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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Feb 07. 2022

어디나 있고 어디도 없는 사람들 이야기

불편한 편의점, 공중그네보다 가깝고 현실보다 먼 곳

불편한 편의점.

베스트셀러에 있길래, 표지가 예쁘길래 미리보기도 보지 않고 주문한 소설이었다.


오랜만에 술술 읽혀서 즐겁기도 했지만 작가의 생기 넘치는 표현들이 출퇴근 시간마다 청파동 ALWAYS 24 편의점으로 나를 옮겨다 놓았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전지적 작가 시점의 참된 예랄까. 각기다른 등장인물의 마음을 너무도 설득력있게 묘사한 그의 문장에 무릎을 탁 치기도 씨익 웃어보이기도 했다. 소설가라는 건 프로작가라는 건 이런 표현을 써낼 수 있다는 걸까.


나를 청파동 ALWAYS 24로 옮겨준 표현들

59p. 힘들게 공무원이 되어봤자 결국 좀 더 큰 편의점이 아닐까? 국민의 편의를 봐주는 공간에서 또 다른 제이에스들을 만나는 삶......

108p. 언제나 아들의 탈선에 대해 따지기 바빴고, 그 이유 따위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같지만 다른 '불편한 편의점' & 공중그네


소설의 중반을 달려갈 즈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떠올랐다. 나만의 통찰인 줄 알았건만 검색을 통해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독자가 꽤 많았다.


공중그네에 모서리 공포증에 걸린 조폭, 공중그네에서 어느 날부터 떨어지는 곡예사가 등장했다면 서울의 불편한 편의점에는 극작가지만 글을 못쓰는 작가, 아들바라기이지만 아들과 단절된 엄마 그리고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가족과 멀어진 아빠가 온다.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배반당해 아픈 이들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공중그네와 불편한 편의점은 비슷하다. 다만, 불편한 편의점에 온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는 이들이기에 나는 이 소설이 조금 더 좋았다.


불편한 편의점의 짙은 허구성, 불편했지만 좋았다.


정녕 그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 알바를 하는 00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찰진 설명으로 타 편의점에 스카우트를 받는 00는 어디에도 없다. 작가를 꿈꾸며 글을 붙잡는 00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일상 속 배경 같은 편의점을 차기작의 소재로 활용하는 이는 없다.


우리는 결국 모두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존재다. 평범한 것이 제일 어려운 세상에서 평범함을 담당해 끔 1+1 행사상품 취급을 당하기도, 타자를 그들의 배경쯤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진상 습격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끝내 그 안에서든 밖에서든 우리 고유의 면모를 드러내고야 마니까. 그게 SNS 일수도, 친구들과의 수다일 수도 아니면 일기장 한켠일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누구와도 다른 어디에도 없는 1인이다.


하지만 일상의 무게는 우리를 1이 아닌 0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스스로의 고유성을 인정받기에는 노력이 따르기에 그리고 노력의 결과가 1로서 인정받을 수도 철저히 0으로 짓밟힐 수도 있기에 시도 조차를 묵혀두기도 한다.


그렇기에 불편한 편의점의 허구 가득한 해피엔딩이 반가웠다. 반가워서 불편했지만 끝내 좋았다. 가정을 되찾고, 진로를 찾고, 재기에 성공하는 사람들. 고유의 1로서 충분히 연결되며 삶의 이유를 확인받으며 반짝이게 된 손님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그들이 이따금씩 그리울 것 같다.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108p. 들어주면 풀려요.

251p. 가족한테도...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266p.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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