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 그의 진화과학

[책을 읽고] 칼 짐머, <진화>

by 히말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찰스 다윈의 과학적 성취를 그의 삶과 함께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은 찰스 다윈 이후의 진화과학을 설명한다.

심지어 서문에서는 2005년의 연구 성과도 언급된다.


그러나 진화과학을 설명하는 대중교양서는 이미 많이 존재하며,

이 책보다 나은 책들도 많이 있다.

이 책의 강점은 찰스 다윈이라는 사람을 더욱 친근하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윈의 전기를 읽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9788901226484.jpg


절대온도의 습격


다윈의 주장에 반대한 것은 윌버포스 같은 성직자나 소위 '자연신학자'들만은 아니었다.


켈빈 경이 제시한 지구의 나이가 너무 적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그는 편지에 썼다. (3장)


절대온도 단위로 유명한 켈빈 경(윌리엄 톰슨)은 지구의 나이가 1억 년 미만이라고 주장하며,

다윈이 말하는 점진적인 진화가 일어나기에 지구의 나이는 너무 젊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물질의 충돌로 지구가 형성되었으며, 형성 직후 뜨거운 상태에서 줄곧 식어왔다고 가정했다.

현재의 지하 온도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지구의 나이는 1억 년 미만 이라는 것이다.


다윈이 죽은 뒤 14년이 지나 베크렐이라는 프랑스 물리학자가 방사선을 발견했다.

초기 충돌 열 이외에도 열원이 있다는 최초의 증거였다.


결국 다윈이나 켈빈은 지구의 나이에 대해 모르는 채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이후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지구의 나이가 훨씬 많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지르콘 결정에 갇힌 원자는 빠져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다른 물질이 새로 들어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르콘 결정 내 우라늄과 납의 비율로 계산한 결과, 아카스타 암석의 나이는 40.4억 년이었다.

지구의 나이는 이것보다는 많아야 한다.


탄소-14는 우주로부터 끊임없이 지구 대기로 공급되고, 식물의 광합성과 동물의 대사를 통해 축적된다.

그런데 동식물이 일단 죽고 나면, 대사 활동이 정지되므로 탄소-14는 계속 붕괴해서 사라질 뿐이다.

지르콘 결정 내 우라늄과 마찬가지로, 동식물 사체 내의 탄소-14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탄소동위원소 시계다.


탄소-12와 탄소-13의 비율도 사용된다.

유기물은 무기물에 비해 탄소-13의 비율이 낮다.

따라서 어떤 퇴적암층에 탄소-13의 비율이 높다면, 이는 생명 현상이 있기 전의 퇴적암층이라 볼 수 있다.


1996년에 발견된 퇴적암층은 38.5억 년 전의 것이었는데, 탄소-13의 비율이 낮았다.

따라서 지구 상에 생명이 나타난 것은 늦어도 38.5억 년 전이다.


따라서 지구의 나이도, 생명의 나이도 진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하다.



진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


다윈의 생전은 물론 요즘에도 진화과학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눈 같이 정교한 장치가 어떻게 설계없이 만들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도킨스가 여러 책에서 지적했듯이,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인간의 눈 같은 복잡한 장치가 만들어지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세대)이 걸리지 않는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한다.

1995년 존 코자라는 사람은 진화 컴퓨팅을 사용해서 사운드 필터를 개발했다.


그런데 일찍이 1917년 미국의 통신 회사인 AT&T의 조지 캠벨이 같은 장치를 발명했다. 코자의 컴퓨터는 코자가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도 특허를 침해해버린 것이다. (4장)


코드들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진화 컴퓨팅 생태계에서 언젠가는 스프레드시트 같은 프로그램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2026년인 지금쯤에는 이미 더 복잡한 프로그램이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



공진화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을 제외하면, 모든 진화는 공진화라 할 수 있다.

진화 압력은 좁은 의미의 환경, 그리고 넓은 의미의 환경에 포함되는 타 생물들에게서 온다.


예컨대 현화 식물은 식물계에 매우 넓게 퍼져 있다.

꽃이라는 기관이 없어도 식물은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좀 의아하다.

저자는 곤충과의 공진화에 그 답이 있다고 본다.

식물을 먹으려는 곤충, 그리고 식물의 번식을 도와주는 곤충의 등장에 의한 진화 압력의 결과다.


인간은 병해충과 싸우는 방법에서 공진화를 고려하지 않는다.

예컨대 임질은 성가시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병이었는데,

항생제 내성으로 이제는 목숨을 위협하는 병이 되었다.


반면, 곰팡이를 키우는 개미의 사례는 인간의 사례와 정반대로 슬기롭다.

이들 개미가 키우는 곰팡이는 다른 곰팡이의 침입에 취약하다.

인간 농업이 잡초로부터 받는 위협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개미는 제초제 대신 스트렙토마이세스라는 세균을 사용한다.

스트렙토마이세스는 생물이다.

따라서 진화적응을 한다.


제초제에 일단 내성을 키운 잡초는 다시는 제초제에 당하지 않는다.

반면, 세균에 내성을 키운 곰팡이는 그 내성을 다시 이겨낸 세균에 당하고 만다.

공진화를 무시한 인간과 공진화와 협력한 개미의 차이다.


어떤 학자들은 병원체와 싸우는 대신 길들이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예컨대 방충망을 치면, 모기를 매개체로 침입하는 병원체가 다른 병원체와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덜 해로운 병원체가 더 해로운 병원체를 몰아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


다윈과 비슷한 시기에 진화 개념을 발전시킨 월리스조차 인간은 신의 작품이라 생각했다.

다른 동물에 비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다윈은 월리스와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심지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까지 주장했다.


그럼에도, 동물과 인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는 꽤 있다.

1990년대 초에 인디애나 대학에서는 침팬지에게 석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으나 실패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침팬지가 다른 개체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비교군이었던 어린 아이들은 다른 개체들도 자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 즉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엔드 오브 타임>에서 브라이언 그린이 말한 것처럼, 인류의 기술(문화)은 진화의 힘을 왜곡할 수 있다.

예컨대 말라리아 백신이 널리 보급되면 겸상 적혈구를 만드는 유전자가 쓸모없어진다.

자연선택으로 '도태'되었어야 할 사람들이 사회적 보호망을 통해 살아남는 것도, 진화의 법칙에는 역행한다.


인류 진화의 미래 가능성을 좁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유전자 풀이 매우 좁다는 것이다.

현생 인류는 모두 아프리카의 소규모 집단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의 타이 숲에 사는 침팬지는 인류 전체보다도 유전자가 더 다양하다. (12장)


그러나 인류의 문화는 그 자체로 새로운 진화(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의 밈 개념을 인용하면서,

컴퓨터 네트워크가 자신만의 진화를 어떻게 진행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둔필승총 2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