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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Oct 25. 2022

요트를 배웁니다.

서울보다 행복한 이곳은 포항입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사람이나 동물이 제 역할을 하는 적합한 환경이 있다는 뜻이다. 맹자를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좋은 환경을 찾아 여러 번 이사 다녔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워보니 맹모의 마음을 알겠다. 나를 엄하게 훈육하신 부모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들판과 개울에서 뛰어놀고 뒷산을 오르내리며 자랐다. 아버지는 나에게 농사라는 고된 일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으셨다. 아버지의 바람으로 중학교를 끝으로 고향을 떠나 소도시로 유학을 떠났다. 3년 후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고 경상도 사투리도 차츰 잊었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다. 인구는 뉴욕이나 런던보다 많은 1천만 명에 이른다. 올해 발표된 국내 근로소득자 상위 1% 평균이 2억 7천만 원이다. 이중 75%가 수도권에 산다. 좋은 일자리를 찾아 인재가 몰리고 인재가 있으니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난다. 도시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교통, 맛과 멋, 종합 의료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입시학원도 밀집되어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나도 사촌들처럼 서울에서 공부했다면 더 좋은 대학교에 합격했겠다는 아쉬움도 든다. 대도시는 단점도 있다. 교통 정체, 높은 생활 물가, 숨쉬기 힘든 미세먼지, 녹지공간도 부족하다. 그리고 눈부신 조명의 그림자에 가려진 소외된 사람들도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땅속에 터널을 파고 길을 만드는 두더지 같은 직장인이 되었다. 빌딩을 나무삼아 뛰어다니는 도시 다람쥐처럼 분주하게 살았다.      


십여 년 서울 생활의 끝에 유럽행 특급열차 티켓이 손에 쥐어졌다. 어쩌다 회사 유럽 주재원이 되었다. ‘유럽’은 누구나 가보고 싶은 동경하는 낙원이었다.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히는 도시들이 많지만, 동양인으로 살기에는 말 못 할 고충도 있었다. 산골에서 소도시로, 대도시에서 유럽으로 삶의 터전을 넓혀갔다. 이사만 20번 넘게 했다. 짐을 싸고 푸는 요령만큼 삶이 단단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들의 호기심의 시선은 다정하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글은 물과 기름처럼 경계가 그어졌다. 여행자의 유럽과 생활자의 유럽은 달랐다.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며 외로움과 병을 함께 키웠고 남편은 일에 묻혀 가족을 잊었다. 그들에게 가족은 최우선이지만 나에게 가족은 직장보다 늘 뒤에 있었다. 더 늦기 전에 가족을 살리려고 귀국했다. 포항에 온 지 10년이 되어간다.      


살아보니 포항이 정겹다. 교통 정체가 없어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별로 없다. 걸어서 출퇴근하고 산책을 즐긴다. 숲과 녹지가 많아서 자연을 마음껏 누린다. 해돋이 명소 구룡포에서 호미곶으로 이어진 길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수평선을 바라보면 하늘과 바다가 누가 더 파란지 겨루는 듯, 파도와 구름은 누가 더 새하얀지 경쟁한다. 죽도시장에서 펄떡이는 생선과 문어, 대게를 보면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나온다. “와, 억수로 크다.”라며 군침을 흘린다. 시원하고 매콤한 물회는 포항에서만 맛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이웃사촌 경주가 있다. 천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불국사와 남산에는 손꼽기도 힘든 문화재로 가득하다. 첨성대와 월지의 야경, 황리단길을 따라 이어진 전통 가옥에는 맛집이 즐비하다. 포항과 경주에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 같은 벚꽃길이 수십 개 있어 봄이면 달콤한 향기에 취한다. 비록 ‘지방’이지만, ‘서울’ 그 답답한 도시를 탈출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포항은 바다와 육지가 만나 여러 가지 맛과 멋을 만들었다. 즐길거리도 풍성하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다면 포항에는 호미반도 둘레길이 있다. 해파랑길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어보자. 머리가 맑아진다. 강원도 양양과 포항 월포는 넘실대는 파도를 찾는 서퍼들이 모인다. 경남 통영과 포항 영일만은 바람을 품고 파도를 가르는 요트가 있다. 포항시민이면 누구나 요트, 윈드서핑, 카누와 같은 해양스포츠를 배울 수 있다.   

   

지난해 여름 요트 동호회에 가입했다. 토요일마다 영일대 해상누각 앞바다에서 요트를 탄다. 포항해양스포츠아카데미 전문 코치에게 1인용 피코와 2~3인용 LDC 2000중에서 기본교육을 받았다. 산골 소년이 바다의 선장이 되는 설렘은 바다에 빠지는 두려움보다 강렬하다. 안전을 위해 슈트, 장갑, 구명조끼를 착용한다. 요트를 바다에 띄우기 위한 범장을 한다. 먼저 뱃머리를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놓는다. 마스트(Mast) 로프에 세일(Sail)을 묶는다. 로프를 당겨 마스트 꼭대기까지 돛을 올리고 단단하게 고정한다. 붐(Boom)을 마스트에 연결하고 세일을 고정하면 삼각형 돛단배가 만들어진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천천히 바다에 들어가 요트를 띄운다. 크루(Crew)가 배에 올라 앞에 앉고 스키퍼(Skipper)가 뒤에 앉는다. 크루는 센터보드(Centerboard)와 집세일(Jib Sail)을 담당하고 스키퍼는 러더(Rudder)와 메인 시트(Main Sheet)를 조종한다. 


배는 바람에 밀려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뱃머리가 찰랑이며 물살을 가를 때 귀는 즐겁다. 포항제철소의 웅장한 위용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육지에서 바라본 바다는 바람에 찰랑이면서도 고요하다. 바다에서 보는 도시는 화려하다. 빌딩과 아파트가 다양한 높낮이로 오르락 내리락이다. 매주 바다 위에서 내가 발을 딛고 사는 땅을 바라본다. 일터에서는 왜 그리도 바쁘게 살았을까? 네모난 성냥갑 아파트는 무슨 이유로 비쌀까? 손바닥으로 가려지는 도시의 일상을 잠시 잊는 시간이다. 오롯이 바람의 방향만 생각한다. 바람은 언제나 감미롭게만 불지 않는다. 어떤 날은 아예 바람이 없어 한 시간 넘도록 바다에 떠 있기도 했다. 제주도 남쪽 먼 곳으로 태풍이 지나는 날은 무게중심을 맞추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때론 강한 바람에 무리하게 맞서다가 캡사이즈(Capsize)가 되어 뒤집어졌다. 바다에 빠져 온몸이 시원하게 젖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안전하다. 센터보드에 올라가 뒤집힌 배를 일으켜 세운다.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심하다. 하지만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망망대해에서 넘어진 배를 세우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듯이 요트도 물에 빠지면서 바람과 파도를 조율하는 것을 배운다. 그러면서 단단해진다.      


요트에도 인생이 담겼다. 아이가 돛에 바람을 품고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훗날 아들과 함께 요트를 타고 울릉도와 독도를 시작으로 마라도와 백령도까지 가보고 싶네요. 문득 지난 추억이 떠오른다. 스위스 로잔 레만호수 백조 한 마리가 헤엄치고 물오리 떼가 날아오른다. 하얀 요트와 카누를 타는 가족들 뒤에 알프스의 만년설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폴란드 소폿에서 아내와 함께 모터보트를 타고 발틱해를 항해한다. 세 살 아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다시 돌아갈수 없지만, 사진속에 추억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산골 소년이 푸른 바다에서 선장이 되는 이곳, 

네 번째 고향 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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