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4) - 군비경쟁
왜 개똥지빠귀는 뻐꾸기에게 속는 유전자적 결함을 시정하지 않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군비경쟁 때문이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치타가 처음부터 폭발적인 스피드를 가졌을까?
모든 초식동물들이 느림보였을 때라면, 육식동물도 빠르게 달릴 이유가 없다.
생존기회를 늘리기 위해 속도라는 전략을 택하는 초식동물들이 등장함에 따라,
육식동물들 중 일부는 스피드 쪽으로 테크 트리를 타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육식동물이 스피드 쪽으로 테크 트리를 타지는 않는다.
따라서 어떤 초식동물들은 스피트 테크 트리를 타고 살아남는다.
다시 말해, 어떤 육식동물들은 빠른 초식동물과의 스피드 갭을 채우려 진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초식동물들은 속도의 우위를 계속해서 가져간다.
이 우위는 우주가 끝날 때까지도 유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토끼는 달리기 속도에 관한 한 군비 경쟁에서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선택압의 강도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이 진짜 요점이다. (4장 중에서)
선택압의 강도, 즉 각각의 종과 개체에게 나타나는 선택의 폭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각각 1종만 존재했다면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지만,
치타가 꼭 가젤을 잡아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가젤도 언제나 달릴 수는 없으며,
각각의 개체의 입장에서 보면 육식동물에게 먹히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죽는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테크트리 타는 방법, 즉 선택이 다르기 때문에 격차는 유지될 수 있다.
테크트리를 잘못 타서 입는 피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는 쪽이 우위를 가져가는 것이다.
즉, 군비경쟁에서 졌을 때 절멸의 위험에 처하는 종은,
그렇지 않은 종에 비해 군비경쟁에서 결국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개똥지빠귀는 뻐꾸기와의 군비경쟁에서 늘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뻐꾸기는 개똥지빠귀를 속이지 못하면 절멸한다.
반면, 개똥지빠귀는 뻐꾸기에게 속더라도 대가 끊길 일은 별로 없다.
모든 개똥지빠귀가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뻐꾸기는 모두 속이는 데 성공한 개체의 후손이지만,
개똥지빠귀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도달한 군비경쟁의 안정상태는, 우리같은 제3자가 보기에는 불공정해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