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약 Vs 역사상 최대 사기, 유발하라리 통찰

책 속에서 마주한 나 _ 31

by 뉴우바

사피엔스 농업혁명, 위대한 도약 Vs 역사상 최대 사기


우리는 당연하게 배워왔습니다.

농업혁명이야말로 인류가 수렵과 채집의 불안정한 삶을 끝내고,

안정과 풍요를 얻은 ‘위대한 도약’이었다고요.

그런데 유발하라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농업혁명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식량은 분명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여분이 사람들에게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 시간을 가져다 주진 않았습니다.

대신 유목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인구가 급격히 늘었고, 늘어난 식구들의 식량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오래, 더 고되게 일해야 했습니다.

풍요는 소수의 엘리트가 차지했고,

대다수는 오히려 더 열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책 속 문장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성공적인 진화의 기준은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복사본의 개수다.(p141)

과연 사람이 밀을 재배한 걸까요?

아니면 밀이 사람을 길들인 걸까요?

밀은 사람을 정착하게 만들었고, 출생률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난 만큼 더 많은 노동이 필요했고,

여성들까지 농사일에 동원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모유 대신 죽을 먹으며 면역력이 약해졌고,

전염병은 더 쉽게 퍼져 나갔습니다.

인간의 ‘현명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더 큰 굴레 속에 가두었던 셈입니다.


수렵채집인의 하루 Vs 농경인의 하루


하라리는 수렵채집인의 삶을 “더 다양하고 균형 잡힌 식사, 더 많은 여가 시간”으로 묘사합니다.

사냥이 성공하면 넉넉히 먹고, 실패하더라도 열매와 뿌리, 견과류로 허기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노동 시간은 하루 4~6시간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농경인의 하루는 달랐습니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을 거두느라 하루 종일 땅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갈렸고,

한 번의 흉작은 곧 굶주림으로 이어졌습니다.

‘풍요’를 쫓아 시작한 농업은 오히려 사람들을 불안정한 삶에 묶어두었습니다.

삶의 질보다 숫자를 중시한 대가


하라리는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사피엔스 p145, 유발하라리의 통찰

즉 인류는 더 많은 식량, 더 많은 인구를 성과라고 여겼지만, 정작 개개인의 삶의 질은 뒷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재산, 더 많은 기록을 남기는 것에 열중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만큼 삶이 더 행복해졌을까요?

노동 시간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과로’와 ‘번아웃’이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농업혁명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굴레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부장제는 왜 흔들리지 않았을까


가부장제가 지금까지도 보편적이고 안정된 제도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업혁명 이후 인류는 숫자와 문자를 익히며, 기록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곧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내었고, 인종차별과 성차별 같은 오래된 불평등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녀 간의 차별은 가장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부장제는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하라리는 오히려 그것이 문화적 산물임을 강조합니다.

농경과 산업 사회에서 남성은 식량 생산과 통제를 장악했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최상위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협력, 설득, 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는 남성의 공격성과 지배욕을 권력의 원천으로 합리화했습니다. 결국 가부장제는 근거 없는 신화 위에 세워진 질서였던 셈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은 질문


이 오래된 신화는 지금도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심지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합니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말합니다.

상상의 질서가 과거를 지배해왔듯, 새로운 상상의 질서를 우리가 다시 써 내려갈 수도 있다고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질서를 새롭게 상상하고,

어떤 문화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토요일 연재
이전 29화설득의 기술, 그리스 로마신화 오디세우스 프레임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