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책사냥꾼] 이완배, <경제의 속살>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이하 <스카이 캐슬>)이 역대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갱신 중이다. 'SKY 캐슬'은 극중 인물들이 사는 타운하우스의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 제목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입시에 목매야 할까? 대학은 인생의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가 이후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그럴까?
학벌에 대한 집착을 경제학적으로 보면 '신호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수많은 구직자들 중에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부족할 마당에,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돼 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을 데리고 갑자기 농구팀을 만들어야 한다면, 코치는 키 큰 아이들을 위주로 팀을 만들 것이다. 큰 키와 농구 실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업무능력과 잠재력을 판단하는 변수다. 정말 상관관계가 성립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중고차나 보험 시장에서 발생하는 역선택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중고차 구매자와 보험회사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모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보 수집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그래서 그들은 품질보증서나 건강검진 결과를 이용해 상대를 선별한다. 상대가 무엇을 조건으로 판단하는지 알게 되면, 이쪽은 최대한 그 조건에 부합해야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차별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양호한 건강검진 결과를, 구직자는 좋은 학벌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다.
사실 학벌이 좋지 않다고 해서 회사에 못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타당한 의문이다. <스카이 캐슬>에서 묘사되는 입시지옥은 명문대에 들어가서 얻는 열매에 비해 너무 혹독하다. 왜 부모와 아이들은 입시지옥에 빠지는 걸까. <경제의 속살>(1권 '경제학 편')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자.
함정 게임
'함정 게임'은 예일대 경제학 교수 마틴 슈빅이 고안한 경매 게임이다. 일반적인 경매에서 차점자는 단지 경매 물건을 구입하지 못할 뿐, 추가로 손해를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함정 게임에서는 다르다. 차점자는 자신이 입찰한 금액을 전부 몰수당한다. 낙찰자가 1000만 원을 불러 도자기를 낙찰받았다면, 바로 그 전에 900만 원을 부른 차점자는 자신이 부른 금액, 즉 900만 원을 몰수당한다.
마틴 슈빅 교수는 10달러짜리 지폐를 경매에 부쳤다. 이 물건의 가치는 당연히 10달러다. 1달러씩 호가가 올라간다고 가정하자. 일반적인 경매라면, 누군가가 10달러를 부르는 순간 경매가 끝난다. 승자는 10달러 지폐를 10달러 주고 산다. 9달러를 부른 차점자는 그냥 이익도 손해도 없이 낙찰에 패찰한다.
그런데 함정 게임의 규칙은 다르다. 10달러에서 경매가 끝난다면, 9달러를 부른 차점자는 9달러를 몰수당한다. 9달러를 손해 보는 것이다. 따라서 11달러를 불러 1달러를 손해 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이제 앞서 10달러를 불렀던 사람이 위기에 봉착한다. 10달러를 그냥 몰수당하느니, 12달러를 불러 2달러만 손해 보는 것이 낫다. 지옥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경쟁 사회의 큰 폐해가 승자독식의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패자에 대한 징벌이다. 일반적인 경매도 승자독식의 규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진짜 지옥은 차점자의 입찰액을 몰수하는 규칙, 즉 패자에 대한 징벌이 도입될 때 시작된다.
재수, 삼수를 하면서도 명문대 입시에 목을 매는 이유는 명문대에 들어가서 얻게 되는 달콤한 열매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이 실험의 교훈 아닐까.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징벌 때문에 입시지옥을 2년, 3년 이어가는 것이다.
패자를 벌하지 않는 사회는 일반적인 경매와 비슷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북유럽과 같은 곳이 그렇다. 입시에 실패하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다른 직업을 구해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대다수의 사회는 함정 게임이 지배하는 사회다. 패자에게 0이 아닌 마이너스의 손익계산서를 안기는 사회인 것이다.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함정 게임은 패자만 벌하는 것이 아니다. 승자도 손해를 본다. 앞에서 사례로 든 10달러 지폐 경매에서 승자가 20달러로 승리했다고 치자. 패자는 무려 19달러를 손해 보지만, 승자도 10달러짜리 지폐를 20달러나 주고 샀으므로 무려 10달러의 손해를 본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결과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SKY 캐슬'에 입성하지 못한 사람들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 역시, 얻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구조, 이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신림동 고시촌의 장수생들이 청춘을 다 바쳐 비효율적인 고시에 매달리는 이유는, 고시에 떨어지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고시에 떨어져도 언제든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그들은 적절한 시기에 고시에서 발을 빼고 더 나은 일에 매진할 것이다. (194쪽)
패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사회는 과연 가능할까? 북유럽은 어떻게 지금의 북유럽이 됐을까?
생각의 틀을 바꾸자
<경제의 속살>은 기존 경제학이 가정하는 인간, 즉 이기적 인간의 모습을 논박한다. 도구는 행동경제학과 게임이론이다. 스탠퍼드 심리학과 교수 리 로스는 실험을 통해 프레이밍 효과를 증명했다. 리 로스는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진행했다. 서로 격리된 두 사람이 상대방을 믿고 협력하면 둘 다 큰 이득을 얻지만, 상대방을 의심해서 자신만 빠져나가려 한다면 둘 다 큰 손해를 보게 된다.
한 팀의 학생들에게는 이제부터 '월가 게임'을 하겠다고 설명했고, 다른 팀의 학생들에게는 '공동체 게임'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월가 게임'의 결과는 일반적인 죄수의 딜레마로 수렴했다. 월가 딜러들의 무한 경쟁을 상상하며 게임에 뛰어든 사람들은 무려 70%가 배신을 택했다. 반면, '공동체 게임'에서 배신을 택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생각의 틀, 즉 프레임을 바꾸자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바뀐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균형점은 상호 배신이다. 그것이 전통 경제학에 따라 '합리적 인간'이 선택하는 결과다. '공동체 게임'이라는 이름만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결과를 바꿀 수 있다니, 전통 경제학에서는 상상도 못할 결과다.
스위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영어나 산수를 가르치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기, 줄 서기, 다른 아이 괴롭히지 않기 같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노르웨이 초등학교에서는 장래 희망을 이야기할 때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를 포함해서 이야기하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패자에게 벌을 주지 않는 북유럽 사회의 모습은 교육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북유럽 국가임에도, 스웨덴의 장기 기증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덴마크는 최하위 수준이다. 유럽에서는 운전면허증에 장기 기증 의사가 표시돼 있다. 덴마크에서는 운전면허를 발급받을 때, 장기 기증을 '원한다면' 박스에 체크를 해야 한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장기 기증을 '거부하고 싶은' 사람만 박스에 체크를 한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 교수가 찾아낸 해답이다.
<스카이 캐슬>의 극중 부모들은 자식을 서울 의대, 명문대에 가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린다. 고통스러운 지옥 속에 살면서도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는 믿음 하나로 버틴다. 그러다 누군가는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지옥불에서 살고, 다른 누군가는 지옥임을 깨닫고 탈출을 시도한다.
이 드라마가 던지는 화두를 잠시 생각해 보자. 패자를 벌하는 규칙을 당연시하는 사회는 승자에게도 손해를 끼친다. 남보다 조금 덜 손해 보기 위해 무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회. 얼마나 어리석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