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내 친구 X-men ①

상자를 열지 않고 안을 보는 사람

by 미래관찰자

내 친구 중에 X-men이 하나 있다.


물론 영화 속 X-men은 아니다. 하늘을 날지도 않고, 금속을 구부리지도 않으며, 손끝에서 번개를 쏘지도 않는다. 그냥 회사에 다니고, 커피를 마시고, 회의 시간에는 가끔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가 조금 다르다.


그는 상자를 열어보지 않고도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대충 안다.


처음에는 허세인 줄 알았다. 공항에서 내 캐리어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와인 두 병 가져가네?"라고 말했을 때도 그랬다. 가방은 닫혀 있었고, 내가 먼저 말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어보니 정말 와인 두 병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 기분이 묘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조금 소름이 돋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건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꽤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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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비슷한 장면은 몇 번이고 반복됐다. 밤길을 걸을 때 그는 유난히 잘 보였고, 캠핑장에서는 늘 남들보다 먼저 숲속의 동물을 찾아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벽을 잠깐 보더니 배관이 지나가는 위치를 대충 짚어냈고, 택배 상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안에 전자기기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맞았다.


이쯤 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둘 중 하나다. "설마, 우연이겠지." 아니면 "와, 거의 초능력 아니야?" 그런데 둘 다 아주 정확한 말은 아니다.


그는 초능력자가 아니라, 그냥 센서가 하나 더 달린 사람에 가깝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의 뇌에는 시각 피질과 연결된 인터페이스가 있고, 거기에 일반 카메라가 아니라 적외선 정보를 읽어오는 센서가 붙어 있다. 그러면 그가 보는 세계는 우리와 조금 달라진다. 우리는 빛의 반사를 보지만, 그는 그 위에 열의 분포와 미세한 온도 차이까지 함께 읽는다. 뜨거운 컵은 더 선명하게 떠오르고, 햇볕을 오래 받은 벽은 밤에도 다른 표정을 가진다. 사람의 얼굴은 말보다 먼저 긴장과 흥분을 드러내고, 상자 속 물체도 열의 패턴에 따라 어느 정도 정체를 노출한다.


그러니까 그는 세상을 더 많이 본다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본다. 아니, 더 정확히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시각은 사실 꽤 협소한 인터페이스였고, 그는 거기에 센서 하나를 더 꽂아 넣은 사람일 뿐이다.




당연함이 흔들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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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인간의 시각은 너무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빛이 눈에 들어오고, 망막이 받아들이고, 시신경이 전달하고, 뇌가 해석하는 방식. 우리는 그 경로가 거의 자연법칙처럼 고정된 것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최근 뉴럴링크의 Blindsight를 보고 있으면, 이 '당연함'이 생각보다 빨리 흔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Blindsight의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눈과 시신경을 우회하고, 시각 피질을 직접 자극해서 시각 지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원래의 취지는 분명하다.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 다시 시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 이 장치는 2024년 9월 미국 FDA의 Breakthrough Device 지정을 받았고, 현재 미국 내에서 향후 임상에 관심 있는 환자 등록을 받고 있는 단계다. 아직 인간 대상 시술 결과가 공개된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기술이다. 훌륭한 기술이다. 필요한 기술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늘 거기서 생각이 한 번 더 미끄러진다.

이 기술이 정말 시각장애를 해결하는 수준에서만 멈출까?


처음에는 겨우 점과 선만 보이게 해주던 장치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해상도를 높이고,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이게 하고,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원래 인간이 보지 못하던 파장대까지 읽어내게 된다면 어떨까. 머스크는 Blindsight가 장기적으로는 자연 시각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취지의 비전을 언급해 왔지만, 현재로서는 그것이 검증된 성능이 아니라 미래 구상에 가깝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어디를 향하느냐다. 치료로 시작한 기술은 종종 향상으로 미끄러져 간다.




라식도 결국 눈을 건드리는 수술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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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안경을 쓰고, 치아를 교정하고, 라식을 하고, 성형을 하고, 약으로 집중력을 조절한다. 태어날 때 받은 몸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꽤 적극적으로 손보고 바꾸고 교정하며 살아간다.


적외선을 보는 눈, 망원 기능이 있는 눈, 밤을 낮처럼 보는 눈. 그런 것들이 등장했을 때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크다.


라식도 결국 눈을 건드리는 수술이잖아. 이건 조금 더 깊이 들어간 것뿐이지.


이 문장이 무서운 이유는,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거대한 기술적 전환도 막상 사용자의 언어로 번역되면 대개 이런 식이 된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그랬다. 그냥 조금 더 편리한 전화기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기억도, 길찾기도, 연락처도, 사진도, 일정도 바깥 기계에 맡기고 있다. 이미 꽤 많은 부분에서 '내 일부'를 외부 장치에 위탁하며 살고 있는데도, 스스로를 예전과 똑같은 인간이라고 느낀다.


아마 그 감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완전히 맞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종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잘 보이게 되고, 조금 더 잘 듣게 되고, 조금 더 빨리 기억하게 되면서도, 본인은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감각이 바뀌면 세계가 바뀌고, 세계가 바뀌면 판단이 바뀌고, 판단이 바뀌면 결국 그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도 바뀐다.


그래서 나는 이 기술이 흥미롭다. 동시에 조금 무섭다. 시각장애를 돕는 훌륭한 기술이, 어느 날부터는 평범한 사람들까지 욕망하는 업그레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질문은 '이게 가능하냐'가 아니라, 훨씬 더 불편한 쪽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바뀐 내가, 여전히 나인가. 적외선을 보는 내가 나인가. 그걸 보기 전의 내가 나인가. 세상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뒤에도,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친구는 오늘도 여전히 평범하다. 출근하고, 커피를 마시고, 회의 시간에는 딴생각을 한다. 다만 나는 안다. 그는 상자를 열지 않고도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대충 안다.


그리고 아마 미래는, 이런 사람을 더 이상 X-men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는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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