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권 자기 혁명] 이임복의 <디지털 정리의 기술>
둔필승총"이라고 다산 정약용이 말했다. 둔한 붓이 총명함을 이긴다는 뜻으로,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먹을 갈아 붓글씨로 메모해야 했던 정약용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편하게 메모할 수 있다. 문제는 메모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생각도 못 했던 곳에서 메모했던 종이가 발견되고는 하는 현실이다. 메모라는 행위가 단순히 머리를 해방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활용까지 이어지려면, 체계적인 메모가 필요하고, 메모할 장소를 한 곳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클라우드의 힘을 등에 업은 에버노트야말로 최적의 메모 장소다. 에버노트 사용법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다. 단순히 에버노트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서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 <디지털 정리의 기술>을 소개한다.
저자는 수집, 정리, 발산의 3단계로 일하기를 권한다.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정리, 해석한 이후에 발산, 즉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3단계다. 에버노트는 수집과 정리 단계에서 생산성을 높여준다. 에버노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 곳으로 정보를 모아 두고, 자주 참고할 수 있게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정보의 가치는 높아진다.
수집
수집할 것은 크게 정보, 스케줄, 명함으로 나눠볼 수 있다. 덤불 속의 새도 사냥한 다음에야 내 차지가 되듯이, 수집하지 않은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웹 검색 등 서핑을 하면서 읽을거리를 스크랩하는 데 에버노트를 활용할 수 있으며, 구글 알리미를 통해 받는 문서를 에버노트에서 제공하는 메일주소로 수령할 수도 있다. 또한, 이메일 회신을 할 때 자신의 에버노트 메일주소를 숨은 참조로 넣어 두면, 메일 스레드를 통째로 저장하여 나중에 활용할 수 있다.
스케줄 관리는 크게 두 가지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정', 그리고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할 일 목록'이다. 에버노트로도 스케줄 관리가 가능하지만, 더 효율적인 앱은 따로 있다. 저자는 일정 관리 앱으로는 구글 캘린더나 솔 캘린더를, 할 일 목록 관리 앱으로는 분더리스트를 권한다. 솔 캘린더는 구글 캘린더와 연동될 뿐 아니라, 정해진 주기로 반복하는 일정을 저장할 수 있고, 일정과 관련한 장소를 지도로 첨부할 수 있는 등 편리한 기능을 많이 제공한다.
명함 관리 프로그램은 많이 있다. 저자는 캠카드라는 명함 스캔 앱을 소개하고 있는데, 명함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으면 자동으로 글자를 인식해서 주소록으로 저장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책이 나온 2015년 당시에는 없었지만, 리멤버라는 앱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명함 내용을 입력해서 관리해 준다. 일장일단이 있으므로 비교해 본 후 사용하면 된다.
정리
자료 정리에 있어 에버노트의 핵심은 노트북과 태그다. 노트북은 윈도 탐색기의 폴더와 같은 기능을 한다. 같은 주제의 노트를 모아서 노트북을 만들면 관리가 쉬워진다. 태그는 SNS의 해시태그와 같은 것이다. 자료를 수집할 때 주제 별로 태그를 달아두면, 나중에 같은 태그를 가진 자료를 모아서 보거나, 검색에 활용할 수 있다.
노트북과 태그를 같이 사용하면 2개의 차원에서 자료를 접근할 수 있어 편하다. 예컨대 업무 종류는 노트북에 따라 구분하고, 장소나 인물과 관련한 정보는 태그에 달아두면, 나중에 특정 인물과 특정 업무가 겹치는 부분을 검색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협상 노트북에 있는 ABC 상사 태그를 검색하면 ABC 상사와 관련한 협상 정보를 모아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기능은 역시 아날로그 자료의 디지털화다. 쉽게 말해서 종이 자료를 스캔해서 파일로 보관하는 것이다.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한 스캔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결과, 많은 양의 자료가 아니라면 스캐너가 굳이 필요 없다.
에버노트 자체의 카메라 기능을 사용하는 것도 간편하지만, 나는 캠스캐너(CamScanner)라는 앱을 추천하고 싶다.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게 하는 기능은 물론, 다양한 화질의 그레이 스케일, 간단한 이미지 편집, 심지어 글자 인식 기능까지도 탑재한 무료 앱이다. 스캔 후에 에버노트로 보내는 것도 쉽다.
아날로그 자료를 디지털로 보관할 일이 얼마나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써보면 왜 디지털 보관이 필요한지 저절로 알게 된다. 지저분하게 손글씨로 쓴 회의 기록은 디지털 사본의 형태로 저장하면 깔끔하다. 출장지 호텔에서 지도를 받았다면 굳이 종이 지도를 휴대할 필요 없이 지도를 사진으로 찍어 휴대폰에 넣어가면 된다. 물론 구글 맵이나 MAPS.ME를 다들 쓰겠지만, 호텔에서 추천 식당을 표시한 지도를 받았다면 스캔 기능을 사용해보는 것도 괜찮다.
영수증도 굳이 원본을 보관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디지털 사본을 만들어 에버노트에 저장하고 원본 종이 영수증은 버리면 된다. 집 전등에 맞는 전구라든가, 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 브랜드 이름을 하나씩 메모하기보다는 간단하게 사진으로 찍어 에버노트에 저장하면 편리하다.
에버노트는 마인드맵에도 도움이 된다. 마인드맵은 손으로 그려야 제맛이다. 손을 사용하는 것은 뇌를 활성화하므로, 단순히 기분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손으로 그린 마인드맵은 아무래도 지저분한 것이 당연한데, 이것을 캡처하여 에버노트에 디지털 사본의 형태로 저장한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컴퓨터용 마인드맵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깔끔하게 다시 그리는 것이다. 생각을 숙성시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하려면 아무래도 하루 이틀 정도 지난 다음에 정리 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
메모의 습관화
<디지털 정리의 기술>은 에버노트 외에도 다양한 디지털 정리를 위한 도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만, 몇 년 전에 나온 책이라서 최신 도구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약점도 있다. 이 책의 강점은 풍부한 실전 사례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경험을 기록할 때 더욱 활발하게 가동되는데, 이때 우리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느낀다. 매달 새로운 앱을 하나씩 배우는 삶을 살면, 길게 살 수 있다.
이번 시간의 실천 과제는 에버노트를 당장 휴대폰에 깔고 사용해 보는 것이다. 우선 영수증 정리를 에버노트로 해보면 재미를 느끼면서 에버노트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 그리고 할 일 목록을 에버노트에 관리해 보자. 에버노트는 내 휴대폰 퀵메뉴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리딩 리스트, 아이디어 노트, 독서 메모가 에버노트에 내가 주로 기록하는 것들이다. 일기 앱에 한두 달 분량의 일기가 모이면 백업본을 만들어 에버노트에 저장하기도 한다. 에버노트는 도구다. 사용하기에 따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