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살았다. 꿀맛이네, 이거.”
힐링 포션 한 병을 단숨에 삼키고 나서, 소현배가 입맛을 다셨다.
주석은 몸이 공중에 30센티미터쯤 뜬 상태로 굳었다.
더 높이 점프하지 않은 게 안타까울 뿐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소현배는 주석에게서 1미터 정도 떨어졌다.
등의 상처가 아무는 것이 느껴졌다.
“주석이라고 했나? 브릴리언트 길드에는 별 또라이가 다 있구만. 너만 아이템이 있겠냐?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소현배는 손가락으로 한쪽 이마를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소 선배! 이게 뭐예요?”
“결박석이라고 하던데, 성능이 좋네. 공중에서 얼려버리네. 신기하네. 보기 좋아, 음, 아주 좋다구.”
소현배는 엄지와 검지를 턱에 대고 감상하는 포즈를 지으며 말했다.
“결박석? 그럼, 난 이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 선배한테 죽는 거예요?”
“음하하, 아마 그렇겠지? 아주 천천히 즐기면서 죽여줄게.”
소현배는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내 쥐며 말을 이었다.
"영점 사격이 뭔지 보여주마. 하하."
“소 선배님, 잠깐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우리 둘이 팀을 짜는 게 어때요?” 주석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넌 그런 제안을 등에 칼을 꽂으면서 하냐?” 소현배가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우리 둘이 이렇게 싸우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유리해지잖아요.”
“아니, 아니. 틀렸어. 바로 내가 유리해지지.”
“게임을 장기적으로 보세요. 겨우 첫 번째 미션이잖아요. 갈 길이 멀어요.”
“그래? 그건 네 생각이고.”
소현배는 활시위를 적당히 당겨 보였다.
여전히 웃는 표정의 주석이었지만, 관자놀이에 땀이 흘렀다.
“무서워? 주석, 무섭냐? 땀 엄청 흘리네. 식은땀?”
“태양이 좀 뜨겁네요. 9월 말인데 왜 이렇게 덥나요.”
“너 지금 되게 웃긴 포즈인 거 알아?”
“네. 잘은 몰라도 그렇겠죠. 이것 참 스타일 다 구겨지네.”
“스타일? 지금 그게 문제야? 지금 네 모습, 한 500미터 바깥에서도 잘 보일 거 같은데?”
“그러니까 좀 풀어주세요, 선배님.”
“굳이 내가 죽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네.”
소현배는 그렇게 말하며 활시위를 풀었다.
“네?” 주석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날 죽여줍쇼 하는 포즈로 있으면, 누군가가 와서 죽여주지 않을까?”
어차피 공격을 하면 결박이 풀린다.
그걸 모르는 주석을 상대로 겁을 주는 것도 재미있고 고소하지만,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된다.
공중에 뜬 채로 얼어 있는 주석은 곧 다른 사람의 눈에 띌 것이다.
주석을 미끼로 하여 다른 구원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최고의 선택지.
결박석을 가장 효과적으로 쓴 것 같아 소현배는 싱긋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 소 선배님?”
“네놈 꼬라지를 봐라. 웃지 않을 재간이 있냐.”
“이제 좀 내려주세요.”
“다른 사람들도 네놈의 웃기는 꼬라지를 좀 구경해야지. 난 간다. 공중에서 잘 지내봐.”
소현배는 몸을 낮추고 주석에게서 떨어졌다.
주석은 멀어지는 주석을 향해 소리쳤다.
“선배님! 저랑 한 팀 먹어요, 제발요, 네?”
“미친놈.”
소현배가 조용히 읊조렸다.
***
“상욱 씨, 저게 뭐예요?”
“네? 어디요?”
하민서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기묘한 모습이 마상욱의 눈에 들어왔다.
뭔가를 밟고 서 있는지, 어떤 사람이 기묘한 자세로 공중에 서 있는 것이다.
던전 안에 사람이라면 구원자들뿐.
왜 남의 표적이 되려는 듯 자기 위치를 노출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기회다.
마상욱은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사람이잖아요! 공격대원 중 하나!”
“그런 것 같아요. 상욱 씨, 목소리는 좀 작게.”
“아, 네. 죄송해요. 우리가 선제공격을 할 수 있겠네요. 2대1이기도 하고.”
그렇게 흥분해서 말하던 마상욱이 하민서를 다시 돌아보며 덧붙였다.
“2대1 맞죠, 민서 씨?”
“네? 네!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상욱 씨. 우린 한 팀이잖아요!”
“네, 네. 물론입니다. 저 사람, 잡으러 갈까요?”
흥분해서 말하는 톤이 올라간 마상욱을 향해 하민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상욱 씨.”
“네?”
“저거, 진짜 사람일까요?”
“내 눈에는 아무래도 사람으로밖에는 안 보이는데요.”
“아까 아이템 뽑기. 저는 이런 걸 뽑았거든요.”
하민서는 인벤토리의 아이템 링크를 마상욱과 공유했다.
- 도플갱어.
- 사용 효과: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만들어 냅니다.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상대방을 속여서 뒤통수치기에는 딱 좋은 아이템이죠! 허수아비가 아니라 도플갱어라고 불러주세요!
- 주의 사항: 사용 후 1시간이 경과하거나, 이번 미션이 끝나거나, 던전을 나가면 파괴됩니다. 소모품이라고 생각하고 마구 사용해주세요. 소모품 아끼려다 골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아!” 마상욱이 과장스럽게 자기 이마를 때렸다.
“그렇죠?”
“민서 씨 아니었으면 함정에 걸려들 뻔했네요.”
“미끼가 저기에 있다면, 미끼를 쓴 사람도 근처에 숨어 있겠죠?”
“그럴 겁니다. 미끼에 다가든 사람을 공격하려면, 그래도 일이백 미터 안에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활이 주 무기인 사람이라면, 문경새재 길드 소현배가 스나이퍼라고 알고 있어요.”
“무슨 활을 쓰는지는 몰라도, 스나이퍼라면 더 먼 거리에서 공격도 가능하겠군요.”
“여기에서부터 최대한 조심하면서 다가가죠.”
둘은 다시 원래대로 2미터 정도 서로 떨어진 상태로 정찰을 재개했다.
수풀 안에 몸을 숨기고, 서쪽 방향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그런데 상욱 씨.”
“네, 민서 씨.”
“상욱 씨는 아까 아이템 뽑기에서 뭐 나왔어요?”
“아, 저는 꽝 나왔어요.”
마상욱은 즉각 대답했다.
하민서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꽝도 있어요?”
“그러게 말이요. 20골드나 되는 돈을 날렸네요.”
“정말이에요? 꽝이 나왔다는 게?”
마상욱이 뒤를 돌아보았다.
“민서 씨,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지금 상황이 좀 그렇잖아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그걸 믿을 수 있겠어요?”
이런 상황이 올까 봐, 꽝이 나왔다고 말한 것인데, 좋은 전략이 아니었나 보다.
마상욱 입장에서는 사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꽝이나 다름없는 아이템, ‘컵라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 컵라면.
- 사용 효과: 뜨거운 물을 붓고 3분! 맛있게 먹습니다. 던전 안에서 언제 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어요?
- 주의 사항: 던전을 나가면 파괴됩니다. 이번 미션이 끝나도 파괴됩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는 건 안타깝지만, 다른 아이템과 형평성은 맞춰야 하지 않겠어요?
“민서 씨. 사실은 말이죠.” 마상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사실은 뭔데요?”
“컵라면이 나왔어요. 그래서 꽝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하민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컵라면이요? 거짓말도 수준이 너무 낮지 않나요, 그건?”
“왜 나를 못 믿습니까? 내가 왜 민서 씨를 속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잠깐! 다가오지 마세요. 거리 유지하세요." 하민서가 다급하게 말하며 뒷걸음질 쳤다. "우리, 2미터 떨어지기로 했잖아요. 상욱 씨가 그렇게 하자고 한 거고요. 기억 안 나요?”
“컵라면 나왔다니까요! 꺼내서 보여드릴게요. 그러면 믿으시겠죠?”
“다가오지 마시라고요! 그 자리에서 꺼내세요.”
슈우욱!
“으아악!”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화살이 마상욱의 오른손을 관통했다.
“민서 씨! 어디 가요! 도와줘요!”
하민서는 손에 화살을 맞은 마상욱을 놔두고 북쪽으로 뛰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