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진 <골드러시>
이방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다.
비단 해외에 나가 다양한 색의 피부로 가득한 사람들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아시아인과 같은 상황도 참 낯설고 어렵겠지만, 그저 한 번도 방문해 본 적 없는 우리나라 시골 마을에 도착해 삼삼오오 오며 있는 아이들이나 어르신들 사이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해 방황하는 상황 역시 참 낯설고 어렵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홀로 동떨어져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런 인간일진대, 자의적으로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외로 삶의 터전을 아예 옮기는 이들이다.
서수진 작가의 소설집 <골드러시>는 그곳에 섞이지 못하지만 섞이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고군분투하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표제작 <골드러시>는 황금빛 미래만을 바라보며 현재를 희생하고 참고 견디는 이들의 이야기다. 꿈을 갖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는 모든 사람이 감내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사는 방식이기도 하고. 그와 그녀는 무엇을 좇았던 걸까. 우리는 무엇을 좇고 있는 걸까.
“그는 온통 붉기만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83쪽)
이민 2세 자녀를 둔 부모의 모습이 그려진 <졸업여행>은 읽고 나니 마음 한편이 싸르르 했다. 해외에서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모든 걸 희생하며 공부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고 있는 걸까. 그 자식이 인생의 전부가 되겠지. 그 자식이 그들 이민의 결과물이 되겠지. 그런 자식이 내가 모르는 모습을 하고 낯선 행동을 하고 있을 때의 당혹감, 낙담,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다.
미군 남자친구를 만나러 미국 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받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입국심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의 사랑을 부정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응당 꿈꾸는 미래를 내 입으로 부정하고 티끌 같은 그러나 타지인들에게는 그보다 무서울 수 없는 공권력을 쥔 월급쟁이들에게 박탈당한 채, 아마도 ‘부정’의 대답을 들었을 직원의 미소와 함께 주인공은 보이지는 않지만 허락이 없다면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통과해 드디어 남의 나라에 들어선다. 그 순간 주인공은 무엇을 느꼈을까? 안도? 참담함? 비참함?
호주 이민 2세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는 <한국인의 밤>.
“그는 클로이가 교포처럼 보인다고 했다. 화장이나 옷차림 때문이 아니라 얼굴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했다. 그 미묘함이 너무나 분명해서 한국에 간다면 모두 그녀가 교포임을 알아볼 거라고, 그런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했다.” (156쪽)
양쪽 모두에서 다름을 보는 그 ‘이국적’인 얼굴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두 사회 모두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경계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자라는 이민 2세들의 삶이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이겠지.
관계의 정당함을 인정받기 위해 호주로 떠난 두 여자의 이야기 <외출금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다. 그저 외면당하지 않고 미움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기를 바랐다.” (189쪽)
어쩌면 디아스포라와 퀴어 모두 느낄 법한 감정.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받아 들여지길, 미움받지 않길, 경계 밖으로 떠밀려 내보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가끔 우리는 일부러 이방인이 되기 위해,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환경을 벗어나 낯섦을 느끼기 위해 살던 곳을 떠나 떠돌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낯선 동네에 도착하여 ‘수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거부된다는 것, 낯선 눈길로 경계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아진다는 것은 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두 차례의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고 그곳에서 이런 저런 상황들을 보고 겪었던 지라 깊게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특히 소위 선진한 서구 국가로 떠난 한국인들은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국민 혹은 타 인종에 대해 지니고 있던 편견이나 무시를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워홀 온 학생에게 최저 시급도 주지 않으며 일을 시킨다거나(<한국인의 밤>) 중국인을 무시하는 등(<헬로 차이나>) 말이다.
여러모로 목 뒤가 씁쓸한 소설들이었다. 술술 읽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가슴 한편이 묵직해지는 소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