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단종의 유배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다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이제 가면 되지?라고 말 할 수도 있으나 아마도 가지 못할 것 같다. 한 때는 오전 시간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혼자 앉아 영화 감상을 하던 날들이 있었다. 혼자 앉아 영화를 보는 시간이 참 행복했더랬다. 바쁜 시간에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고 기다리는 것보다 내 일정에 맞추어서 가고 싶을 때 후다닥 다녀오는 게 더 좋았다. 그 와중에 남편과 코드가 맞는 영화기 있으면 둘이서 영화관도 참 자주 다녔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지 못한다. 이석증이 자주 재발해서 어지럼 증상이 잦은 나는 어느 날부터 화려한 화면의 움직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 사이 코로나시대가 한동안 이어지면서 영화관과는 멀어졌는데, 요즈음도 영화관에 가고 싶지 않다. 또 발생할지 모르는 어지럼의 트라우마 때문에.
"영월 가자."
"갑자기 영월은 왜?"
'청령포 가고 싶어"
"청령포를 뭐 안 가봤어?"
가 봤다. 그것도 아주 어려번 가 봤다. 남편에게 영화의 인기에 대해 말해 주고 함께 청령포를 다녀왔고, 그다음 날 남편은 영화도 보고 왔다. 나는 영화는 보지 못했고, 영월까지 갔지만 청령포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인기 여행지라 사람들이 많아서 못 들어간 게 아니라, 월요일이라 청령포 휴무일이라 맑고 푸른 물이 흐르는 강 건너에서 청령포만 바라보고 왔다. 월요일은 유적지들이 휴무인 걸 알면서도 이렇게 실수를 하고 만다. 아니, 휴일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청령포에 들어가지 못했고, 더불어서 영월에 많은 박물관도 가지 못했고, 365일 휴무가 없는 영월부 관아였던, 홍수로 청령포에서 나와 거쳐했던 관풍헌을 다녀왔고,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만 구경하고 왔다. 그리고 지금은 공사 중이라 막아 놓은. 단종 서거 후 함께 했던 단종의 시녀들이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 옆의 카페에서 영월 동강을 바라보면서 커피는 한 잔 마셨다. 이곳은 안성기와 박중훈 주연의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지이자 옛 영월방송국이 있던 곳이다.
일기장을 뒤적여보니 청령포를 꽤 여러 번 갔다. 일기장에는 없지만 첫 기억은 20대의 어느 날이다. 2월의 어느 추웠던 날, 코트를 벗고 봄 재킷을 입고 가서 엄청 떨었던 기억이 난다. 단종의 유배지라고만 알았지 역사적인 이야기는 잘 모르면서 들렸던 청령포에는 아무도 없고 바람만 불었다. 강 언덕에는 친구의 친구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 부모님이 운영한다는 허술하고 작은 구멍가게가 있고, 줄을 잡아 배를 이동하는 나룻배가 있었던 초라한 시골이었다. 삼촌에게 쫓겨난 어린 단종이 귀양 와서 살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숲 속의 산을 올라갔는데,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쪽은 낭떠러지 절벽이 있는 산이었다. 20 대인 내가 봐도 무시무시한 낭떠러지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여기에 혼자 있었다고? 어떻게 조카 한 테 이런 귀양을 보내? 역사적 상식이 몹시 적었고 지금과는 다른 세상, 아직 경제적이나 모든 분야에서 발전하지 못한 그 시절의 생각은 그랬다. 무섭고 두려웠다. 사람 없는 고립된 땅에 대한 두려움, 어린 단종이 세상과 단절되면서 느꼈을 무서운 외로움이 두려웠다.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는 막막함 어둠.
많은 시간이 흘러 여행자가 되어 중년에 갔던, 또 아이들이 커 결혼을 하고 할머니가 되어서 찾아간 청령포는 잘 가꾸어진 관광지가 되었다. 이제는 역사적 사실도 오래전보다는 조금 더 듣고 이해하는 상황에서 바라본 청령포. 단종의 외로움과 고독과 두려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같은 마음이다. 관광지로 잘 다듬어진 청령포에 들렸지만 600 년 전의 청령포는 첩첩산골이었다. 한양의 사람 많은 궁궐에서 왕자로, 잠시지만 왕으로 살았던 단종이 군졸과 궁녀 50여 명으로 원주 흥원창을 거치고 신림의 싸리치고개를 걸어서 영월에 도착했다. 서강을 건너 청령포에 도착했고, 마음을 나눌 사람 없는 산중에서 소나무 가지에 앉아 울었고, 절벽 위에서 돌멩이를 쌓으며 한양을 생각하고 내일의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얼마나 절망했을까. 단종을 바라보면서 울었다는 천연기념물 관음송을 둘러보면서, 단종이 산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래 탑을 쌓았다는 노산대와 망향탑을 바라보는 마음이 애달프다.
지금의 청령포는 승정원일기를 토대로 단종이 머물던 작은 집도 지어졌고 시종들이 머물던 곳도 지어졌고, 단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열했다는 소나무인 관음송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단종의 한이 씻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지나간 역사에 현대를 사는 우리가 뭐 어쩌지는 못하지만 잠시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청령포를 다녀왔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겠지만 현대의 내 방식대로 잠시 그날들을 이해해 본다. 역사는 역사로 남기면서.
사실 <왕과 사는 남자>의 영화가 보고 싶다. 곧 1,000만 명이 보게 될 영화. 그 천만명 중에 한 사람이 되어서 어떻게 그 시대를 담아냈는지 보고 싶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도 그 이해관계가 다 다른 사람들이 엮여 있고, 지금을 사는 우리의 해석도 다 다를 텐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는 이석증 환자라 어지럼을 달고 지낸다. 화려하고 큰 화면의 움직임에 적응할 수 있을는지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다. 뉴스 화면을 보면 청령포 입구의 관광객 줄이 길다. 영화를 본 그들은 쳥령포에서 어떤 감정을 담아 갈까? 그것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