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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Apr 06. 2024

[책] 삶의 따뜻함은 가까운 곳에 있다

정지우 <그럼에도 육아>

이 책을 읽게 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네 살 전후의 아이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부모들은 얼마나 힘들게 아이를 키우고 있을까, 어떤 감정을 느끼며 아이와 함께 살까, 이해해 보고 싶었다. 우리 집 윗집에 사는 가족이, 아이가, 부모가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감정을 느낄지 이해해 보고 싶었다.


겨우 다소 진정된 층간 소음에 대한 불안이 다시 증폭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정지우 작가 <그럼에도 육아>는 이보다 더 따뜻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으로 가득했고,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도 삶을 살아감에 있어 염두에 두면 좋을 철학들을 아이를 통해 보여주고 설명하고 있어 꽤 감명 깊게 읽었다.

요즘 아이와 관련해 가장 많이 접하는 소식은 아마 ‘출생률’일 것이다. 이러다가 몇 년 후면 젊은 층이 노년층의 몇 퍼센트를 부양해야 하며, 또 몇 십 년이 지나면 우리나라는 소멸할 수도 있다는 등, 기록적으로 낮은 출생률로 인한 부정적 전망을 퍼 나르느라 바쁜 언론과 그것을 접하며 아이를 낳은 가족을 ‘애국자’라고 칭하는 사람들. 한 외신에서는 작금의 한국의 상황을 ‘페스트로 유럽이 싹쓸이 되던 시절보다 더 최악인 출생률을 보인다’라고까지 설명했으니, 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이 얼마나 자극적으로 충격적으로 다가올지는 뻔할 뻔자다. 게다가 올해 출생률은 0.7명이 깨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으니. 아무리 시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저출생의 심각성을 느낄 테다. 온갖 정책을 뿌리고 있다는 일본도 출생률이 1명이 넘는 상황에서 0.7명이 깨진다는 건 보통 일은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를 살리자고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개인의 삶을 즐기기 위해 딩크족이 되기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한 해, 두 해 미루다가 시기를 놓치고 결국 낳기를 포기하는 가족도 많다. “우리 사회는 사실상 사회 시스템 전반이, ‘이래도 육아할 거야? 진짜 한다고? 좋아, 어디 할 수 있나 보자’ 같은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다.”(38쪽) 점점 피폐해지는 세상에 내가 과연 내 아이를 내보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아이 낳기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내 친구 중 한 명이 그렇다. 나 살기에도 이렇게 벅차고 힘들고 빡빡한 세상, 앞으로 더 심해지리라는 걸 불 보듯 뻔한데 이런 세상에 나의 소중한 아이를 보내야 하는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관해 좋은 소리를 들은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지우 작가는 이 책 <그럼에도 육아>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고 몫이라고 하면서 아이가 있다는 것을 예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자신을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할 때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56쪽)며 자신이 느끼는 행복을 오롯이 표현한다. 그것을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이’와 관련해 이런 감정을 느꼈던 게 얼마 만인가.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본문 일부를 덧붙인다.


가끔 아내와 투덜거리듯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 걸까”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존재를 사랑하는 일 그 자체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44쪽)

→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어떤 존재를 그저 사랑만 한다는 건 과연 뭘까. 어떤 느낌일까.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나.


삶은 이러라고 있는 것이었구나. 나 잘난 맛에, 나만의 성공에, 나만의 빛남에, 나만의 쾌락과 즐거움에 빠져들고, 오직 내가 주목받기 위해 온 인생 다 바쳐 그것만을 향유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그저 온전히 사랑하는 순간을 경험하라고 있는 것이었구나. 그 사랑을 위해 애쓰는 경험을, 논리나 다른 말로 더 이상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그 경험을 해보라고 있는 것이었구나. 그러고 나서 사랑할 만큼 사랑했다 싶으면 떠나보내라고 있는 것이었구나. 그렇게 살아내고, 사랑하고, 떠나라고 있는 것이었구나, 라는 걸 깨닫는 때가 있다. (46쪽)

→ 어, 심장이 갑자기 쿵 했다. 감동? 눈물이 날 것 같은? 비슷한 감정인데, 뭐지 이 느낌은. 갑자기 ‘세상에는 그래도 온기가 있다’는 그런 느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같은.


행운이든 불운이든, 우연은 우리 삶에 ‘점’으로 찾아오는데 그 ‘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이나 불행의 ‘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만나는 점들을 엮어 자기 삶이라는 선, 이야기, 서사를 만들어낸다. 
(…) 우리는 우리 인생에 쏟아지는 점들을 엮는 재봉사이자 이야기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68~69쪽)

→ 단지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아이’라는 렌즈를 통해 삶 전체를 관망하고 그 과정에서 깨닫거나 느끼는 점도 함께 기술한다.


집 안이 텅 비어버린 듯 고요하고, 늘 정돈되어 있고, 활력보다는 평화가 어울리는 때가 오겠지만, 그 풍경은 벌써 다소 쓸쓸하게 느껴진다. 여기에는 매일의 애씀과 힘겨움이 있지만, 그만큼의 생명과 활기와 사랑이 있다.
(…) 삶이란 본디 부대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정이 있고, 애씀이 있고, 사랑이 있고, 보람이 있다. 그런 걸 하려고 사는 것이다. (72~73쪽)

→ 요즘 내가 집에서 느끼는 쓸쓸함이 표현된 것 같아 입이 쓰다. 아이가 있으면 집이 더 밝아지고 복작복작해지고 활기차고 재미있어질까? 지금 우리 집은 어쩐지 회색빛. 좀 더 밝아지는 것도 좋을 텐데.


아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다. 그냥 같이 누워서 떠오르는 대로 상상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는 좋아서 깔깔대며 계속 더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 역시 나를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이가 있어서 아내와 나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을 너무 쉽게 웃는다. 우리는 이 시절이 너무 짧다는 것을 매번 의식하고, 그래서 자주 슬퍼진다. (19쪽)

→ 내게는 판타지 같은 그림. 자녀가 있는 부부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 그 순간을 보내면서도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미래를 그리면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해지는 한편 시간을 붙들어 놓고 싶은 마음에 더 안타까워지는 거겠지.


나는 교육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마 이렇게 다른 생물의 입장을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교육일 거라 생각한다. 다른 생물의 입장을 상상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상상하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상상하는 것이 곧 공감 능력이고, 사실 이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 생각한다. 아이랑 나는 매일 공감 능력을, 다른 존재의 입장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134쪽)

→ 꼭 육아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인생을 삶에 있어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은 포인트도 짚어 준다. 개인적으로 살아가면서 잊지 말고 지키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가 측은지심과 역지사지다. 어찌 보면 ‘공감’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어떤 생각을 할까, 왜 저런 감정을 느낄까, 왜 저렇게 반응할까 생각해 보며 상대방이 처한 입장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공감해 주는 것. 늘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시도가 조금만 늘어나도 우리 세상이 조금 더 느슨하고 편안해지지 않을까.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 일리치는 평생 모범생으로 살다가 승승장구하는 판사로 임용되었지만, 정작 죽음 앞에서 떠올리는 건 주위 사람들과 하던 ‘카드놀이’였다. 나머지는 다 가짜처럼만 느껴졌고,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 있었다고 느끼게 한 것이 카드 게임하는 순간의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승진하고, 집 평수를 늘리고, 사회적으로 인맥을 넓히는 것 같은 것들은 이상하게 모두 가짜 같았다고 말한다.
나는 죽기 전에 무엇을 떠올릴지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시간을 진짜로 사랑했는지, 어떤 시간을 가장 좋아했는지, 어떤 시간에 진심이었는지 떠올려본다. (160쪽)

→ 나는 과연 죽기 직전 어떤 장면을 떠올릴까. 떠올릴만한 장면이 있을까. 실제 죽음이 닥치기 전에는 모르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딱히 생각나는 장면이 없다.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도망치면 돼, 다른 걸 선택하면 돼,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야, 라는 태도로 언제까지 살아가기보다는, 오늘의 선택은 번복할 수없이 몇 년 뒤의 삶이 되고 그렇게 삶이 쌓여간다는 걸 받아들일 때 어쩌면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걸 말이다. 매일의 선택을 책임지면서 감내하고자 할 때 삶의 완전히 다른 측면이 드러나고, 그것이 ‘진짜 삶’으로 가는 여정일지 모른다는 걸 말이다. (25쪽)

→ 그저 삶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매일에 대한 책임, 그 매일이 쌓여 결국 삶이 된다는 인지가 필요하다.

특히 ‘인간이라는 동물’이라는 장은 전체를 추천한다. 오늘날의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은 포기한 채 종 자체의 위대함, 고매함,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부심에 취해 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 마디로 오만이 넘친다. 작가 역시 “오히려 인간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 보이는 순간은 덜 동물다울 때인 것 같기도 하다”(84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서는 내가 그저 한 마리의 동물일 뿐이라는 걸 더 가깝게 느끼는 것 같다. 아이랑 헐벗고 깔깔대고, 땅 파고, 수풀 사이를 헤집고, 춤추고, 뛰어놀고, 맛있는 걸 집어먹고, 나눠 먹고, 햇빛 아래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나라는 존재의 본질에 더 다가간 느낌을 받곤 한다. (…) 나는 사랑하려고 태어난 것이다.”(85쪽)


우리 사회에는 사랑이 부족하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부족하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 황폐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다시금 온기를 느껴 보고 싶다면, 아이를 키우는 삶에 어떤 행복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사랑과 행복이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읽어 봐도 좋을 듯하다. “삶에서 가장 그리울 시절을 보내고 있을 당신께, 이 책을 전한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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