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왔다. 긴 휴일이라 오랜만에 편하게 쉴 수 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을 만나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 시간. 하지만 명절이 꼭 행복만으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평소에 사이가 좋았던 가족이 아주 사소한 문제로 인해 그동안의 끈끈했던 관계가 남보다 못한 사이로 변하기도 하니까…. 또한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신상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많은 질문이 오간다. 대체로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말이다. 오가는 질문 속에서 많은 사람이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중고등학생에게는 성적과 입시가, 대학생에게는 취업의 여부가, 직장인에게는 결혼의 문제가, 신혼부부에게는 출산의 문제 그리고 기타 다양한 이야기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질문 가운데 지금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바로 ‘결혼’이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결혼이라는 단어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결혼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봤다. ‘남녀가 서로 만나 함께하는 것’,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이란다. 그중에서 ‘서로 만나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나의 관심을 끌었고, 요즘 미혼의 사람들이 왜 서로 만나지도 않고 함께하지도 않는지(나를 포함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경제적인 이유’, ‘비혼주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함’.
우선, 결혼하려면 함께 살 공간이 필요하다. 주거의 문제, 바로 ‘집’이다. 듣기로는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 월급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7-13년 정도 모아야 수도권에 집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실제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꼭 수도권에 집을 사야 할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괜찮고 좋은 직장이라는 곳은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있다. 좋은 직장에 다녀야 어느 정도 수입을 보장받을 것이고, 그러려면 직장 근처 혹은 어느 정도는 가까운 거리 안에 살아야 할 것이다. 만약 한두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곳에서 출퇴근한다면 그 시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반드시 집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세나 월세 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집도 비교적 가까운 곳에 구하려면 꽤 큰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부모님의 도움이 아니라면 결혼할 나이에 수도권에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두 번째로 비혼주의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졸혼, 황혼이혼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 20·30세대의 젊은 부부들의 이혼에 관한 뉴스도 많이 늘었다. 시대적인 변화로, 가족과 전통적인 가치보다는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 중점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다고 한다. 자기 삶에 우선순위를 두고, 연인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결혼을 포기하고 자아실현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결혼이라는 관계를 맺느니 혼자 편하게 즐기며 사는 삶을 위해서 비혼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이다. 사람들을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 하지, 나쁘게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직접 만나야만 볼 수 있었던 타인의 모습을, 지금은 SNS의 발달로 터치 몇 번이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쉬워진 만큼 더 좋은 모습으로 보이도록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SNS에서 많이 보게 되는 것 중 하나는 ‘호캉스 ’이다. 호캉스는 멀리 여행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편안한 곳에서 좋은 서비스를 누리며 쉬는 것을 말한다. 물론 정말로 호캉스가 필요해서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는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 같다. 남들에게 좋게 보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편안한 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SNS에 올릴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가는 게 호캉스가 되는 점은 좀 유감스럽다.
나는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전시회장에 자주 간다.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나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좋은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이 좋아서 전시회에 가게 된다. 그런데 막상 전시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건 바로 ‘인증샷 찍기’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전시회에 온 것 같다. 물론 그것도 개인의 자유겠지만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결혼식에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카푸어’, ‘하우스푸어’ 같은 단어들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웨딩푸어’라는 말도 유행하는 것 같다. ‘웨딩푸어’란 결혼식에 많은 비용을 들여서 빚을 지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말한다. 결혼식을 아름답게 꾸미고 만드는 것은 신랑·신부의 자유이다. 하지만 많은 돈을 들여서 한 결혼식이 그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 그리고 우리의 행복이라고 말이다.
이것들 말고도 결혼하는 데 있어서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와는 다른 환경과 상황에서 발생하는 그런 어려움 말이다. 그렇기에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기도 하고, 피하거나 미루기도 하는 듯하다.
이번 명절에 사촌 형이 말했다. “어차피 결혼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데 그럼 결혼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어?”라고 말이다. ‘후회할 것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어차피 후회할 거 안 하고 후회하는 게 나을까?’ 이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리된 내 생각은 이렇다. 결혼이 절대 쉽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한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삶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는 그런 삶, 남들의 눈에 좀 부족해 보이더라도, 어쩌면 끝날 수 있는 관계를 맺더라도 말이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사랑만 있으면 됐던 철없는 20대의 연애처럼 사랑이 모든 어려움을 상쇄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랑의 힘이 이것들을 버텨낼 능력 정도는 선물로 주지 않을까?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하고 후회하자!
2023. 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