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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May 13. 2022

옛 제자를 만나는 순간 마법의 시간이 펼쳐진다

은퇴 교사가 옛 제자를 만나며 느낀 생각의 단편

오래 전의 옛 제자를 만나면 마법의 시간이 시작된다. 제자가 기억하는 과거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그 시간은 마법과 같다.

며칠 전 30여 년 전 제자가 찾아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시공간이 옮겨지는 듯하였다. 그 시절이 기억 속에서 떠오르며 제자들과 함께 지냈던 교실 풍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야말로 마법의 시간이라 할만하다.


몇 년 전 졸업 30주년 기념 모교 방문 행사에서 만난 후 이런저런 활동 소식들을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기도 했는데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정확히는 38년 전의 고등학교 1학년 10반 교실에서 만난 제자다. 벌써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의 제자가 찾아오니 반갑고 고맙다. 신설동의 한 고등학교에 부임하여  28살의 나이로 첫 담임을 맡았던 때의 학생이었다.  오래전 일인데도 기억의 파편들이 내 청춘 시절과 함께 드문드문 소환되어 시공간을 오가는 마법에 걸린 듯하다.  


제자와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면 잊어버렸던 기억들을 다시 찾게 되기도 한다. 이날 만난 제자가 고교 시절에 우리 집을 친구들과 함께 방문하기도 했단다. 당시에 과천에서 신설동까지 다니던 때라 학생들이 방문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학생들이 왔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내가 벽돌로 쌓고 나무판을 얹어 만든 책꽂이를 인상 깊게 봤다는 기억까지 떠올리니 영락없이 우리 집 모습이다. 30여 년만에 만난 제자가 자신의 10대 시절에 와본 우리 집 모습까지 기억해 나의 기억까지 살려주니 감동이었다.


만나서 이야기하다 따져보니 당시의 제자들과는 12살 차이 띠동갑이었다. 나이 차이가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몇 년 전까지 어린 학생들을 가르쳤던 내 입장에서는 눈앞에 있는 중년의 남성이 내 제자였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제자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이제는 친구 같은 제자가 된 것 같다. 사회의 중견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제자의 모습이 보기 좋다.


대학교수인 제자가 손수 만든 작은 플래카드를 음식점 방에 붙여놓고 식사를 하였다. 플래카드 앞에서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올 때 기념으로 플래카드를 가져와 내 방 출입문 위에 붙여놓았다. 집에서 플래카드를 아내와 함께 쳐다보며 전날 밤 정성껏 만들고 있었을 제자의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경험 부족의 첫 담임이라 많이 부족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집 근처까지 찾아와 밥도 사주고 건강을 챙겨주는 선물도 주니 더욱 고맙다. 한편으로는 그 시절 처음 담임을 맡은 경험 부족의 교사가 제대로 잘 가르쳤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하다.  


옛날 국사 수업을 하다  고려시대 말 국정 농단 세력이었던 기철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기 씨 성을 가진 이 제자를 장난 삼아 놀리며 다른 친구들의 웃음을 유발하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럴 때도 능청스럽게 받아치며 함께 웃고 넘기던 친구였다는 기억도 새삼스럽다. 이런 짓궂은 선생에게 섭섭함도 없잖아 있었을 텐데 이 나이 되도록 잊지 않고 찾아주니 뭐라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몰려온다.


교사로 살아온 시간 동안 나름 열심히 잘하면서 지냈다고 자만하기도 했는데 제자들을 만나면 과거의 내가 모자랐던 점이나 더 잘하지 못한 것들이 떠오르며 아쉬움이 커진다. 이런 생각도 제자들과 만나면서 깨달을 수 있는 성찰이라고 여겨지니 그 시간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40 년 가까운 세월을 거슬러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을 회상할 수 있고 그 시절에 깨닫지 못했던 성찰을 뒤늦게라도 할 수 있으니 제자들과의 만남은 마법의 시간이 틀림없다.


교사들은 제자를 만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 시간인 듯하다. 은퇴 후 노년의 시간을 살면서 여러 모습으로 성장한 또 다른 제자들과의 만남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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