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화살과 엔트로피는 상관관계인가, 인과관계인가?
이 인상적인 질문을 어떤 책에서 만났다.
나는 그 두 개의 명제가 상관관계도 인과관계도 아닌, 동치라고 생각했다. 같은 것을 그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얘기다.
현재 시간의 화살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이것이 엔트로피, 즉 열역학 제2 법칙이 통계적으로 성립하는 상황을 인간이 감각하는 방식, 이라고 본다. 단맛 미뢰 수용체에 결합하는 물질의 화학적 변성을 인간이 단맛이라 인지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열역학 제2 법칙을 시간의 화살이란 것으로 인식, 즉 감각한다.
양자역학의 발견에 따르면, 개개의 입자는 미시적 단위에서 별 말도 안 되는 움직임(경로)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 즉 통계적 상황에서는 파인만의 경로합에 의해 단순히 뉴턴 역학으로 환원되는 움직임을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 인류가 관측한 수준에서 보면, 거시 물체의 움직임은 파인만의 경로합, 즉 (아인슈타인의 부분적 조정을 가미한) 뉴턴 역학적 계산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거시적(통계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감각하는 것들은 모두 거시적(통계적) 산물들이고, 따라서 그가 감각하는 시간의 화살 역시 통계적인 차원, 즉 거시적 차원의 것이므로 엔트로피의 법칙이 부분적, 일시적으로 통계적 흐름을 역행하는 부분은 무시해도 좋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간의 화살은 그저 엔트로피의 다른 이름이다.
이 책에는 시간의 화살에 관한 또 하나의 설명으로 양자역학의 관찰을 들이민다. 이렇게 서로 연관된 (세상 모든 것들은 연관되어 있다!) 것들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은 과연 훈련된 과학자들만의 특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 흥미로운 시각은, 관찰에 의한 양자적 중첩의 붕괴가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라는 점, 즉 역방향으로 전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시간의 화살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건 인간 원리 내지 인류중심적 우주관과 거의 같은 얘기다. 이 주장을 극단적으로 끌고 간 사람들 중에서는 인간이 진화한 다음, 우주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순간에서 138억 년을 거꾸로 흘러가 우주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화가 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말장난이나 관종 행각이 아니라, 이렇게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존재한다.)
어쨌든, 이 설명에서도 시간의 화살은 결국 인간이라는 거시적 물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어지는 질문은 당연히, 인간 이외의 존재가 시간을 지각하는가, 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뇌피셜 헛소리라는 것을 감안해주시고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시간을 지각하는 것은 물론, 뇌다.
우리의 뇌는 예측한다. 시각의 경우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시각피질로 전달되는 정보는 시신경에서 유입되는 외부 데이터보다 대뇌에서 유입되는 내부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많다. 동영상 압축과 비슷한 방식인데, 다음 프레임의 그림은 바로 앞 프레임과 비교하여 대개 대동소이하다. 조금 전과 달라진 부분만 새로 계산하여 조금 바꾸면 다음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뇌는 예측했던 장면과 다른 부분만 외부 시각 데이터를 참고하여 수정한다.
바로 이 예측이라는 기능, 아니 뇌의 본질이 시간의 흐름을 전제하기 때문에 시간의 화살이라는 현상이 지각되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뇌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발달한 생물체라면 시간의 흐름을 지각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시간의 화살을 다소 느슨한 인과 관계, 내지 선후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시간의 화살은 결국 짧은 시간 동안 생존하는 생명체의 뇌가 지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귀납적 결론일 뿐이다.
매일 먹이를 가져다주던 친절한 주인이 크리스마스 전날 도끼를 들고 나타날 것을 전혀 예측 못한 거위나, 우리 인간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양자역학적 미시 세계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지만 거시 세계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예컨대 순간 이동이나 물리적 중첩 같은 현상이 사실은 거시 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기껏해야 10만 년 정도 생존해 온 인간이라는 종이 아직 경험하고 기록하지 못했을 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통계적"이란 말이 또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단 하나의 반례로도 뒤집히는 귀납적 결론을 우리는 100% 맞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통계적"이란 말을 개입시켜 이런저런 귀납적 임시 결론들을 우리는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뭐, 인간은 기껏해야 100년 정도 사는 존재 아닌가. 그러니 통계적 결론으로 충분하다. (케인즈야말로 참으로 현명하다!)
그런데도 우주의 시작과 끝이 궁금한, 아주 야릇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p.s. 더 최근에 읽은 책, <화이트홀>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우리 우주가 아직 열역학적 평형 상태에 도달하지 않아서 시간의 화살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대체, 너무 당연한 것을 넘어 그 질문을 던지는 우리 인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동어 반복인 얘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카를로 로벨리는 (단테 좋아하는 것은 알겠지만) 이제 시 쓰는 것 좀 그만하고 본 연구에 몰두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