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9시.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2살, 5살 아직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자는 안방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모두 노곤해져 있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아이들이 잠들면 나가서 남은 집안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 아버님한테 전화왔는데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응급실로 실려가셨대. 경기도의료원 가셨다가 거기서 안되서 천안 단국대로 가셨다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들리는 남편의 외침에 눈을 뜬 나는 불을 켰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늘 두려워하던 그 날이 오늘이구나.
갑자기 울음이 났다. 틀어막아보려해도 흘러나오는 눈물과 "엄마.. 엄마..." 하고 낮게 새어나오는 소리. 아이들은 놀라 벌떡 일어났고, 아이들 옷까지 다 입히자마자 대충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1월. 무척 추운 날 밤이었다. 남편은 최대한 액셀을 밟았고 나는 동생과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야? 어떻게 된거야?"
보호자가 한 명만 동행할 수 있어서 동생은 엄마와 함께 응급차를 타고 천안 단국대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아빠는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고.
"오빠, 빨리 가요!"
밤 11시가 되어가는 늦은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병원으로 가는 국도에는 우리 차만 있었다. 30분의 시간이 참 길게도 느껴졌다. 가는 내내 마음은 방망이질 쳤다.
엄마는 한 달 전부터 움직이지 못하셨다. 두 딸의 부축을 받아 겨우 화장실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시던 것도 한 달 전부터는 휴대용 변기를 사용하실 정도로 기운을 못차리셨다. 하루종일 누워계시거나 잠시 앉아 계셨다.
동생에게 들어보니, 저녁에 누워있는 엄마의 패드를 갈아주는데 엄마가 갑자기 숨이 찬다고 했단다. 그러더니 쇼크가 왔는데 동공이 커지면서 눈을 못감고 숨을 못쉬며 정지되어 버렸다고 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휴대용 산소통으로 겨우 호흡을 시키고 구급차를 불렀다고 했다. 외진 시골집이라 구급차가 오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 긴박한 순간 현명하게 대처해 준 동생에게 참 고마웠다.
그래. 돌아가신 건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병원으로 향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눈물은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흘렀다. 엄마... 그 단어만 마음 속으로 계속해서 불렀다.
"엄마... 이렇게 가면 안돼..."
병원 응급실 입구에 도착해보니 응급실 안에는 보호자 한 명 밖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남편와 아이들은 할 수 없이 차 안에 있고 나는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입구에서는 보호자 명찰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 돌아가실 수도 있는 분이라고 했더니 확인 후 들여보내 주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계시는 엄마의 모습. 환자복의 상의가 다 펼쳐진 채로 가슴에는 알 수 없는 호스들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코와 입에는 산소호흡기를 하고 엄마는 의식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를 발을 동동 구르며 미친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 엄마.. 여기 왜 있어. 이게 뭐야. 엄마 정신차려. 엄마..."
앙상하게 마른 엄마의 몸은 종잇장 같았고, 가녀린 몸에 달려 있는 많은 기계 줄들은 엄마가 정말 심각한 상태임을 말해 주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