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위기철, 숫자가 전하는 삶의 통찰

책 속에서 마주한 나 _ 8화

by 뉴우바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위기철 작가의 『아홉 살 인생』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처음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감명은 여전히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펼쳐, 그 감정을 새삼 되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 백여민이 아홉 살 시절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엮어낸 성장 이야기입니다다. 친구들과의 우정, 가난 때문에 마주한 갈등, 첫사랑 우림과의 설레는 순간들, 동네 어른들과 얽힌 따뜻하면서도 씁쓸한 관계가 차례로 펼쳐집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읽히면서도, 결국은 백여민이라는 한 아이가 성장해 가는 여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아홉 살 인생』은 단순한 어린 시절의 회고담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삶의 의미를 되묻는 교훈이, 그리고 어린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솔직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 역시 자기 삶의 한 페이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저자는 스물아홉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해 서른에 마무리했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기대보다 두려움과 허전함을 먼저 불러오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두려움마저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아홉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가득 채운 듯하지만, 동시에 하나가 모자라 미완의 허전함을 남깁니다. 그래서 아홉 살은 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인생의 마디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출발점과 도착점으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착하는 순간은 곧 또 다른 출발점이 됩니다. 인생은 도착이 아닌,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욕망을 더 사랑하지만, 결국 현실 속에서만 살아갑니다. 현실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단단해지고, 그 안에서 삶의 성찰이 가능해집니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생은 우리에게 깊은 배움을 선물합니다.



다름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상대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화를 나누다 보면 왜 저 사람은 나와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까, 이 간격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나의 여건과 주장 또한 쉽게 포기할 수 없으니 공통된 지점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홉 살 인생』의 주인공 백여민이 첫사랑 우림과 겪는 갈등도 그렇습니다. 우림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은 자꾸만 꼬이고, 풀리지 않는 오해가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사실이야.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속만 부글부글 끓이다가 그것 때문에 자존심 상해하지.”(p.163)라는 대사는 그 마음의 복잡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사랑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관계 전반에서 흔히 마주하는 갈등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에게 기대를 품고, 그 기대만큼 실망도 커집니다. 다름을 자꾸 의식하다 보면 이해하려는 마음마저 사라지고, 결국 서로를 향한 말과 행동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작품 속에서는 이런 상황을 “서로 다른 나라 언어로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답답함은 더 커지고,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단순합니다.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상대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다름을 억지로 없애려 하거나 나의 기준으로 끌어오려 할 때 갈등은 깊어지지만, 있는 그대로 두고 보듬을 때 이해의 여지가 열립니다. 결국 다름을 수용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세계를 배척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너그러움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이야말로 관계를 이어가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해법입니다.




『아홉 살 인생』 속 백여민과 우림의 갈등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부딪히는 관계의 모습이자, 다름 앞에서 불편해하는 우리의 민낯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안은 채로 서로 곁에 머무는 방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이 책은 아홉 살이라는 나이를 빌려, 인생의 마디마다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와 관계 속에서 너그러워져야 하는 지혜를 일깨워줍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문득 묻게 됩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떤 마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과 어떤 언어로 마음을 이어가고 있는가.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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