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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21. 2024

수학과 놀기

[책을 읽고] 이언 스튜어트, <최고의 수학자가 사랑한 문제들> (2)

카드 섞기 마술


트럼프 카드 한 벌을 마구 섞다가, 한 장을 내어 보이며 "이 카드죠?"하는 마술은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이걸 수학적으로 파헤쳐 보자.


사진: Unsplash의Klim Musalimov


맨 위의 카드 한 장에만 집중해보자. 그 카드가 뭐든, 섞다 보면 그건 분명히 다시 맨 윗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카드가 딱 10장이고 0에서 9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다고 가정하자. 


카드 한 벌은 유한하므로 그 카드는 언젠가 과거의 위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152쪽)


그래서, 처음 맨 윗자리에 있던 카드는 언젠가 다시 맨 윗자리로 온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던 도중 이 부분에 줄을 좍 긋고 메모를 남겼다. 


안 그럴 수 있잖아.


맨 윗자리 카드 수의 나열을 보면, 뭐가 떠오르는가? 소수다. 카드를 섞는 수열에서 무리수가 나올 수는 없으니, 무한소수 중에서도 순환소수다. 순환소수는 어느 시점에서 루프에 빠진다. 다시 말하자면,


0, 5, 2, 6, 8, 7, 1, 4, 3, 9, 다시 0...


이럴 수도 있지만,


0, 5, 2, 6, 8, 2, 6, 8, 2, 6, 8...


이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0이 다시 오는 일은 없다.


이런 단순한 생각이 내 한계다.

이언 스튜어트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불가능하다. (152쪽)


왜냐 하면, 만약 저런 루프가 존재한다면, 섞는 방향을 정확하게 거꾸로 해서 원래의 배열로 돌아올 수 없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섞기를 정확히 거꾸로 하면 당연히 처음 배열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니, 저런 순환은 가능하지 않다.


 

물리학 등판


현대 물리학은 사실상 수학(위상수학)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언 스튜어트의 책은 대개 수학 책인 동시에 물리학 책이다. 이제 물리학이 등판할 시점이다. 


예컨대, 표면장력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비눗방울과 막은 ‘극소곡면’이라는 엄청나게 중요한 수학 개념의 실례들이다. 극소곡면이란 특정한 추가 조건들을 만족시키면서 면적이 최소인 곡면이다. 거품 방울의 수학에 극소곡면이 등장하는 것은 표면장력이라는 물리적 효과 때문이다. (163쪽)


어떤 방울이든 입자든, 무한한 공간에 쌓여 있다면 모두 모습이 같을 것이다. 그러나 공간이 무한하지 않다면, 표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표면에 있는 입자는 내부와 다른 힘과 조건에 노출된다. 그러니 모양이 같을 수가 없다. 


균일한 내부에서는 다른 입자와 연결(결합)하는데 쓰일 에너지가, 표면에서는 갈 데가 없다. 그래서 에너지가 표면에 모인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연 상태에서 균형은 안정을 뜻하고, 그건 에너지가 최소라는 얘기다. 즉 표면의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모양이 형성되는데, 에너지는 면적에 비례한다. 그 최소화된 면적(에너지)이 표면의 모양을 결정한다.


다음은 이어폰 줄이나 충전 줄이 왜 자꾸 꼬이는지 생각해 보자. 꼬인 줄을 보면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그냥 짜증난다는 생각뿐이지만, 사실 꼬이는 형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로 감김(writhe)과 비틀림(twist)이다. (경고 차원에서 말하자면, 위상수학의 영역이니 패스할 사람은 패스하는 것이 좋다.)


단어 자체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대충 감이 오지만, 정확히 규정하기가 어렵다. 구글 바드한테 물어봤더니 뭐라고 횡설수설하는데,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차이 이상의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 같지는 않다.


책에는 감김이 비틀림으로 변환되는 과정의 예시(그림47)가 실려 있다. 어쨌든 중요한 포인트는 감김과 비틀림이 서로 변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T+W=0이라는 수식으로 표현하는데, 사실상 동어반복이다. (그런데 수학 자체가 원래 동어반복이다.)


애초에 뒤틀림이나 감김이 없는 끈이라면 T+W=0이지만, 애초에 뒤틀림 내지 감김의 변형이 n번 있었다면, 수식은 T+W=n으로 바뀐다. 이런 대표적인 물건이 DNA다. 구글 검색에 따르면 DNA는 보통 12개의 염기쌍마다 한 번씩 교차가 일어난다고 한다. 다시 말해, 120개의 염기쌍으로 된 DNA가 있다면, n=10인 셈이다.

감김 쪽이 에너지가 작기 때문에, 자연은 뒤틀림보다 감김을 선호한다. 즉, 자연 상태에서 뒤틀림은 감김으로 변환되는 경향이 있다. 



시어핀스키의 삼각형


유명한 프랙탈 도형 중 하나가 시어핀스키의 삼각형이다. 이 삼각형이 그냥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연에는 수많은 프랙탈이 존재하는데, 시어핀스키 삼각형도 예외가 아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곳에 출몰한다. 예컨대, 파스칼의 삼각형에서 홀수에만 색을 칠하면 시어핀스키 삼각형이 된다.


하노이 탑 퍼즐에서 허용되는 움직임을 숫자로 표현해서 규칙적으로 늘어 놓으면, 또 시어핀스키 삼각형이 된다.


그런데 이런 장난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하노이 탑 퍼즐을 푸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일반적인 출발 배치에서 일반적인 최종 배치에 이르는 최단 경로는 그래프의 한 가장자리를 따라가는 직선과 길이가 같으므로, 그 길이는 2n-1이다. (227쪽)



다시 케이크 나누기


맨처음에 워밍 업 문제로 제시했던 케이크 나누기 문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우리는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런데 공정하다는 말을 조금 더 미묘하게 구분해 볼 수 있다.


더 미묘한 문제가 있다. 설령 모든 각각의 참가자가 자신의 몫이 공정하다고 확신하더라도(“그래, 내가 적어도 1/n은 가졌으니 내 몫은 챙긴 셈이지”) 몇몇 참가자들은 그 망할 놈의 질투 때문에 여전히 불만을 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저 놈이 나보다 더 많이 가졌단 말이야!”). (186쪽)


공정함은 나에 관한 것이고, 질투는 남에 관한 것이다. 공정함은 물론 질투도 없도록 케이크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케이크를 공정하게 나누는 알고리즘은 책에도 나와 있듯이 아주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공정함에 조금도 흠결이 없는 것이 앞서 말한 경매 방법이다. 이 알고리즘에서 각 당사자들은 내 몫이 적어도 1/n이 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손을 들기 때문에, 공정하다. 손을 들었다는 얘기는 적어도 자신이 1/n을 확보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됐담면 자기 책임인데, 문제의 정의상 적어도 자기 자신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1/n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이 1/n이라 믿는 조각은 1/n이 아닐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누군가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 1/n 이상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질투 없는 분배 방법이다.


케이크를 둘로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넌 자르고, 난 고른다.")은 질투 없는 방법이다. 그러나 3명 이상일 때는 어떨까? 1960년대 초에 3명이 질투 없이 나누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1995년, 드디어 n명의 사람에 대한 질투 없는 분배 방법이 증명되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해서 책에서도 소개하지 않고 있다.


질투 없는 분배 방법은 공정함을 내포하므로, 가장 이상적인 분배 방법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분배 방법을 볼 때, 실현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난제에 도전하다보면, 훨씬 더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도 한다.


정치적 분쟁과 관련한 교훈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관련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스스로 타협하게 할 때 더 쉽게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외부의 주체가 제시한 타협안은, 객관적인 관찰자가 보기에 아무리 공정해도 실제 당사자들에게는 수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189쪽)


갑자기 미뤘던 전쟁을 몰아서 하는 듯한 지금 세계가 생각해볼 문제다.


사진: Unsplash의Ludovic Migneault


도전 정신이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주로 한 메모는 이렇다.


뭔 소리야? 
이건 패스


책을 끝내고 몇 주가 지난 시점에 정리하려고 다시 책을 펼치니 아주 재미있다. 물론, 저런 메모를 남겨 놓은 부분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왜 정리할 때까지 몇 주가 걸렸겠는가? 숙제는 하기 싫은 게 인간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재미는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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