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엘렌 랭어, <마음챙김>
새벽 두 시. 곤히 자던 당신을 초인종이 깨운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한눈에도 부자로 보이는 신사가 당신에게 말한다.
"제가 아주 급해서 그런데, 가로 90센티미터, 세로 210센티미터 정도 되는 나무판이 필요합니다. 이걸 지금 당장 구해주시면 제가 일만 달러를 드리죠."
궁리해 보지만, 당신은 포기한다. 한밤 중에 그런 나무판을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사는 세워두었던 롤스 로이스를 타고 사라진다. 다음날, 친구 집 근처 공사장을 지나던 당신은 어제 그 신사가 찾던 바로 그 물건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한다. 다름 아닌 문짝이다. 어젯밤, 문짝 하나만 떼어 줬다면 일만 달러를 벌 수 있었던 거다.
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는 어제 당신 집의 문은 당신에겐 나무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로 90센티미터, 세로 210센티미터의 그 나무판은 '문'이라는 범주에 묶여 당신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43쪽)
우리를 한계짓는 것들
<마음챙김>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왜 이런 에피소드로 시작할까? 마음놓침(mindlessness), 즉 마음챙김과 정반대인 마음 상태는 범주적 사고와 자동 반응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사고가 우리를 한계 짓는다.
발상의 전환을 흥미롭게 설명하는 에피소드는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책에서, 강연에서, 심지어 술자리에서까지 듣는데도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 비밀은 우리 뇌의 효율적 작동 방식에 있다.
대니얼 캐너먼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설명하듯,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는 시스템1과 시스템2가 있다. 흔히 직관이라 불리는 시스템1은 우리가 살면서 구축하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빠르고 효율적인 사고를 관장한다. 구부러진 막대기 같은 것이 보이면 반사적으로 놀라 피하게 되는 것은, 우리 조상님들이 유전자에 쌓아 온 뱀에 대한 정보 때문이다. 저게 뱀일까 막대기일까 하고 고민하던 햄릿은 뱀에 물려 죽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전자를 남기지 못했다. 일단 피하고 보는 습관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그들이 긴 막대기에 대한 반사적 공포를 우리 유전자에 남긴 것이다.
시스템1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대개의 경우 정확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시스템1이 틀리는 1%의 경우에 일어난다. 구부러진 막대기가 뱀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발견되었다가 분실된 파라오의 황금제 홀이었다면? 당신은 부와 명성을 날려버렸다.
저자는 집에 불은 켜져 있으나 사람이 없는 격이라고 마음놓침을 설명한다. 마음놓침을 조장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범주라는 틀에 갇혀서 사고하는 버릇. 둘째, 생각하지 않고 반응하는 자동행동. 셋째, 한 가지 관점에서만 행동하게 하는 좁은 시야. 이 세 가지가 서로 미묘하게 다른 것은 맞다. 하지만 저자가 25주년 기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세 가지의 귀결은 결국 캐너먼의 '시스템1 사고'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챙김이란 대니얼 캐너먼의 처방처럼 의식적으로 시스템2를 발동시키는 것일까?
'속성' 마음챙김 기초
정확히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놓침과 시스템1은 거의 같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시스템2, 즉 통제처리가 마음챙김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저자는 부언한다.
마음챙김은 통제처리가 아니다. 시험을 위해 정보를 암기하는 일이나 세 자리 숫자에 네 자리 숫자를 곱하는 일 같은 통제처리는 대개 사람을 지치게 한다. 암기나 곱하기는 대개 마음챙김이 아니라 마음놓침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새로운 방식으로 해보려고 시도한다면 곱하기와 암기도 마음챙김 활동이 될 수 있지만 그럴 일은 드물다. 어떤 활동을 마음챙김 상태로 하려면 참신함이라는 요소가 도입되어야만 한다.(23쪽, 밑줄 필자)
이건 굉장한 발견이다. 저자 스스로가 '서양의' 마음챙김이라고 부르는 신식 마음챙김의 핵심 요소는 참신함인 것이다. 저자의 마음챙김을 기초학습 삼아 진정한 마음챙김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앤디 퍼디컴의 앱 '헤드스페이스'가 진정한 명상으로 나아가는 기초를 닦아주듯 말이다. 다시 말하면, 생짜 초보인 우리에게 마음챙김으로 가는 첫 단계는 모든 일에서 참신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명상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마음챙김이 불교의 마음챙김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컨대 참신함을 토대로 새로운 범주를 만드는 행위는 서양식 마음챙김이다. 하지만 동양식 마음챙김에서는 이런 행위를 명상의 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드러낸다.
몇몇 명상법에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심상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그 존재를 깨닫는 즉시 머릿속에서 몰아낸다. 하지만 또 많은 동양의 관점에서는 올바른 명상법을 통해 '탈자동화(de-automatization)'라고 물리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이 상태가 되면 기존의 범주들이 허물어지며 더 이상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경직된 범주의 틀에서 자유로운 이러한 상태는 이 책에서 말하는 마음챙김과 매우 비슷하다. (128쪽)
저자는 동양적 마음챙김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하기에 자신이 그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녀의 겸양과는 달리, 저자는 오랫동안 서양식 마음챙김을 수련한 결과 진정한 마음챙김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저자는 나폴레옹에 대항해 러시아를 지켜낸 쿠투조프 장군의 사례를 들어 마음챙김의 핵심적 특성을 설명한다.
새로운 범주를 만든다.
새로운 정보에 대해 개방적이다.
상황을 한 가지 관점만이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108쪽)
모스크바를 버리고 도주하는 일은 나폴레옹을 비롯한 대개의 사람에게는 패배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쿠투조프 장군에게는 전략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쿠투조프는 나폴레옹 군대의 움직임이라는 정보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했으며, 병참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봄으로써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저 셋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과정지향적 사고
인간은 결과지향적으로 생각한다. 인공지능에도 적용되는 이 공식은 당연해 보인다.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은 늘리고,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은 줄여야 한다. 하지만 생존이 제1 과제가 아닌 현대인은 상황이 다르다. 모든 결과 뒤에 과정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마음챙김이다. 이러한 과정지향적 사고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어떤 일의 과정에서 자신이 실제로 어떤 선택들을 했는지 인식하면 나중에 되돌아보며 죄책감을 느낄 가능성이 낮아진다. (124쪽)
예컨대 학생들은 논문을 쓸 때, 번듯하게 완성된 다른 사람들의 논문과 시작단계인 자신의 엉성한 논문을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번듯하게 완성된 논문의 뒤에는 지금 그들이 밟고 있는 그 괴로운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다.
즐거움의 기저에도 과정지향적 사고가 있다. 저자는 골프를 예로 든다. 기술이 발전하여 누구라도 홀인원을 하게 해주는 드라이버가 개발되었다고 하자. 치기만 하면 저절로 컵에 빨려드는 그 골프가 재미있겠는가? 골프란 한 타 한 타 줄여가는 재미에 치는 것이다.
마음챙김 상태로 산다는 것은 투명한 집에서 사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거실에서 지하실에 있는 어떤 물건이 필요할 경우, 그 물건이 지하실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할 때가 많다. 지하실에 있는 물건들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명한 집에 살면 물건들을 언제든 찾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집에서는 거실에 있을 때에도 지하실의 물건을 볼 수 있다. 지금 당장 그 물건에 대해 생각하거나 사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중략) 모든 것을 동시에 생각할 수는 없어도 모든 것을 언제든지 생각해 낼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274-275쪽)
투명한 집에서 산다는 것, 멋진 비유다. 하지만 일단은 방 하나씩, 아니 서랍장 하나씩 투명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투명함은 참신함에서 온다. 틀 밖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