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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정한 국민인가?

[책을 읽고] 유발 하라리, <넥서스> (4)

by 히말

민주주의의 위협, 포퓰리즘


인간의 다른 모든 정보 교환 행위와 마찬가지로, 선거도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선거는 국민의 다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하는 장치이며,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동의어가 아니며, 다수에 의한 독재도 아니다.

다수에 의한 독재는,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에 대해서는, 저자도 인정하듯 얀-베르너 뮐러가 대단히 잘 정리했다.


https://blog.naver.com/junatul/223138111377?trackingCode=external


포퓰리즘은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일단 정권이 수립되고 나면 다수가 아니어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국민', 즉 국민이 아니라고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치나 일제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예컨대 나치는 '진정한 독일인'이라면 나치 정권의 확장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했는데,

누가 진정한 국민이고, 누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지도자를 지지하면 국민이다. (205쪽)


얀-베르너 뮐러가 말하 듯, 배제는 한마디로 표현된다 - "너는 자격이 없다."

이 창의적인 배제 장치 덕분에, 포퓰리즘은 선거에서 져도 정당성을 유지한다.

그들은 '침묵하는 다수'를 대표하는 진정한 국민이기 때문이다.


명시적 배제와 침묵하는 다수.

이 특징에서 알 수 있듯, 포퓰리즘은 단지 독일이나 베네수엘라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선동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 지금 미국 대통령이다.


Prof._Jan-Werner_Müller_(51188135795).jpg 얀-베르너 뮐러


기술 발전과 마녀 사냥


기술 발전은 대규모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다.

고대 로마의 기술 수준으로는 대규모 선거도 불가능했지만, 대규모 정보 교환도 불가능했다.

단지 선거가 불가능했기에 민주주의도 불가능했다고 생각하면, 앞서 말한 오류,

즉 민주주의와 선거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기술 부족으로 불가능했던 것은, 대규모 정보 교환, 즉 소통이다.


재미있는 점은, 기술 발전은 대규모 전체주의에도 역시 필요조건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진시황이나 카이사르는 국민 하나하나를 완전히 복종케 하는 전체주의를 꿈꾸었지만,

단지 제한적인 전제주의만이 가능했을 뿐이다.


대규모 전체주의는 물론 히틀러도 꿈꾸었지만,

완성을 이룬 것은 스탈린이었다.

스탈린 전체주의의 핵심 장치는 완전한 정보 통제였다.


마녀 사냥과 같은 역사에서 알 수 있듯, 정보 교환은 진실 대신 허구를 퍼뜨리고,

때로는 아주 심각한 비극을 초래한다.


문제는 기술 발전이 이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언뜻 생각하면, 기술 발전에 의해 더 정확한 정보가 퍼지면, 진실이 허구를 이길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1929년 스탈린은 '쿨라크'(불온 계급)를 청산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대대적으로 정풍 운동을 벌였다.

그렇다면 누가 쿨라크였을까?


뽑힌 사람들은 대개 고립된 농민, 남편 잃은 부인, 노인 등 소모품 취그블 받는 사람들, 즉 근대 초기 유럽에서 마녀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사람들이었다. (254쪽)


<마녀의 망치>라는 베스트셀러(인쇄술)를 통해 들불처럼 번졌던 마녀 사냥,

그리고 정보 기관이라는 발명품을 통해 소련을 공포로 몰았던 쿨라크 추방 운동.

모두 기술 진보에 의해 진실이 가려진 결과에 의한 비극이었다.


이제, 인류는 정보 기술의 최첨단에 선 인공지능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공지능을 잘 다룰 수 있을까?

마녀 사냥과 쿨라크 추방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J._Sprenger_and_H._Institutoris,_Malleus_maleficarum._Wellcome_L0000980.jpg 베스트셀러 <마녀의 망치>의 비범한 표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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