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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침, 뉴욕 점심, 파리 저녁!

초음속 기술이 만드는 지구 1일 생활권, 출신보다 경험을 묻는다

by 미래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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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개봉한 영화 『Jumper』. 주인공은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단숨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한다. 뉴욕의 고층 빌딩에서 순식간에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런던의 도심에서 도쿄의 번화가로 점프한다. 마치 생각만으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이 능력은 그 시절 나에겐 마법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현실의 제약에 갇혀 있는 내게 아주 강렬한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이야기, 판타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정말 그건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을까?




비록 순간이동은 아직 멀었지만, 우리는 지금 그에 버금가는 기술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치열한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초음속 여객기와 저궤도 로켓 기반의 지구 간 점대점(Point-to-Point) 이동 기술은 상상 속의 SF가 아닌, 현재의 기술 로드맵 위에서 착실히 실현되고 있다. ‘서울–뉴욕 5시간’, ‘도쿄–파리 3시간’ 같은 문장은 이제 기술적인 과장이 아니라, 상업적 실현을 앞두고 있는 계획표의 일부다.

만약 이러한 초고속 이동이 일상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 공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도시의 의미는, 국가의 경계는,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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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항공우주 공학의 정수와, 지금도 전 세계 연구소와 스타트업이 밀어붙이고 있는 기술 혁신이 존재한다.


미국 NASA와 록히드마틴이 협력하여 개발 중인 ‘X-59 QueSST’는, 초음속 여객기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소닉붐—즉 음속을 돌파할 때 발생하는 굉음—을 극적으로 줄이기 위해 설계되었다. 전통적인 조종석 유리창 대신 외부에 설치된 고해상도 카메라를 통해 4K 모니터로 비행 정보를 제공하는 'eXternal Vision System'을 채택했고, 충격파를 분산시키는 동체 설계와 상단 배기 시스템을 통해 지상의 소음을 "조용한 쿵 소리(quiet thump)"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2025년 첫 시험 비행이 예정되어 있으며, 이는 육상 초음속 비행을 50년 만에 부활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한편 붐 슈퍼소닉은 상업용 초음속 여객기의 재탄생을 꿈꾸는 대표적인 민간 기업이다. 이들이 개발 중인 ‘오버추어(Overture)’는 마하 1.7의 속도로 비행하며, 뉴욕–런던 간을 약 3시간 3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기존의 콩코드보다 조용하고, 연료 효율성은 높이며, 무엇보다 100%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SAF)를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2029년 상업 운항을 목표로, 이미 미국 유나이티드항공, 아메리칸항공, 일본항공 등으로부터 130대가 넘는 사전 주문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SpaceX는 항공을 넘어 아예 ‘우주 경유’라는 새로운 차원의 접근 방식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그들이 개발 중인 ‘Starship’은 원래는 화성 탐사용으로 설계된 재사용 가능한 로켓 시스템이지만, 이를 활용한 지구 내 점대점 초고속 이동이 병행 연구되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서울에서 뉴욕까지 약 4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단순한 고고도 비행이 아니라,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지구로 재진입하는 복잡한 궤적을 따르며, 이로 인해 엄청난 G-포스, 고온 재진입 열 차폐, 소음, 비상 탈출 시스템 등의 기술적 과제를 동반한다. 하지만 SpaceX는 잦은 테스트와 과감한 실험을 통해 이 기술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고 있다.


Hermeus라는 또 다른 스타트업은 스크램젯 기반의 극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마하 5 이상의 속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군수 및 정부용 수송 플랫폼을 통해 상용화에 접근하는 전략을 취한다. 흥미로운 점은 반복적인 프로토타이핑과 ‘하드웨어 풍부성(hardware-rich)’ 개발 접근 방식을 통해 전통 항공우주산업의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빠른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램제트, 스크램젯, 터빈 기반 복합 사이클(TBCC) 엔진 등은 공기흡입식 제트 엔진의 한계를 넘어 마하 5 이상의 속도에서도 연속 연소가 가능하도록 연구되고 있으며, 극한의 열과 압력에 견딜 수 있는 고온 내성 복합 소재, 나노 기반 경량 구조체, 그리고 공기역학을 최적화하는 전산유체역학(CFD) 기술은 초음속을 넘어 극초음속 비행을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나는 기술보다 더 흥미로운 변화에 주목한다. 기술은 속도를 가져오고, 속도는 거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동안, 이동이 쉬워질수록 물리적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KTX가 한국 안의 산맥과 강을 지웠듯, 초음속 여객기와 로켓 비행은 대양과 대륙마저도 지워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간이 무너지면서 우리 정체성을 규정짓던 것들도 함께 흐려질 수 있다.


예전에는 "어디 출신이야?"라는 질문이 익숙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말투가 달랐고, 음식이 달랐고, 기질이 달랐다. 그게 곧 그 사람을 설명하는 키워드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질문이 점점 유효하지 않아 진다. KTX가 생기고 전국 방송이 일상이 되면서, 한국 안의 지역색은 빠르게 사라졌다. 내 아이 세대는 아마도 서울과 부산, 광주와 대구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지구 전체가 1일 생활권이 된다면?


‘지구 어디든 5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그 변화는 단지 여행의 편리함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거주와 일, 학습과 관계를 더 이상 한 도시, 한 나라에 묶어두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가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유럽의 파리에서 대학을 다니고,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창업을 할 수 있는 삶. 이런 생애 주기는 더 이상 예외적인 ‘글로벌 인재’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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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가 되면,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도 달라질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누군가가, 베를린에서 태어난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그 옆엔 요하네스버그에서 자란 누군가와, 시애틀 출신의 청년도 있다. 과거 같았으면, 그들은 서로의 출신국과 문화 차이부터 묻고 따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게 시작한다.

“너도 지난달 도쿄 게임 위크에 갔었어?”
“나 그때 바르셀로나에 있었는데, 진짜 사람 많았지.”
“혹시 베이징 메타버스 아트쇼 때 있었던 그 퍼포먼스 기억나?”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출신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축적된 경험이다. 국가보다 먼저, 콘텐츠와 경험이 친구를 만들고, 출생보다 앞서, 연결된 여정이 정체성을 빚는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머지않아,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너는 어떤 세계를 지나왔니?

기술은 공간을 지우지만, 우리는 그 빈자리에 삶을 다시 그려 넣는다. 나는 대한민국 출신이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디서 태어났나요?"가 아니라, "당신은 어떤 세계들을 지나왔나요?" 라고. 그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하고 싶다.


나는, 연결된 세계를 살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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