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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과는 누가 감찰하나?

[책을 읽고] 유발 하라리, <넥서스> (3)

by 히말

진실보다 허구, 그리고 질서


시작하기 전에, 고대 문명에 대해 잠깐 경외심을 품고 가자.

기원전 1730년대에 (그러니까, 3700년 전) 기록된 서판에는 상속 관련 법정 분쟁에서 증거로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 내용증명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진실에 비해 허구는 두 가지 장점을 가진다고 한다.

간단하고, 편안하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표현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네트워크는 진실보다 허구를 더 많이 실어나른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는 질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질서'의 대표격이 바로 관료제다.

자연은 관료제로 되어 있지 않다.

카테고리별로 분류되어 있지 않은 자연을, 인간은 관료제를 통해 질서 있게 인식하고, 통제한다.


신화 또한 질서를 만들기 위한 허구다.

번개가 랜덤이라면 무서워서 어떻게 살겠나?

제우스가 노해서 번개가 치는 것이라는 거짓말을 믿으면,

제우스가 열 받게 하지 않도록 뭐라도 해볼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관료제의 부패


관료제는 질서를 위한 장치지만,

그 자체도 생명을 가진 네트워크로서 스스로를 유지하고 확장하려 한다.


그래서 관료제는 본질적으로 썩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저자는 과학기관이 그 예외라고 말한다.

그 비결은 자정장치다.


과학계는 제3자에 의한 검증이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공의 적>에 나오는 강신일 배우의 명대사를 떠올려 보자.


너희 같은 감찰과 **들은 누가 감찰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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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직(관료제)의 부패 정도는 바로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과학 기관이 강력한 자정 장치를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어려운 임무를 다른 기관에 맡기기 때문이다. (186쪽)


과학계도 부패에 면역되어 있지는 않다.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과학계가 다른 분야에 비해 부패에 저항력이 더 강한 것은 사실이다.



민주주의


과학계와 비슷한 것이, 정치체계에서는 민주주의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정치 영역에서도 강력한 자정 장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187쪽)


이 문장의 주어는 '민주주의'인 것 같다.

똑같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지만 국내에 비판 여론이 있었던 미국과 없었던 소련을, 저자는 비교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란 그런 신념 체계라는 얘기인데,

이 논의를 계속하면 순환논리의 나락으로 빠지고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에 비해 자기 비판 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지 여부에 따라 후행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하고 나면,

아무 의미도 없는 순환논리가 되고 만다.


그러나, 미국이 소련에 비하면 조금이라도 더 민주주의에 가까운 체제라는 주장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책의 주제로 돌아가자.

인공지능의 등장, 그로 인한 새로운 정보 네트워크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에 어떤 영향을 줄까?

어느쪽이 더 안정적일까?


'안정적'이라는 표현이 핵심이다.

어느쪽이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쪽이 질서를 지키고 서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어느쪽의 생명력이 더 강할 것인가.


질서가 무너진 다음에 문명이란 없다.


worlds-oldest-cookbook-yale-babylonian-collection-tablets-v0-537wznx0q88b1.jpg 기원 전 1730년대 점토판 (많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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