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마법의 비행>
이 책은 조금 독특한데, '비행'이라는 측면에 국한해서 진화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자신의 다른 책들을 인용하고는 하는데,
운 좋게도 나는 그 책들을 대부분 읽어서 문맥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예컨대 무화과와 무화과벌의 공진화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는데,
이 내용은 그의 다른 책에서 한 챕터 분량이다. 생략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늘을 나는 것.
우선 생각 나는 것은 새, 박쥐, 그리고 곤충이다.
그러나 청새치, 다람쥐는 물론 거미와 식물의 포자도 난다.
그 모든 이야기를 하니, 책 한 권이 충분하다.
왜 날까?
난다는 것은 어디에 좋을까?
우선 생각나는 것은, 포식자에게서 도망치는 데 좋다.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날아서 도망치는 피식자를 따라 잡는 데도 좋다.
식물의 경우에는, 자가 수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유성 생식의 본질인 유전자 혼합이 목적이다.
번식을 위해 나는 동물들로는 곤충들을 빼지 말아야 한다.
도킨스가 소개하는 어떤 나방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난다.
암컷은 날지 못하지만, 페로몬을 흘려 수컷들을 유혹한다.
진화는 필요성을 따진다.
별 혜택도 없는데 비용이 든다면, 사라지는 것이 진화의 섭리다.
호주와 섬 지역에 유독 많은 날지 못하는 새들이 바로 이 점을 재확인 해준다.
또한, (번식을 위해 날 일이 없는) 일개미와 병정개미의 날개가 없는 것도 같다.
나는 원리
비행기는 양력으로 난다.
양력은 뉴턴 원리와 베르누이 원리에 기반한다.
뉴턴 원리는 살짝 위로 기울어진 날개를 바람이 밀어올리는 것이다.
베르누이 원리는 날개 위쪽의 유속이 빨라 압력이 낮아지면서 날개가 전체적으로 들어올려지는 것인데,
정확한 기전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비행기는 빨라질수록 유선형이 중요해지는데, 공기 저항이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1차 대전에는 다양한 모양이었던 비행기들이 2차 대전을 거치고 오늘날에는 천편일률 비슷한 모양으로 바뀐 이유가 이것이다.
동물들이 나는 원리는 대개 동력 비행보다는 무동력 비행 쪽이다.
날다람쥐는 높은 나무 위쪽에서 뛰어 내려 공기 저항을 타고 다른 나무 아래쪽으로 이동한다.
다시 이동하려면 도착한 나무를 타고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새들이 나는 원리도 비슷하다.
대개의 새들은 하나의 상승 기류 위쪽에서 활강하여 다른 상승 기류 아래쪽에 다다른다.
그 상승 기류를 타고 다시 높이를 높여 다른 상승 기류 쪽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철새들이 V자 편대로 이동하는 이유는, 뒤쪽 새가 앞 새의 비행이 만드는 후류를 이용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선두의 새는 이득이 없다.)
군용기들이 편대 비행을 하는 이유도 같다.
그래서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는 여객기 편대 비행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수렴 진화
박쥐와 새의 날개는 수렴 진화의 사례로 유명하다.
박쥐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손이나 기타 부위의 피부를 얇게 펴 나는 동물은 많다.
박쥐는 모든 손가락이 길어지면서 손가락들 사이의 막을 이용하지만,
익룡은 가운데 손가락 딱 하나만이 길어져 다리까지 막으로 연결된다.
다람쥐 종류도 막이 연결되는 방법과 막의 범위는 다양하다.
단지 옆구리에만 막이 있는 종류부터, 팔, 다리를 거쳐 꼬리까지 막으로 덮이는 종류까지 있다.
새는 오직 팔만이 날개로 바뀌었는데,
그래서 다리는 완전히 자유롭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 (박쥐는 뒤뚱거린다.)
새의 날개가 가장 훌륭한 디자인인 이유다.
그러나 진화는 국소최적화의 원리를 따른다.
즉, 가지고 있던 것을 땜질해 쓰는 편이다.
그래서 다람쥐나 박쥐는 깃털을 만들 수도, 깃털 날개를 만들 수도 없었다.
새의 깃털은 애초에 단열용으로 진화한 것이 나중에 비행 용도로 사용된 것이라 추측된다.
곤충의 날개 역시 처음에는 태양열 수집 용도였다는 학설이 통설이다.
인간은 부력을 이용한 날틀, 즉 기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동물계에 이와 비슷한 것은 없다.
경골어류의 부레와 같은 것을 새들이 장착한다면,
새들은 고도 유지에 신경쓰지 않고 방향만 조절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의 진화는 그쪽 방향을 가지 않았다.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이 말한 것처럼,
목성이나 어떤 다른 거대 가스 행성에는 그런 종류의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겠다.
공중 부유 생물
바다의 플랑크톤은 바다 생태계의 핵심이지만,
'공중 플랑크톤'은 그저 다양한 이유로 공중에 체류 중인 생물들일 뿐이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태계의 부분이 아니다.
대부분은 식물의 꽃가루와 씨앗들이며,
일부 곤충들과 조류, 남세균이 섞여 있다.
이렇게 별 재미없는 공중 플랑크톤에 대해,
(근연주의 계산으로 유명한) 윌리엄 해밀턴은 독특한 가설을 내놓았다.
그는 높은 대기에 있는 세균과 단세포 조류 같은 미생물이 비구름을 형성하는 씨앗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들이 멀리 떠갔다가 비가 되어 내리면 새로운 장소에서 새 생명을 시작하는 혜택이 있기에 그렇게 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검증하기가 어려운 개념이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과학자가 많지 않다고 말하는 편이 공정하겠다. 나는 내치지 않겠다. 특히 내가 오래전에 (같은 제목의 책에서)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이라고 부른 것의 아주 탁월한 사례라고 볼 수 있어서다. (11장)
식물에는 날개가 없지만, 단풍나무 씨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오이(Javan cucumber)의 씨앗의 날개는 분명히 날개 모양이다.
(근육이 없어 동력 비행을 할 수는 없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RvB7SONZHug
반쪽 짜리 날개를 어디에 써?
창조론자들은 중간 단계의 동물들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점진적인 개선 같은 것은 이루어질 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반쪽짜리 날개를 어디에 써먹겠어? (14장)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대답을 해줄 수 있다.
예컨대, 파리의 퇴화한 날개는 평형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장 간단하고 정확한 대답은 유명한 동화에게 맡겨두자.
곰이 나타나자, 친구는 운동화 끈을 매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지금 달릴 준비를 해봤자, 곰한테서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친구는 대답한다.
"너보다 빨리 달릴 수는 있지."
그렇다.
반쪽짜리 날개는 그보다 더 못한 날개보다 좋다.
적자생존이란, 포식자가 아니라 경쟁자를 이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