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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52권 자기 혁명]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by 히말

진통제가 떨어져 고통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서 온종일 아이를 본 아내는 녹초가 되었다. 저녁때 귀가한 남편 존에게, 아내 바니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울먹인다. 진통제를 사다 달라고 동생에게 말했지만, 그는 그 부탁을 그냥 잊어버렸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말하는 아내에게 존은 자기방어 차원에서 말한다. 왜 내게 전화해서 부탁하지 않았느냐고. 존의 입장에서 상황은 이미 지나갔고, 아내는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일을 계속 이야기하려 한다. 해결책이 없는 상황. 짜증이 폭발한 존은 아내의 하소연을 잔소리로 생각하고 문을 나서려고 한다.

바로 그때,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준 무언가가 일어났다.
바니가 말했다.
"가지 말아요, 제발. 내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에요. 난 지금 고통스럽고,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제발 내 말을 좀 들어 봐요." (14쪽)

목표 지향적인 남자, 관계 지향적인 여자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서두에 나오는 저자의 일화이다. 어렸을 적에 재미있게 본 미국 드라마 <케빈은 열두 살>의 주인공, 케빈은 일상생활 경험을 상상 속에서 판타지 드라마로 펼쳐 내고는 한다. 같은 반 여자아이인 위니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케빈은 어느날 자기 반 여자아이들이 비행선을 타고 지구에 온 외계인이라는 상상을 한다. 지금 찾아보니 드라마가 존 그레이의 책보다 훨씬 먼저 세상에 나왔다. 존 그레이 역시 <케빈은 열두 살>을 보고 금성인, 화성인의 비유를 생각해 낸 것은 아닐까?


38b47a75b64ac86617a328d7c5a6e189b8bd0e49877501a3505ae6c709435da5.jpg?type=w773 케빈의 독백에 가장 자주 나오는 고민거리는 여자친구 위니를 이해하는 것이다. © New World Television


저자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와 같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지향점의 차이다. 화성인은 목표 지향적이고, 금성인은 관계 지향적이다. 관계 자체를 풍성하게 하기 위한, '대화를 위한 대화'를 금성인이 시작하면, 화성인은 상대방이 뭔가 문제가 있어 상담을 청해왔다고 생각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쓴다. 대화 도중에 급조된 해결책이 문제를 해결할 리가 없다. 금성인은 자꾸만 대화를 끝내려고 하는 화성인이 야속하기만 하다. 반면, 화성인은 왜 금성인이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자는 공감을 기대하는데, 남자는 그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1쪽)

화성인은 요청하지 않은 도움을 제안받으면 상대방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사실 금성인은 그저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이다. 예컨대, 운전 중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남편에게 아내가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 남편은 화를 낼 가능성이 높다. 아내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서로 대화하지 말라는 것인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세상은 가득 차 있다. 남녀관계야말로 그런 관계의 전형이다. 저자는 어떤 대화에서든지 해결책을 찾으려는 화성인의 '미스터 만능 수리공' 행태, 그리고 상대방이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주려고 나서는 금성인의 '가정진보위원회'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미스터 만능 수리공과 가정진보위원회가 하나에서 열까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화성인과 금성인이 지닌 바람직한 일면이다. 단지 타이밍과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던 것뿐이다. (43쪽)

남자는 여자가 대화를 원할 때 해결책에 목매지 말고 그냥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좋다. 여자는 남자가 요청하지 않은 도움을 먼저 제안하지 말고, 상대방이 도움을 바란다고 말할 때를 기다리면 된다. 해결책을 절대 제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타이밍과 접근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여자는 기분이 상해 있을 때만 아니라면 만능 수리공을 고마워하고, 남자는 자기가 먼저 도움을 요청한 경우에는 가정진보위원회를 고맙게 생각한다. 상대가 저항감을 나타낸다면 필시 타이밍이나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기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모든 관계의 기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다른 금성인과 화성인

목표 지향적인 화성인과 관계 지향적인 금성인의 차이는 문제 대응 방식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화성에는 동굴이 많다. 문제 해결을 위해 화성인들이 명상을 하는 장소다. 이 동굴은 가장 친한 친구조차 들어올 수 없는 장소다. 반면 금성에는 광장이 많다. 금성인들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겨서 동굴에 들어가서 해결책을 생각해보려는 남자를 붙잡고 도움을 주겠노라고 하면 상대방이 그걸 반길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여자를 외면하고 대화하기를 거부하는 남자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fantasy-3060718_960_720.jpg 화성인은 동굴 안에서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 Pixabay


여자는 남자가 동굴에 들어가는 것을 자신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으로 해석하지 말고, 기다리면 된다. 자신이 동굴에서 침묵하고 있을 때 여자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면, 남자는 불안함을 느낀다. 여자가 독서나 운동, 쇼핑 같은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며 남자가 동굴에서 나오기를 기다려준다면, 남자는 그 사려 깊음에 깊은 감사를 느낄 것이다. 한편, 여자가 힘들어하며 대화를 원할 때, 남자는 그저 귀 기울여 들어주면 된다.

남자나 여자나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경청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여자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남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해결책을 궁리해서 강요하는 것은 경청과 거리가 먼 행위다. 진실함을 가지고 고민거리를 들어주다 보면, 실제로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가 이런저런 해결책을 강요할 때 여자가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대개 그 해결책이 급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급조된 해결책에는 문제 자체는 물론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동굴에 들어간 남자를 기다려 주는 것 역시 일종의 경청이다. "무슨 일이 있어요?"라고 여자가 물었는데 남자가 "난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면, 정말로 괜찮은지 진위를 파악하려 하지 말고 일단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상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의문을 제시하는 행위는 경청과는 거리가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것처럼, "난 괜찮아요"라는 화성인의 말은 금성인의 언어로 바꾸면 "곧 괜찮아 질 테니 걱정 말아요. 고맙지만 도움은 필요 없어요"라는 뜻이다. 경청은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행위다. 경청한다면, 화성어-금성어 사전이 없더라도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해에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나는 이 책을 수년 전에 읽었지만,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는 감상과 함께 그냥 잊어버렸다. 남자는 목표 지향적이고, 여자는 관계 지향적이라는 말을 마치 공식처럼 암기하고 있어봤자, 실제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존 그레이가 책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변화의 순간을 경험했다. 금성인과 대화 도중, 자꾸만 해결책을 머릿속으로 궁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단순히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닌, 내가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충분히 느끼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을 향해 조금 기울인 자세, 적절한 눈 맞춤, 그리고 중간중간 호응하는 짧은 말이 상대방에게는 배려로 다가갈 것이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먼저 배신하지 않는 '좋은 놈'이 일등 한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인관계에 있어 황금률을 지키자는 결론을 내렸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살자는 것이다. 이번 시간에는 남녀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어디에서 오해가 싹틀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해에 그치는 지식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실천하자.

BOK00009821433IN.jpg?type=w773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 동녘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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