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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13. 2018

이웃집의 시들어 가는 꽃

[서평]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

"바바라 부인과도 이렇게 이웃사촌이 돼서 행복해요. 고맙습니다."
평소에는 생각만 하고 하지 못한 감사의 말,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 (289-290쪽)


주인공 포포는 가마쿠라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며 혼자 산다. 이웃집에는 연세 지긋한 바바라 부인이 살고 있다. 이야기는 여름에 시작해서 이듬해 봄에 끝난다. 여름에는 이웃집인 바바라 부인 집에 시들어가는 수국을 아쉽게 쳐다보던 포포다. 시드는 것을 보느니 정리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남의 집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는 싫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듬해 봄, 바바라 부인이 자기 집에서 벚꽃을 보면서 꽃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우리 정원에 아주 멋진 벚나무가 있어. 그걸 여러분에게 보여주려고. 나처럼 꽤 나이 먹은 할머니여서 앞으로 얼마나 더 꽃을 피울지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포포,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 마.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 움직이지 못하는 날이 오는 거야."
그래도 바바라 부인은 아주 오래 살길 바랐다. 언제까지고 이웃사촌이길 바랐다. (272-273쪽)


포포는 할머니가 키웠다. 어머니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린 나이에 포포를 낳았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가문 대대로' 해오던 가업인 대필업을 이어받기 위해, 포포는 할머니에게 꽤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비뚤어졌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문구점을 이어받기 위해 가마쿠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외국에서 살았다. 포포는 할머니를 '선대'라고 부른다. 대필업을 물려주고 이어받은 관계, 그런 업무적인 관계를 나타내려 애쓰는 듯 보이는 말이다.

이런저런 편지의 대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포포. 어느 날 어떤 청년에게서 편지 뭉치를 받는다. 선대와 편지를 주고받던 이탈리아에 사는 일본 교포의 아들이 편지 뭉치를 들고 온 것이다. 포포의 할머니가 청년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들. 내용이 거의 포포에 관한 것이라서, 본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편지 뭉치를 읽으면서, 포포는 선대의 삶이 온통 포포 주변을 맴도는 위성과 같은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대필업이 집안 전통이라는 것도 포포와 함께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선대에 대한 생각이 변하면서,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이웃들에 대해 고마움을 새삼 느끼면서 포포는 꽃놀이를 즐긴다. 그리고 바바라 부인에게, 좋은 이웃사촌이 돼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동안 마음에 두고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낸다.

수국도 벚꽃도 시들어 간다. 포포에게 늦여름 수국은 보기 싫었지만 이듬해 봄 벚꽃은 아름답기만 하다. 시들어가던 수국은 정리해 주고 싶었지만, 죽어가는 벚나무는 그렇게라도 더 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한다. 바바라 부인에 대한 포포의 애정이 깊어져, 같은 자연 현상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렇게 포포는 선대에 대한 추억을 차곡차곡 다시 쌓고 있다.

시들어 가는 꽃을 단정하게 잘라주고 싶다는 생각은 꽃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꽃은 자연스럽게 시들어 가는 쪽을 원할지도 모른다.



<츠바키 문구점> 표지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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