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계절

by Shin Juncheol

쌀쌀해졌다. 아침저녁으로 외투를 걸쳐야 하는 계절, 바로 가을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여행의 계절’ 등 여러 가지로 불리지만, 나에겐 ‘그리움의 계절’이다. 해마다 추워질 무렵이면 마음속에 가라앉아있던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추워서 사람의 체온이 그리운 건지, 지난가을 언제쯤 헤어진 연인 때문인지, 팔짱을 끼고 다니는 커플의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내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불현듯, 사랑했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바로 가족들이다.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 줬던 가족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들이 많이 생각난다. 나는 가족이 많다. 우리 가족은 나를 포함한 우리 3남매와 부모님이다. 하지만 가족의 범위를 넓혀보면 친가와 외가의 친척들 모두 우리 가족이다. 아버지는 5남매, 어머니는 8남매로 자라서 큰아버지, 고모, 이모, 외삼촌 그리고 사촌들까지 한꺼번에 다 모이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그만큼 추억도 몇 배이다. 그중엔 나를 유독 챙겨주고 사랑해 주던 가족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사촌 형·누나들을 보러 고모 집에 가곤 했다. 어느 여름방학에 고모와 고모부, 사촌 형, 누나 두 명과 나까지 총 여섯 명이 강원도로 여행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난 마티즈(지금의 모닝과 같은 경차)의 운전석 옆 조수석에 앉은 사촌 형 무릎에 서너 시간 동안 안겨 있었다. 강원도 오색약수의 맛이 좀 이상했고, 바다에서 튜브를 타고 놀다가 큰 파도를 맞아서 해변에 잠깐 기절해 있었던 것, 그리고 그 작은 차에 온 가족이 옹기종이 모여있었던 기억은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결코, 친절해 보이는 인상이 아니었던 고모가 특히 나를 많이 아끼고 챙겨줬다. 고모 집에 갈 때마다 맛있는 것을 사주고, 이곳저곳 데려가고 심지어 몇 번이나 레고를 사주셨다.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에는 (그 당시 상당히 큰) 레고를 다음 방학에 사주겠다고 하셔서 나는 다음 방학이 오기를 언감생심 기다렸다. 그런데 방학이 되기 전에 고모는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돌아가셨다.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고 나중에 부모님을 통해서야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던 고모를 갑자기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그러면서도 ‘이제 큰 레고는 가질 수 없겠구나’라는 철없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 고모에게 죄송했다. 시간이 흘러 고모가 가끔 떠오를 때면,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사랑이 생각난다.


고모만큼이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 가까이에 살았던 이모인데, 다른 이모들보다도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우리 집은 내가 중학교 2학년까지 경기도의 한 시골 지역에 살았다. 어린 시절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곳에서 나의 학업과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서울로 이사를 왔다. 서울의 풍경은 시골과는 매우 달랐다. 밤새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의 빛, 늘 상쾌한 공기를 마셨던 시골과는 다르게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 그곳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익숙하고 편한 사람과 있는 것이 좋았던 나는 아주 큰 결심을 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시골의 교회를 매주 가기로 한 것이다.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시골로 향했다. 편도로 한 시간 반이나 걸렸지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일이니 힘든 줄도 몰랐다. 매주 토요일, 시골에 가서 보내는 1박 2일은 토요일 저녁에 교회 모임을 하고, 근처의 이모 집에서 자고,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식이었다. 이모 집은 시골교회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들어가야 했는데, 모임이 끝나면 교회에서 데려다주기도 했지만, 이모가 데리러 올 때도 있었다. 이모한테 데리러 와 달라고 하면 이모는 몇 시든 꼭 데리러 왔다.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못 먹은 날엔 굳이 밥을 차려주던 이모, 엄청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일 년 동안 한결같이 그렇게 대해주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학업과 기타 등등의 이유로 교회를 서울로 옮기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이모랑은 명절이나 가끔 가족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만났다. 고3 시절이던 어느 날,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어? 공부는 잘하고 있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끝에 이모의 말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요즘은 왜 이모 집에 놀러 오지 않아?” 그때는 이모의 서운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나는 수능이 끝나면 놀러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게 이모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 이후 이모는 몸이 안 좋아져서 투병 생활을 하다가 쌀쌀해지던 가을에 하늘나라로 갔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사랑의 마음이 이 가을, 내 마음에 일렁인다. 말하지 않았지만 깊은 사랑이었고, 그것을 깨닫게 된 지금 난 그들에게 표현할 수 없어서 그리움이 더 커진다. 차가운 가을바람에 덜덜 떨면서도 내 마음만은 사랑했던,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점점 따뜻해진다.

IMG_7689.JPG
IMG_7681.JPG
IMG_7737.JPG
IMG_7698.JPG

2024. 경기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