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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24. 2019

"신장 거래를 허하라"

[잡식성 책사냥꾼] 앨빈 로스, <매칭>


세 종류의 식당이 있다. A 식당은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나비넥타이에 정장을 차려입은 종업원의 풀서비스를 받으며 순서에 따라 나오는 요리를 먹는 곳이다. B 식당은 예약을 받지 않는 대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자리가 없다면 번호표를 받게 된다. 캐주얼한 복장의 종업원은 빠르게 주문을 받고 빠르게 음식을 가져다준다. C 식당에서는 계산대 앞에서 캐셔에게 주문과 계산을 하고, 옆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쟁반에 음식을 받아 직접 테이블로 가져와 먹는다. 떠날 때도 쟁반을 들고 남은 음식과 포장지를 직접 버려야 한다.



테이블에 깔린 식탁보를 보고 세 식당 중 어느 곳인지 알 수 있을까? 당연히 알 수 있다. A 식당에는 아마도 하얀 리넨 식탁보가 깔려 있을 것이다. 또한, 손님이 바뀔 때마다 식탁보를 바꿀 것이다. B 식당 식탁보는 아마도 비닐 재질일 것이다. 손님이 바뀔 때 종업원이 행주로 금방 닦을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C 식당 테이블에는 식탁보가 없을 것이다.



위의 세 곳은 모두 식당이라는 같은 업종이지만, 손님이 몰릴 때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지점이 다르다. A 식당은 격식을 차린 주문 이후에 요리가 시작되므로 부엌에서 주문이 밀리기 시작한다. C 식당은 입장하려고 늘어선 줄에서, C 식당은 주문 줄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C 식당의 전형적인 사례. 식탁보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A 식당은 손님이 도착하는 간격을 조정하는 예약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B 식당은 식당 앞에 줄을 세워서 손님의 흐름을 통제한다. C 식당은 미리 준비한 재료로 정해진 메뉴를 빠르게 만드는 방식으로 병목 현상을 해결한다. 이것이 앨빈 로스의 <매칭>이 주장하는 맞춤 설계의 모범 답안이다.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식당들도 해결해야 할 공통의 문제를 갖고 있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은 시장의 세부적 내용과 그들이 다루는 거래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360쪽)




다양한 짝짓기의 문제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다뤄온 신장 교환 문제를 중심으로,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매칭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다룬다. 신장 교환이란, 각자 상대에게 맞는 유형의 신장을 확보하고 있을 경우, 이를 서로 교환하여 신장 이식 수술을 하는 방식이다. 두 아이의 아빠가, 자기 아들에게 맞지 않는 자신의 신장을 상대 아이에게 제공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된다. 



의사인 저자는 신장 교환 시스템을 계속하여 발전시켜 왔다. 처음에는 동시 이식을 원칙으로 했다. 먼저 이식받은 쪽이 신장 제공을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를 지정하지 않고 기증하는 사람의 신장을 시작으로 하면, 이식받은 환자 쪽에서 다음 신장을 제공하는 의무를 계약 내용에 포함시킬 수 있고, 동시 수술이라는 난관을 피해 순차적인 시술이 가능하다. 현재는 이러한 '신장 제공 사슬'을 아주 길게 늘이는 정도까지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한다.



비지정 신장 기부자가 촉발시킨 6건의 신장 이식 사례 © CNN



저자는 신장 교환의 사례를 시작으로, 레지던트-병원, 구직자-기업, 입학생-학교 등 다양한 매칭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알고리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책 초반에서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몇 쪽 분량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기 전에, 저자는 무려 200쪽에 걸쳐 레지던트 고용, 학교 지원, 채용 시장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미스매칭에 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문제는 같은 이야기를 두 번도 세 번도 아니고 한 다섯 번쯤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 228~248쪽에 이르러서야 결국 그 잘난 알고리즘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별것도 아니다. 차단쌍(blocking pair), 즉 서로가 상대를 제1 지망으로 하면서도 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간단한 알고리즘을 통한 반복연산으로 이를 배제하는 것뿐이다.




혐오 시장의 문제



이 책은 제4부, 즉 혐오 시장의 양성화를 다룬 제11장과 제12장만을 책으로 냈다면 아주 좋은 책이었을 거다. 저자가 직접 개발에 참여했다는 신장 매칭 시스템 관련 내용을 추가하더라도, 약 150쪽 분량의 훌륭한 책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나 정도 거물이라면 400쪽 분량은 내야지'라고 생각했는지, 정상인이 쓴 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희대의 자기복붙 책이 되고 말았다.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도 지겨웠는지, 게임이론의 대가인 섀플리와 자신이 공동연구를 했으며, 자신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때쯤 되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자 이제, 내가 빼앗긴 어이없는 시간에 대한 분풀이는 이만하면 됐으니, 이 책의 가장 제대로 된 부분인 혐오 시장의 양성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말고기 거래가 금지되어 있다. 혐오스러운 거래라는 것이 그 이유인데, "왜 혐오스러운가"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은 없다. 원래 혐오스럽다는 개념 자체가 좀 그렇다. 



신장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상당히 효율적인 분배가 가능해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심각한 과수요 상태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신장 거래는 분명한 이유로 혐오스러운 거래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대상화다. 사고파는 대상은 비인격적으로 대우받는 법이다. 노예제도가 이를 역사적으로 증명한다. 둘째, 강제성(coercion)이다. 누가 신장을 팔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이다. 즉 거래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장 공급자의 지위가 강제된다. 셋째, 동정심 없는 사회로 변해갈 것이라는 우려다.



저자는 경솔하게도 금주법의 예를 들면서 신장 거래 양성화를 은연중에 주장한다. 알다시피, 금주법은 마피아의 배를 살찌웠을 뿐, 음주의 폐해는 거의 조금도 줄이지 못했다. 저자는 신장 거래의 경우도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옛날 미국>의 한 장면. 친구들끼리 배신하는 사단이 난 이유도 결국에는 금주법 폐지 이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던 마피아들의 사정이 있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신장 교환도 패키지 입찰 경매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컴퓨터는 수많은 환자-기증자 쌍 중에서 가장 좋은 매칭을 찾고, 입찰의 매순간마다 수입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주파수대 사용권 패키지 세트를 찾는 골치 아픈 계산을 간단히 처리해 준다. (366쪽)



신장 거래 자유화의 보완 방법으로 저자가 드는 사례는 구매자를 정부로 한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채를 신장으로 갚는 사람의 수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장을 제한했을 때 발생하는 효율성의 손실은 '전산화된 시장'의 힘으로 메우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신장 교환 시스템을 설계해서 성공시킨 자신감 때문인지, 시장실패를 설계로 교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다.



시장과 언어는 집단적으로 활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해도 설계를 바꾸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어색한 철자처럼 일부 나쁜 설계와 엇박자를 내는 현실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설계를 다시 하면 된다. 아예 새로운 시장을 설계할 수도 있다. 시장 설계는 시장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연구하고 조심스레 감시할 수 있는 기회다. (374쪽)



시장은 자연 현상이 아니고 인간이 발명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인간에게는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언어라는 본성을 가지지 못했다면 문자라는 걸 발명했을까? 



계획 경제를 주장하는 책이 출판되다니, 과연 냉전이라는 것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30년만 과거로 돌아가서 저런 주장을 했다면 아마 CIA 밀실에서 조사를 받았을 것이다. 50년 전이라면 사람들의 손가락질 세례를 받으며 감옥에 갔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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