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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알약 타고 출근합니다!

3부 - 절개 없는 수술실, 로봇 군단(Swarm)의 지휘관들

by 미래관찰자

지난 1부와 2부를 통해 우리는 상상 속의 나노로봇과 현실의 기능성 분자들을 훑어보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앞선 두 편의 글은 일종의 ‘준비 운동’이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공상과학소설로 들리지 않도록, 현재 기술의 좌표를 먼저 확인해 두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3부에서는 진짜 미래, ‘수술하는 로봇’의 세계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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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배달부와 칼잡이는 다르다


우리가 2부에서 다룬 기술들은 대부분 ‘약물 전달(Drug Delivery)’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정 암세포를 만나면 약을 터뜨리는 식이다. 하지만 ‘외과 수술’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수술은 화학반응이 아니라 물리적 행위다. 째고(절개), 자르고(절단), 덜어내고(제거), 꿰매야(봉합) 비로소 수술이라 부른다. 2부에서 언급한 분자 단위의 기술만으로는 이 물리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흐물거리는 물 분자가 단단한 바위를 깰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우리 몸속에서 메스처럼 물리적 작업을 수행할 로봇은 과연 가능할까? 놀랍게도 이 기술들은 연구실을 넘어, 임상 시험이나 승인 절차를 밟으며 현실의 문턱을 넘고 있다.



미래 나노 수술 로봇의 5가지 조건과 선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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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 (Mobility): 혈당을 태워 달린다 혈류는 생각보다 거세다. 로봇이 휩쓸리지 않고 목표 지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체 추진력이 필수다. 과학자들은 배터리를 싣는 대신, 혈액 속에 널린 '포도당'을 연료로 쓰기로 했다.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의 셸리 민티어(Shelley Minteer) 교수팀은 체액 속 포도당을 산화시켜 전기를 만드는 '효소 연료전지'를 개발했다. 우리 몸속 에너지를 그대로 사용하기에, 이론적으로 밥만 먹으면 로봇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다.


2. 절단 (Cutting): 빛과 거품으로 자른다 나노 크기의 칼날은 없다. 대신 '빛'과 '거품'이 메스가 된다.

광열 효과(Photothermal): 라이스 대학교(Rice Univ.)에서 시작된 나노스펙트라(Nanospectra Biosciences)는 금 나노껍질(Gold Nanoshell)을 몸에 주입한 뒤 빛을 쏘아 암세포만 태워 없애는 '오로레이즈(AuroLase)'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전립선암 환자 등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며,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캐비테이션(Cavitation): 더 과격한 방식도 있다. 초음파로 미세 기포를 만들어 터뜨릴 때 생기는 충격파로 조직을 물리적으로 갈아버리는 기술이다. 이 기술(Histotripsy)의 선두 주자인 히스토소닉스(HistoSonics)는 2023년 10월 FDA 승인을 받아, 실제 의료 현장에서의 상용 적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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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봉합 (Suturing): 꿰매지 않고 붙인다 자른 뒤엔 붙여야 한다. 체온에 반응해 순식간에 굳어버리는 하이드로겔 접착제나, 형상기억합금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상처를 조여주는 기술이 바늘과 실을 대체할 것이다.


4. 제어 (Control) & 5. 회수 (Retrieval) 깜깜한 몸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pH 농도나 특정 단백질을 감지하는 분자 센서가 필요하다. 임무를 마친 로봇은 스스로 분해되어 소변으로 배출되거나(소모형), 자석 등을 이용해 다시 회수(재사용형)된다. 몸속에 쓰레기를 남길 순 없으니까.


단일 영웅이 아닌, ‘군단(Swarm)’의 시대


이 복잡한 기능을 로봇 하나에 다 넣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래의 수술은 ‘군집 로봇(Swarm Robots)’의 형태가 될 것이다. 마치 꿀벌들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벌집을 운영하듯 말이다.

어떤 로봇은 정찰을 하고, 어떤 로봇은(히스토소닉스의 기술처럼) 조직을 파괴하며, 다른 로봇은 잔해를 치운다. 각 로봇은 단순한 규칙을 따르지만, 이들이 모이면 그 어떤 명의보다 정교한 수술을 해낸다.



외과의사, 지휘관이 되다


이쯤 되면 "그럼 의사는 실직하나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나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본다. 외과의사의 역할은 더 고차원적으로 변한다.


지금까지의 외과의사가 직접 피를 묻히고 메스를 쥐는 ‘현장 작업자’였다면, 미래의 외과의사는 로봇 군단을 운용하는 ‘전략가(Commander)’가 된다. 미래의 수술실은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차가운 방이 아니라, 모니터와 데이터가 가득한 지휘소(Command Center)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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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스크럽(손 세척)을 하는 대신 시스템에 로그인을 한다. 화면 속 3D 지도를 보며 나노 로봇들의 침투 경로를 설계하고, 예상치 못한 혈류 변화나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실시간으로 로봇의 대형을 재조정한다. 손끝의 감각보다 냉철한 상황 판단력이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시대,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수술 사령관'이 되는 셈이다.



수술 동의서 대신 ‘로봇 임무 계획서’를


기술은 이미 우리를 그 세상 입구까지 데려다 놓았다. 나노스펙트라가 임상을 진행 중이고, 히스토소닉스가 FDA 승인을 받아 간암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기술이 일상이 되었을 때, 우리가 마주할 풍경이다.


아마도 2040년의 병원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다. 환자는 수술복 대신 편안한 평상복을 입고 리클라이너에 눕는다. 의사는 환자에게 "마취하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태블릿을 내밀며 ‘로봇 임무 계획서(Mission Plan)’를 보여줄 것이다.


[204X년, 어느 수술 전 대화]


의사: "환자분, 오늘 투입될 '나노 봇 3개 소대'의 작전 계획입니다. AI 시뮬레이션 결과, 종양 제거 성공률은 99.8%이고, 주변 정상 조직 손상 확률은 0.01% 미만으로 설정되었습니다. 만약 혈류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면 B팀은 즉시 '닻 내리기(Anchoring)' 모드로 전환되어 위치를 사수할 겁니다. 이 알고리즘 설정에 동의하시나요?"


환자: "네, 계획대로 진행해 주세요."

이 짧은 대화 속에 미래가 있다. 우리는 ‘집도의의 컨디션’을 걱정하는 대신, **‘알고리즘의 설정값’**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수술은 ‘목숨을 건 도박’이 아니라, 잘 짜인 **‘소프트웨어 실행’**과 같아진다.



우리는 고통 없는 삶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제 칼을 든 의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로봇 군단을 지휘하는 사령관과, 그들을 몸속으로 태워 보내는 알약만이 남았다.


"금일 작전명: 췌장 내 초기 종양 제거. 투입 로봇: 포도당 엔진 탑재 3개 소대. 작전 개시."


엔터키를 누르는 순간, 환자의 몸속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지만, 환자는 그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것이다. 고통은 사라지고, 회복은 빨라지며, 삶은 길어진다.


하지만 기술적 장벽을 넘은 우리에게는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질병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수술이 쇼핑처럼 쉬워진 세상에서, 우리는 생명을 어떤 무게로 바라보게 될까?





1부 - 출혈 없는 수술실, 그 안에서 깨어나는 로봇들


2부 - 현실을 덮쳐오는 미래, 누가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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