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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장 Feb 23. 2024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서

팀보이드(teamVOID) 개인전 후기


2021년 9월 문화비축기지에서 진행된 오픈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디지털 아우라"에서 팀보이드의 로봇 팔을 처음 만났다. 당시의 의제는 '아우라를 상실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저서에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930년대를 지낸 그가 아무리 진보적인 미래를 상상했다고 한들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비물질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을까 싶다. 영국 의회 청문회에는 로봇 화가 에이다가 출석해 인간과 미술을 이야기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나보다 낫다. 알고리즘으로 학습된 껍데기 (비)인간이 물질을 그려낸다. 이렇듯 2022년의 비물질은 형체 있는 유령처럼 우리가 보는 현실을 똑같이 마주하거나, 숨 쉬는 척을 하거나, 또는  그 이상을 본다. 팀보이드가 집중하는 이 비물질은 NFT로 변모해 '데이터'라 불리우는 것이 되고, 상업 갤러리라는 공간 안에서 소유하게 되는 NFT를 종이 위에 출력해냄으로써 물질까지 모두 구매자에게 안겨준다. 


가끔씩 멍 때리다 보면 뜬금없이 뇌 주름을 비집고 나오는 과거의 기억이 있다.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웃긴 생각 최고봉은 대학교 2학년 시절이던가, 무더운 여름밤 친구의 자취방 부근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활짝 열어놓은 창가에 앉아 다 같이 빙고를 하는 중이었는데, 어둑한 골목길이 소란스러워 숨을 죽인 채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를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했다 (귀가 달려있으니 들은 것이다). 술에 거하게 취한 누군가 길바닥에 누워있는 듯 했고, 그의 친구들은 어마 무시하게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차례 낙오자를 들쳐 매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한 듯했고,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조용한 한숨 소리와 함께 욕설을 쏟아낸 이도 있었을 터, 누군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새벽 2시 조용한 골목길에 울려 퍼진  그의 한 마디 문장은 묵직했고, 약간 웅장했다.

"야, 내가 머리 들게. 너는 다리 들어." (그 뒤로 웅성웅성 대는 소리.. ㅇ,,어,,! 나는 팔 들게,,!! 나는 신발!! 웅서웅ㅅ,,,)

그의 말을 끝으로 각자 맡은 부위를 담당하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확히는 그 소리를 들은 것이다) 친구들의 우애와 단합에 눈물을 흘렸다. 하나도 안 웃기다면 죄송하지만 당시 너무 끅끅대며 숨죽여 웃다 울었던 탓에 아직도 이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살면서 분업의 참 의미를 깨우친 것은 산업사회 이후 1승을 거둔 국부론을 배웠을 때가 아닌, 저들의 눈물겨운 사회적 분업을 마주했을 때였다. 원앤제이갤러리 전시장에 그득히 자리 잡고 있는 로봇팔들 역시 컨베이어 벨트를 앞에 두고 열심히 분업 중이다. 전시 제목이 대놓고 그러하듯, 이곳은 '대량'에서 '주문' 생산으로 초점을 옮겨온 현시대의 공정을 닮아있는 안국역 근처의 어느 '공장'이다.


"야! 내가 파란 펜으로 점 찍을게. 너는 노란 펜으로 색칠해."


사실 NFT를  전시장에 방문해서 구입할 이유는 딱히 없지만, 팀보이드의 NFT는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이 더 값진 듯하다. 설명문에 인쇄된 QR코드를 타고 들어가 솔라나를 매수한 뒤, 1 솔라나를 주고 오픈시에서 NFT를 구입하면 그 즉시 내 눈앞의 분업 노동봇들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내가 구매한 토큰의 데이터를 종이 위에 찍어내기 때문이다. NFT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던 경험 덕에 감성 0퍼센트의 마우스 클릭으로, 또는 숫자로 움직이던 데이터 메커니즘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나는 ENFP 인간이다.

오늘의 1 솔라나는 한화 4만 5천 원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가격 너무 땡큐-하며 바로 빗썸에 잠들어있는 내 9만 원으로 솔라나 구매를 체결하려 했지만 네트워크 오류로 거래가 제한된다고 한다. 알고 보니 10월 1일부터 솔라나는 거래소 입출금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 본 전시는 10월 7일에 시작했고, 구매자들은 이미 솔라나 홀더였다는 뜻이 되는데... 개부럽다 갤러리도 이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판단한 것일까?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구매 이전의 NFT는 '원형 또는 사각형 안 n개의 획' 정도의 글로 이 데이터가 가시화되었을 때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설명할 뿐, 실제 데이터의 생김새는 구입 이후에 실물을 확인함으로써 만나보게 된다. 가만히 보면 NFT라는 개념이 자랑하는 원본 및 유일무이함의 가치를 선사함은 물론, 그것을 실물로 찍어내 나만의 공간에 전시할 수 있는 과시욕을 충족시켜주고, 스타벅스 럭키백 수준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며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살살 긁는다. 그래서 더 갖고 싶다.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이 데이터 또는 드로잉!


내가 전시장에 들렀을 때에는 솔라나 홀더 중 누군가가 NFT를 구매했는지 로봇들이 열심히 드로잉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동료분이 곧이어 방문한 시간에는 다들 쉬고 있었다고 한다. 솔라나를 먹여야 굴러가는 기계들, 퇴사 노래를 부르다가도 월급이 들어오면 기계처럼 눈을 뜨고 회사에 가는 나처럼 자본주의의 노예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에 잡아먹힌 기계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전시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자동화되고 이는 최근 공정의 흐름", "공장 속 인간의 등장을 배제하고 있으며" 등과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 소외를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창작의 선을 부드럽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팀보이드의 로봇팔이, 영국 의회에 다녀온 에이다가 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놀랍지  않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점은 결국 로봇 역시 자본의 힘으로 움직이는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건 거의 소외가 아니라 공생 아닌가? 저 친구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죄책감마저 느껴져 나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쳇바퀴 속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갤러리 한편에는 정말 무언가의 제조 공장처럼 종이, 잉크, 펜 등을 놓는 선반이 놓여 있었는데, 이 또한 전시의 일부로 잘 녹아들어 있어 사진으로 남긴다.)


눈으로 보기에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종이 위의 데이터


데미안 허스트는  NFT로도 존재하는 실물 작품을 물질로 간직할 것인지 데이터로 소장할 것인지 구매자에게 선택의 시간을 준 뒤 며칠 전, 후자를 선택한 이들의 실물 작품을 태워버렸다. 절반이 넘는 이들이 실물 유지를 선택했다는 결과는 2022년 10월 11일 기준 인류의 과반 이상은 여전히  현실 세계에 발 디디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더 정확히는 컬렉터의 과반 이상이라든지). 이 퍼포먼스야말로 그것이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미술 작품의 가치 중 하나는 '원 앤 온리'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음에 틀림이 없다. 원 앤 제이 갤러리에서 로봇팔이 펼치고 있는 팀보이드의 퍼포먼스,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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