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런 거지”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리뷰

책 속에서 마주한 나 _ 15

by 뉴우바


“뭐 그런 거지.”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죽음을 대할 때마다 이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커트 보니것의 대표작 『제5도살장』에서 106번이나 반복되는, 체념 같고 아이러니한 이 한 줄은 죽음의 안타까움과 전쟁의 참혹함을 의도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든다. 보니것은 바로 그 무감각의 어조로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한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드레스덴 폭격을 배경으로 하지만, 다른 반전소설처럼 참혹한 장면을 정면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조한 톤, 시간의 비연속성, 반복되는 문장으로 전쟁이 인간의 인식과 감각을 어떻게 마비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두가 존엄을 원할 거라고 생각해(p262)”라는 한 문장에 폭력을 멈추는 최소한의 윤리를 건다.


작품의 액자 바깥에는 작가(보니것) 자신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는 옛 전우 버나드 오헤어를 찾아가 전쟁을 회상하고, 오헤어의 아내 메리에게 “전쟁을 미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은 부제 ‘어린이 십자군’(The Children’s Crusade)에 담긴다. 그리고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으로 빌리 필그림이 등장한다.


빌리는 전쟁의 생존자이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다. 전쟁이 끝난 뒤 검안사로 일하고, 발렌시아와 결혼해 물질적으로는 안정하지만, 전쟁 후유증으로 시간의 직선을 잃어버린다. 그는 트랄파마도어의 외계인에게 납치된 뒤 시간 여행을 경험하며 이렇게 믿게 된다. “어떤 존재든, 어느 시점에서든 살아 있기 때문에 완전히 죽은 존재는 없다.(p247)” 그러나 이 관점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고, 그는 철저히 ‘정신이상자’로 취급된다.


소설의 정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폭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에 벌어지는 에드거 더비의 죽음이다. 드레스덴이 폐허로 변한 뒤 시신 수색을 하던 중, 그는 주전자 하나를 훔쳤다는 이유로 총살된다. “전쟁의 영웅”이자 삶에 애착이 깊었던 더비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빌리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독자의 감각을 얼어붙게 만든다. 해설이 짚듯, “비극의 초점은 폭격 장면이 아니라 그 모든 뒤에 일어난 더비의 죽음에 맞춰져 있다(p274).”


보니것은 종교적 은유를 빌려 윤리의 바닥선을 제시한다. “연줄 없는 부랑자 괴롭히지 마라. 절대자와 관련 없는 평범하고 무력한 사람이더라도 괴롭혀서는 안 된다.(p141)” 그가 십자가 사건을 비추며 말하고 싶은 건 대단히 단순하다.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아 죽이지 말아야 하듯, 평범한 인간을 괴롭히지 말라. 거창한 이념 대신 사소하고 일상적인 금지명령을 내리는 점이 이 소설의 도덕 감각이다.


이야기는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축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혼란은 전쟁이 인간의 시간 감각을 박살 낸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말의 새 지저귐 “푸-티-위트?”(poo-tee-weet?)는 의미 없는 소리처럼 들리면서도, 말로 다 닿지 않는 비극 앞에서 인간이 내뱉을 수 있는 유일한 잔여음처럼 남는다.


보니것은 말한다. “전쟁은 늘 있는 것이고, 전쟁을 막는 일은 빙하를 막는 일과 같다는 것이었다. 평범하고 오래된 죽음은 계속 있을 것이다.(p16)” 그러나 전쟁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빙하를 막는 일’ 같은 체념에 그치기보다, 욕망을 견제하고 폭력을 거부하는 사회적 의지로 충분히 막아야 할 일 아닐까.


1969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반전·인권·자유의 물결을 타고 지금까지도 읽힌다.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고도 전쟁의 반인륜성을 더 깊고 차갑게 느끼게 하는 힘.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돌아오는 한 문장.


“뭐 그런 거지.”
그 체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소설을 읽는다.





토요일 연재
이전 13화싯다르타 읽으며, 강을 건너 문장에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