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예시: Personal Computer
지난 포스팅에서 나의 개똥철학 1번인 '종과 횡의 법칙'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했었다.
기술이 기술 자체로 의미를 가지며, 어떠한 세상의 문제를 풀 수 있을 수준까지 발달하고 성숙되는 구간이 '종'. 성숙한 그 기술이 실제 세상의 문제를 풀며, 사업적인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 구간이 '횡'.
가장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는 물방울로 Personal Computer를 생각해보자.
(PC는 CPU, 메모리 등 H/W부터, O/S,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언어 등 S/W까지 수많은 기술과 제품의 결집체인데.. 설명의 편의상 이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퉁쳐 일반화한 것에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려요)
최초의 PC라고 하면 어떤 것들을 떠올릴까? 아마도 아래 녀석?
하지만, 이보다 2년 전인 1974년에 MITS사에서 알테어8800이라는 최초의 PC를 출시했었다. 인텔의 8080이라는 8비트 CPU(2MHz에서 동작하였고, 64KB의 메모리를 다룰 수 있었다고 함)를 탑재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알테어 베이직'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회사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1976년에 Pertec Corporation에 $6.5M에 매각)
뒤를 이어 1977년 출시한 Apple II와 1980년 출시한 Commodore VIC-20(판매가 시작된 첫 1년 동안 백만 대 이상 판매됨)가 본격적인 상업적인 성공을 시작하며, 이제 Personal Computer라는 물방울이 성숙되고 확산되어 '종'의 구간을 마치고, 세상의 문제들을 풀기 위한 '횡'의 구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Personal Computer라는 물방울이 '종'의 구간이었던 이 당시를 살고 있는 VC라면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했었어야 할까? 이 구간에서는 물방울이 완성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PC가 성숙되고 완성되기 위해 필수적인 제품/기술 카테고리 별로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검토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CPU/메모리
- Intel: 1968년 창업, 초기에는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함. 1971년부터 전자계산기에 사용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생산을 시작으로 8bit CPU인 8008, 8080, 8085등을 출시함
- Zilog: 1974년 창업, 인텔의 8080과 호환되며 가격경쟁력은 더 높은 자일로그 Z80 시리즈가 80년대에 많은 PC에 사용됨
하드디스크/플로피디스크 등 저장매체
- IBM: 아쉽게도(?) 하드디스크는 1956년, 플로피디스크는 1971년에 IBM이 최초로 개발함. 이미 너무 크게 성장한 기업이기에 투자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PC 설계/제조
- MITS (Pertec에 1976년 매각 @$6.5M), Apple, Commodore 등?
드디어, 상업적 성공으로 확산이 이루어진 Personal Computer는 어떤 문제들을 풀며 '횡'의 방향성으로 확장이 가능했을까? 아마도 '디지털'이라는 키워드에서 소외되어 있었을 중소 규모의 비즈니스 환경이 가장 풀려야 할 문제가 산재되어 있는 전장이었을 것이다. 큰 규모의 기업에서는 메인프레임/터미널 형태를 통해 컴퓨터의 힘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을 테지만, 중소 규모에서는 수기나 간단한 전자기기로 모든 일들이 처리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주판을 사용해서 회계 등의 업무를 처리하던 것이 불과 40여 년 전이다. (플로피디스크를 본 적이 없어, 오피스 S/W의 저장 버튼 아이콘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께는 여전히 고대 유물스럽게 느껴지겠지만..)
하지만 당시에는 상업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에 주판을 활용한 계산 과목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 그것을 배우는 주산/암산학원이 성행했었다. (사실 저도 어린 시절 열심히 다녔더랬죠...). 또한, 실력에 따른 등급을 획득할 수 있었는데, 취업이나 진학에 큰 도움이 되었었다. 지금의 컴퓨터 관련 자격증 따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사무실에서 이를 활용하여 많은 업무가 진행되었다. 지금도 숫자를 많이 다루는 회계팀, 마케팅팀 등에서는 당시에 주판을 사용해서 계산을 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 너무나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 '횡'의 구간에서 수면 위에 산재되어 있는 풀려야 할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Personal Computer의 '횡'의 구간이 시작되고 나서 실제로 바로 풀렸다. 바로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S/W인 Apple II 용 VisiCalc가 바로 그것(5개 열과 20개의 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함)
지금 Numbers, excel, 심지어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비교해도 조악하기 짝이 없지만, 비교 대상을 주판/전자계산기 + 볼펜 + 보고서 용지로 생각해본다면.. 음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이지 않았을까? 그 '천지개벽' 때문이었는지, 1977년 출시된 Apple II는 VisiCalc의 출시와 함께 판매량이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1983년 '멀티플랜'이라는 제품명으로 스프레드시트 S/W 출시 후, 당시의 수많은 기종으로 출시가 되며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1985년에는 매킨토시용으로 '엑셀'이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하였다.
디스플레이/사운드와 같은 기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던 초기 Personal Computer에게 있어서, 산업의 성장을 이끈 견인차는 누가 뭐래도 이러한 스프레드시트 S/W였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어떠한 기술이 '횡'의 구간으로 접어들게 되면, 그 기술 물방울이 어떠한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상상하고, 그러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스타트업을 투자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VC의 일 인 것 같다.
당시의 사무환경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스프레드시트 외에도 현재의 워드(Pages)나 파워포인트(Keynote)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있었다. 당연히 예측 가능하겠지만, 수기나 타자기(수동/전자) 또는 일체형 워드프로세서 등을 활용하여 보고서를 작성/편집(이라기보다는 다시 쓰고, 다시 치고.. OTL)하는 것은 말도 안 되게 불편한 일이었을 것이고.
또한, 다수에게 자료를 브리핑/보고하는 상황에서는 그래도 멀티미디어를 활용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환등기를 사용하거나 (철커덕하고 필름이 넘어가는 이 아날로그 갬성..), 아주 큰 종이에 수기로 작성한 내용을 설명하고 큰 막대기로 한 장씩 넘겨야 하는 방식(영화에서 사건 브리핑을 하는 형사들이 이런 장면을 많이 보여줬던 것 같은데, 이런 방식을 뭐라고 명명하는지 못 찾음)도 사용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너무나 불편...
Personal Computer라는 물방울을 잘 이해했고, 이것이 풀 수 있는 현실 세상의 문제를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이는 창업자로서 그 문제를 직접 풀기 위해 S/W를 만들었을 것이고, 또한 어떤 이는 투자자로서 그러한 창업자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투자 검토를 했을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Personal Computer에 이어, Web, Mobile 물방울을 살짝 짚어보면서, 드디어 왜 '14년에 Machine Learning과 AI 영역을 새로운 물방울로써 '종'의 구간에 해당하는 투자 발굴/검토를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