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랜만에 편지를 드립니다. 4년이 훌쩍 지났네요. 그때는 육아휴직에서 회사 복귀를 앞두고 가족들에게 손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버지께도 편지를 남겼지만 보내드리지는 않았지요. 하늘에 계신 형님께도 써놓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흡족했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난 추석에 큰 누님이 전해달라는 편지를 예천에서 드리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말에 고향에 찾아뵐 때 이 편지도 종이에 옮겨서 같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연세가 곧 여든아홉이십니다. 어머니도 여든여덟이고요. 두 분은 저에게 늘 큰 믿고 의지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건강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가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에는 두 분은 젊고 힘이 있으며 아름다우십니다. 그때가 1997년이네요. 30년이 지나고 세월의 무게는 점점 발걸음을 더디게 만드네요. 그 무게를 성인이 된 자식들이 나누어야 하는데도 여전히 두 분에게 사랑을 받기만 하니 송구하고 또 애처롭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쓰러지셨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스무 살에 시집와서 맏며느리로 68년을 아버지 곁에서 살림을 해오신 어머니를 보살피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할머니가 되신지도 오래지만 자식들은 농사일의 고됨을 건강을 유지하는 운동쯤으로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중학교부터 혹은 고등학교부터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해온 다섯명의 자식들도 부모님의 강인한 뒷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살아왔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하나 둘 환갑을 맞이하고 있으니 그저... 죄송하네요.
올봄에 형님이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아버지께 알리지 않았습니다. 걱정하신다고 회복이 빠르지도 않을뿐더러 형제들끼리 열심히 간호를 해서 회복시키겠다고 다짐을 했었지요. 다행히 고비는 넘겼고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어 추석 때 함께 만나 웃을 수 있었지요. 어머니의 건강도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청력이 많이 손실된 것이 마음 아픕니다. 지난해 봄에 보청기를 해드린다고 착용도 해보았지만, 귀가 울리고 불편하다는 말씀에 미루었지요. 1년이 지나 아버지의 청력은 더 떨어졌고 전화 수화기에 쏟아내는 자식들의 목소리는 점검 커졌습니다.
아버지의 한쪽 귀가 멀어가는 두려움과 불편함을 알면서도 제 말길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지가 답답했습니다. 보청기 살 돈을 아껴서 손자 대학 등록금으로 보태겠다는 말씀에 고맙기보다는 화가 났습니다. 돈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임을 알지만, 돈을 아끼려다 제때 병원 치료를 못해 세상을 떠난 둘째 형님을 생각하면서 여전히 건강보다 돈이 중요한가 묻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듣지 못하면 여러 불편함이 있습니다.
우선 아버지 스스로 답답해지고, 불안감과 조바심을 낼 수 있고요. 우울감이 찾아와 무기력해지거나 갑자기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어머니가 옆에서 대신 전해주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안 들린다고 소리치면 어머니가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셔서 쓰러질 수 있고요. 제 목소리도 커지니 혈압도 높아지고 화가 났습니다. 유신이와 유찬이도 종종 할아버지와 통화할 때는 불안해했습니다.
늦게나마 보청기를 하겠다고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한쪽 고막에 구멍이 생겨 대부분 청력이 손실되었지만, 다른 쪽 귀라도 보호해야 합니다. 손자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좋은 소식을 직접 듣기를 소망합니다. 어머니가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 아버지께서 혼자 지내는 것도 걱정입니다. 어머니가 회복되어 고향으로 오시기까지 제가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종종 편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들리지는 않지만 한글을 읽으시니 자식의 목소리가 담긴 편지를 펼쳐보시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부자지간 소통이 아닐는지요. 아버지, 편지는 늦게 닿지만 마음은 늘 곁에 있습니다. 부디 식사는 챙겨드시고 오래도록 건강해 주세요.
2025.10.10
막내 준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