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서와 마상욱을 발견하고, 한택수는 그들을 부르려고 했다.
때마침 상태창 알림 메시지가 뜨지만 않았다면.
‘얼마나 다행이냐. 순식간에 저 커플한테 당할 뻔했다.’
충무공 길드와 탑픽 길드가 합병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서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
아직은 다른 길드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같은 길드였던 저들은 서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쭈뼛쭈뼛하면서도 일단 팀이 되는데 합의했으니까.
‘그렇다면 나도 이준기를 찾아서 팀을 만들어야 하나? 아무래도 두 명이 낫겠지. 하지만 난 이준기라는 사람을 잘 모르는데.’
한택수의 위치도 숲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나무 바로 아래다.
그들과 한택수 사이의 거리는 불과 6, 7미터 정도.
알림 메시지에 놀라 재빨리 엎드렸으므로, 저들은 아직 한택수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
‘이런 미션이 나올 줄 알았다면, 사전에 다른 사람들 정보를 좀 알아보는 건데.’
미션 알림을 보고 놀랐는데, 또 한 차례 알림 메시지가 떠서 한택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마침 필요한 보급품과 아이템 뽑기.
한택수는 일단 힐링 포션을 잔뜩 확보했다.
추첨 아이템이라니, 정말 장난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잠시 울컥했다.
그러나 힐링 포션 몇 개 값에 불과한 20골드다.
아이템을 확보할 기회가 별로 없을 테니 투자하기로 했다.
- 두구두구두구!
- 짜잔!
- 축하합니다. 좋은 아이템이네요!
‘그래? 좋은 아이템이 나왔다고?’
- 맵핵.
- 사용 효과: 지도 화면의 현재 범위에 모든 적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 주의 사항: 설마 다음 던전이나 다음 미션에서 쓰겠다고 아끼지는 말아주세요. 던전에서 나가도, 이번 미션이 끝나도, 자동으로 소멸한답니다.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니 협조해 주세요.
이런 상황에서라면, 최선의 아이템이 나왔다.
지속시간도 24시간.
한택수는 상태창에 지도를 띄우고 곧바로 아이템 ‘맵핵’을 사용했다.
지도 위에 세 개의 점이 표시되었다.
마상욱, 하민서가 표시되어 있고, 더 멀리 서쪽으로 다른 점 하나가 더 있다.
‘모든 적’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 효과인데, 어떤 적인지는 표시되지 않고 단지 점으로 표시될 뿐이다.
그러니까 세 번째 점은 누군가 다른 구원자일 수도 있고, 오크나 늑대일 수도 있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공격대 멤버들이 적으로 표시된다는 거다.'
마상욱, 하민서 파티가 움직이지 않는 한,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한택수는 더 낮게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미션 알림 이후, 그들의 목소리는 많이 작아졌다.
주변을 경계해야 하니 당연하다.
하지만 여전히 무슨 내용인지는 들리는 수준이다.
“어디에 누가 있는지 알아야 찾아가서 죽이든 말든 할 텐데, 어떡하죠?”
“맵 화면 커서 크기를 보면, 이 던전은 면적이 꽤 넓은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지도 화면에 밝혀진 부분 나오는 게, 크기가 꽤 작군요. 상욱 씨는 역시 머리가 좋아요.”
“알림 메시지가 모두에게 떴을 테니, 이제 다들 경계 상태일 겁니다. 배틀로얄이죠.”
“배틀로얄이 뭐예요?” 하민서가 물었다.
“데스매치라는 겁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적이 되는.”
“아, 네. 데스매치보다는 배틀로얄 쪽이 덜 살벌한 이름이군요.”
“우리는 둘이에요. 남들보다 유리하다고요.” 마상욱이 다른 얘기를 꺼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민서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지도를 밝히면서 탐사를 해보죠. 시계 방향으로 조금씩 반경을 넓혀 가면서 탐색을 할까요?”
“네, 좋아요.”
‘휴, 다행이군.’
반시계방향이었으면 이쪽으로 올 뻔했다.
하민서와 마상욱이 거대한 나무 뒤편으로 사라지자, 한택수는 바짝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 낮은 자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서쪽으로 최대한 이동해서, 저들로부터 멀어지자.’
***
‘일단 지형부터 파악해야 한다. 내게 유리한 전장을 골라야 하니.’
소현배는 해안가에서 섬 안쪽으로 이동했다.
해안가에서 육지 쪽으로 사람 키가 넘는 높이의 언덕이 있어서 섬 안쪽이 잘 안 보였는데, 일단 안쪽으로 들어오니 섬 한가운데는 꽤 울창한 수풀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스나이퍼인 나에게 수풀은 최적의 전장이지.’
소현배는 20골드 뽑기로 얻은 아이템을 다시 확인했다.
- 결박석.
- 사용 효과: 상대방을 현재 위치에 고정시켜서 아주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냥 얼려버리는 거죠. 상대방이 공격을 받거나 1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꼼작 못하고 있을 때 멀리멀리 도망가는 게 좋겠죠? 아니면, 아주 세게 때려주는 것이 더 좋은 생각일 수도.
- 사정거리: 100미터.
- 주의 사항: 던전을 나가면 파괴됩니다. 이거 가지고 은행 털 생각이 아니시라면, 던전 안에서만 사용해 주세요! 아차차, 그리고, 이번 미션이 끝나도 파괴되고요. 이번 미션에 꼭 쓰세요. 꼭이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템.
던전을 나가면 파괴된다니, 아마도 FFA 포맷에만 나오는 아이템인 것 같다.
소현배는 잠깐 생각했다.
누군가를 무력화해서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더 좋은 활용법이 있다.
누군가를 들판 한가운데 같은 곳에 고립시켜서, 다른 구원자들을 유인하는 용도로 쓰는 것.
공격용으로 쓰면 한 사람을 잡을 수 있지만, 미끼로 쓴다면 더 많은 수를 잡을 수 있다.
‘엄폐가 절대 불가능한 곳에 결박시켜야겠지.’
공격대원들 중 마상욱만이 자신과 같은 26레벨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보다 레벨이 낮다.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레벨이 크게 낮은 이준기와 문아린을 제외하면 어차피 전원 25 또는 26레벨.
최고 레벨이기는 하지만, 큰 이점은 아니다.
‘이 정도 차이라면 템빨이 큰 영향을 미칠 텐데. 이준기 이놈이 오캄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들고 있고. 마상욱도 나보다 26레벨을 먼저 달았으니 나보다는 좋은 템을 들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준기를 잡기로 결정을 했지만, 소현배는 계속 갈등했다.
레벨 차이만 보면 쉬운 사냥감이다.
지금까지 네 명의 구원자를 죽인 소현배에게는, 쉬운 상대다.
경험치도 두둑하게 들어오겠지만, 무엇보다 오캄이라는 좋은 무기를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해운대’ 던전에서 보여주었던 이준기의 모습을 생각하면, 만만한 상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화염 정령, 레프리콘, 그리고 오크 족장 앞의 주술사 부대 둘.
이준기가 아니었으면 훨씬 고생했을 것이다.
공격대원 몇 명이 죽거나, 아예 전멸했을 수도 있다.
이준기는 어떻게 그런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을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를 공부해서 알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거짓 정보가 횡행하는 그곳에서, 맞는 정보만을 추려내서 기억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첫 사냥 상대로, 문아린은 어떨까?’
이준기보다 레벨은 높지만, 이준기와 달리 레벨을 넘는 뭔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FFA가 정말로 단 한 사람의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라면, 이준기를 꼭 처음에 죽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소현배가 이 던전에 자원한 이유는 이준기 때문이다.
문아린을 죽이면 27레벨이 되어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서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템빨에서 이준기에게 뒤진다.
FFA는 서로가 서로를 적대한다는 의미일 뿐, 하나가 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수도 있다.
일단 한 명을 죽이라는 미션이 떨어졌지만, 그 이후 전개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첫 번째 미션이 한 명을 죽이는 거라면, 그다음 미션은 뭘까? 모두 몇 개의 미션이 있을까?’
그때였다.
갑자기 등에 격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소현배는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끄아아악!"
***
“하하하! 죄송합니다. 한 방에 보내드려야 하는 건데.”
주석이 소현배의 등에서 칼을 뽑으면서 말했다.
FFA용 아이템 ‘은신 망토’로, 소현배의 바로 뒤까지 다가온 것이다.
소현배가 바닥을 기어 달아나려고 하자, 주석은 발을 들어 소현배의 등을 밟았다.
“으아아악!”
“소 선배님, 도망은 곤란합니다. 첫 번째 미션은 제가 먹어야죠. 아이템까지 썼는데.”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돌린 소현배는 공중을 향해 손에 쥔 다마스커스를 휘둘렀다.
주석은 가볍게 옆으로 한 발짝 움직이며 피했다.
상큼하게 웃으며 말하는 주석의 얼굴이 정오의 태양을 가렸다.
“거참 이상하네요. 한 방에 보내드리려고 쓴 기술인데. 오크도 이거 두 방이면 잡거든요. 소 선배님이 무슨 탱커도 아니고, 체력이 기껏해야 40 아녜요? 왜 안 죽었지?”
이죽거리는 주석을 향해, 소현배가 목소리를 짜냈다.
“사, 살인자…”
“우아, 무서워라. 살인자라니 너무하시네요. 미션이 그렇게 나왔는데, 어쩌라구요.”
“살인자…”
“소 선배님이 하실 말씀이 아니잖아요? 말해봐요,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어요?”
“무, 무슨 소리야?” 놀란 나머지 소현배는 아픈 것도 잊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 왜 자꾸 모른 척하시나. 다들 알아요. 소 선배가 던전에서 다른 길드 사람들 죽이고 다니는 거.”
“누, 누가 그래? 거짓말이야! 사, 살려줘!”
“우와, 소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추하시네요. 뭐, 실토를 안 하시더라도 죽여는 드립니다.”
주석은 상큼하게 웃으며 양손에 든 단검을 손안에서 빙빙 돌렸다.
등을 땅에 대고 누워 양팔을 휘저으며 신음하는 소현배.
주석은 양손의 단검을 찍기 그립으로 고쳐 쥐었다.
그리고 소현배를 향해 점프해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