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단함 속에 따스한 숨결
<글쓰기 최전선> 책으로 처음 만난 은유는 어느새 내 마음속 ‘최애 작가’입니다. <쓰기의 말들>을 잇달아 읽고, <올드걸의 시집>을 곁에 두고 바라만 보아도 좋은 책이라 구매한 지 2년 만에 비로소 펼쳐보게 되었네요. 삶을 향한 은유 작가의 깊고 집요한 시선, 그 안에서 끌어낸 사유의 밀도는 내가 닮고 싶은 글쓰기의 태도입니다. 그 태도에 따라, 나도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언어로 길어내는 힘을 배우고 싶습니다.
40대에 접어든 시기에 써 내려간 <올드걸의 시집>은 은유 작가의 첫 산문으로 2012년 세상에 나왔는데요. 한때는 출판사의 경영난으로 절판되었지만, 독자들의 진심 어린 요청에 5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절판이라는 쓸쓸함 끝에서 복간이라는 애틋한 설렘과 부끄러움을 마주하게 했던 이 책은 작가에게는 ‘감정 꽃다발’같은 존재였다고 말합니다.
책에 담긴 사연을 알고 나니, 은유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더 깊은 여운과 함께 감탄이 절로 납니다. 생활의 자잘한 단면조차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그 안에 숨은 감정과 결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집니다. 우리도 매일 마주하지만 놓치고 마는 순간들을 작가는 언어로 건져 올려, 사유의 결로 빚어냅니다. 자신의 입장과 상대의 마음을 넘나들며 삶의 고단함 속에 깃든 따뜻한 숨결을 전합니다. 그녀의 문장은 재치 있고, 섬세하며 무엇보다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납니다. 어쩌면, 표현이 이렇게 다정할 수 있을까. 그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의 일상 또한 더 깊어지는 기분입니다.
‘올드걸’의 정의는 돈이나 권력, 자식을 삶의 주된 동기로 삼지 않고 본래적 자아를 동력으로 살아가는 존재, 늘 느끼고 회의하고 배우는 감수성 주체라고 합니다.(p14)
즉 올드걸은 사회적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본래적 자아와 감수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네요.
<올드걸의 시집>은 삶과 시의 합작품이라고 소개합니다. 시를 통해 나는 고통과 폐허의 자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법을, 고통과의 연결 고리를 간직하는 법을 배웠다. 일명 진실과의 대면 작업이다.(p18) 48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고통을 직면하고 감각하는 법,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를 갖습니다.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여자로, 엄마로, 작가로 살아가며 겪는 기쁨과 회한, 쓸쓸함을 시와 함께 엮어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전합니다. 읽다 보면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하나씩 떠올라 서툴지만 나도 모르게 글감의 얼개를 조심스레 짜보게 됩니다.
사랑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p38) 작가의 사랑이란 정의를 접하며 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글감을 옮겨 봅니다.
결에 머무는 사랑
제목 바람결에 머무는 사랑
사랑이란, 바람결 타고 살랑이는 낯간지럼 없이 내게 다가왔다.
스무 살의 불꽃 같은 열정도,
심장을 뛰게 하던 첫사랑의 떨림도 아니었다.
서른 중반,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작은 일에도 티격태격,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갈등을 지나왔다.
그러는 사이, 딸과 아들이 자라고 우리도 부모가 되어갔다.
어느덧 쉰을 넘기고, 인생의 후반을 걷고 있는 지금
나에게 사랑은, 조용히 곁에 머무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작은 일에도 웃음을 나누는 가장 든든한 내 편.
설레는 감정이 없어도 괜찮다.
지금 우리 사이엔
적당히 익숙하고, 정겹게 맞춰진 마음이 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나란히 걸어가는 삶
이제, 사랑은
어느 날 문득 무심한 듯 스며들어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바람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
그렇게, 내 사랑은 여기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선물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영감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에게는
조용한 거울이 되어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