 <탐정 리턴즈>다.



우리 집은 극 중 전직 경찰 노태수(성동일)의 집으로 나온다. 몰랐는데, 1편도 우리 아파트의 한 집에서 촬영을 했단다. 그래서 2편도 역시나 같은 아파트에서 물색 중이었는데, 저층을 선호했던 스텝들에 의해 우리 집이 선정된 듯하다. 기간은 2박 3일이었다.


평소에 영화에 관심이 많아 신기한 경험이 될 것 같아 신청했다. 방학기간이 아닌지라 밖에서 자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감수하고.

혹여나 촬영하는 걸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촬영 분위기가 정말 궁금했었는데 ㅜㅜ)


촬영 전날 낮에 세팅을 하러 스텝 분들이 오셨다. 그 날은 집을 비우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세팅하시는 걸 봤다. 거실에 있는 가구를 서재로 몰아넣고, 새로운 소품으로 싹 재배치하셨다. 마치 이삿짐센터에서 나오신 냥 신속하고 정확하게. 우리 집에 없던 피아노가 거실 한쪽을 차지했다. 아이방의 침대와 책상은 그대로 사용했다.


새로운 분위기의 집이 신기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이면 모를까 그때는 그저 다른 집에 온 느낌일 뿐이었다.


다음날 촬영일엔 낮에 스텝분들이 오셨고, 집을 비워야 했다. 오후에 아이들과 아파트 정자에서 놀다 우연히 스텝들과 지나가는 성동일 씨를 봤다. 화면과 같았다. ^^


남편 퇴근시간이 됐을 땐, 숙소로 잡아놓은 곳 근처에서 저녁을 먹느라 집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 남편이랑 아이들과 같이 보쌈을 먹고 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너희 집 앞에 이런 게 있다, 라면서.

사진엔 집 안을 환하게 비추려고 거실 창 밖으로 달 같은 조명이 떠있었다. 신기했다.




작년 겨울, 이사를 했다. 그 집은 이제 추억으로 남아있는 옛집이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영화를 봤는데, 느낌이 새로웠다. 지난 추억의 뜬금없는 소환이랄까.

그 집에 살 때 영화를 봤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세트장에 온 느낌이 좀 더 생생히 났으려나.


영화에서 우리 집은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

세 씬이 맞긴 한데, 분량은 아주 적었다. 그나마도 풀샷이 아니어서, 거실이나 주방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거의 바스트샷과 클로즈업이 대부분이라 배우들의 얼굴만 보였다.

그나마 아이방은 베란다까지 보였고, 나만이 아는 우리 집의 소품들이 영화에 보여서 아, 저거! 하면서 자동으로 손가락이 올라갔다.

밖에 있던 은은한 조명달빛으로 변해 아이방 창문으로 새어 들어왔고, 덕분에 조명이 주는 색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1년도 지난 지금, 기억에선 아련해졌지만, 그래도 재밌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 가지 힘들었다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생각지 못한 엄청난 모기의 습격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추억.)


/ 영화에 대한 평은 살짝 지나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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