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 구한 아파트 근처에 시장이 있었다. 친정과 가까워서 결혼 전에도 엄마와 같이 가끔 시장을 가곤 했지만, 그때의 기억보단 결혼 후의 기억이 더 강하다. 육아휴직 후 본격적인 살림을 하면서부터 이삼일에 한 번씩 시장을 갔었는데, 유모차를 끌고 시장의 끝과 끝을 오가며 장을 봤었다.
장을 보면서 검은 비닐봉지가 늘어나면, 유모차가 점점 무거워졌다. 가벼운 짐은 유모차 손잡이에 끼우고, 무거운 짐은 유모차 아래 작은 칸에 넣었다.
아이가 어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이 들기도 했고, 장을 다 보지 못했는데 참지 못하고 집으로 가자고 할 때도 있었다. 칭얼거릴 때마다 제자리에서 유모차를 왔다 갔다 하면서 금방 갈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달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레 가지 못했고, 친정을 가면 어쩌다 한두 번 들렀다. 그 후 몇 년 뒤, 친정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는 그 시장을 찾을 일이 없어졌다. 한참을 못 가보다가, 작년인가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시장에 잠깐 들른 적이 있다.
과일가게, 떡볶이 가게, 건어물 가게 등 즐겨가던 곳이 여전히 있었고, 가게 주인도 같은 분이었다. 달려가 인사는 하지 않았지만, 지나치면서 괜히 혼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얼굴에 세월의 흔적만 더해졌을 뿐,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표정이었다.
아, 여전하시구나.
이 곳은 여전히 같구나.
당연한 건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사를 가서도 살던 대로 살 듯이, 그분들도 그들의 터에서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고스란히 같은 자리에 시간만이 내려앉은 걸 본 기분이었다. 그래서 반갑고 평온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 폴 아웃>에서 에단 헌트의 부인(미셸 모나한)이 루터(빙 레임스)에게 에단의 안부를 물어보자, 루터가 이렇게 말한다. “에단이야 여전하죠.” 이 대사를 듣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후 한참을 가보지 못했지만, 그 시장은 여전히 활기차고 그곳의 사람들도 여전히 밝고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명절 때면 반찬가게에서 녹두전 반죽을 팔았었는데.. 이번 추석에 한 번 들를 걸 그랬다. 그 맛도 여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