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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메모 - 2025년 4월 셋째 주

by 히말

1. 책


위대한 유산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진실의 흑역사

연금 이야기


***


이번 주 최고는 말 안해도 뻔하지만, <위대한 유산>이다.

난 찰스 디킨즈를 참 좋아하는데,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위대한 유산>뿐이다.


학창 시절 읽었던 책을 오랫만에 다시 읽으니 느끼는 점이 참 많다.

다시 읽으며, 허버트와 벤틀리를 헷갈리는 나 자신에 조금 놀랐다.

전혀 다른, 아니 반대인 사람 아닌가.


그 "May I?" 아저씨가 나중에 태도가 돌변하는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많은, 정말 많은 장면이 문장, 단어 단위로 기억나는 소설이다.


학창 시절 읽었을 때도 나는 이 소설을 에스텔라 중심으로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역시 에스텔라 중심으로 읽힌다.


여운이 길게 남는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이라 그런 걸까, 생각해 봐도

사실은, 아니다.


이 소설은 디킨즈 소설로서는 드물게, 1인칭 서술이다.

그 '내'가 집착하는 에스텔라가 서사의 중심인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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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디킨즈라서 운이 없었던 것뿐,

톰 필립스의 <진실의 흑역사>도 강추한다.


<인간의 흑역사>의 그 톰 필립스다.

더 설명이 필요할까?


<진실의 흑역사>는 헛소문과 사기꾼에 관한 흑역사다.

그의 촌철살인 블랙 유머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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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니멀리즘


이번 주 역시, 새로 생긴 물건, 떠나보낸 물건 모두 없다.


봄이 되면 대청소를 해야겠다는 클리셰에 왠지 집착하게 된다.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면,

도시에서 실패했을 때나 지쳤을 때,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집이라는 것이 있다.


간만에 거기 가보면, 2층에는 학창 시절 쓰던 방이 거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사적 장치로는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자.

이건 막대한 공간 낭비이고, 맥시멀리즘이다.


그 공간이 청소가 되어 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슬픈 일이다.

부모님의 감정이 전해지지 않는가.


두꺼운 옷들 정리해 넣으면서,

이 옷들이 정말 다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TubHPPv3t56AWPD4YRjVhh1cspNw7CKnRQzsN2QEbTQRoJ7roo9BcNSLa0uj3u2fQUpfBDWkayk5IeATNMpYLQ.jpg 대체로 이런 분위기



3. 물건에 대한 애착


내게는 아주 낡은 티셔츠가 하나 있다.

집안에서나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낡은, 무려 15년이나 된 티셔츠다.

15년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티셔츠에 2010이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어서다.


이걸 버리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살 적에, 공짜로 받은 티셔츠다.

그러니까, 돈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색감도 좋고, 빈티지한 프린트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만,

단지 그 이유로 버리지 못하는 걸까?


기억 때문일까?

대체 어떤 기억이 이 오래된 물건에 들러붙어 있길래,

나는 이 물건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걸까?


내게는 또, 이런 물건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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