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초 Jan 20. 2022

캐나다 협동조합주택 면접을 보다

Co-operative Housing

XX협동조합 주택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면접 보러 오실 수 있나요?



2년 전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던 Co-op housing(협동조합주택)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처음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 협동조합주택 입주 경쟁률이 워낙 치열해서 면접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주택이란 입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자치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주택을 말한다. 1970-80 년대에 정부의 지원 아래 밴쿠버에 많은 협동조합 주택들이 생겨났으며 현재 밴쿠버 지역에 260개 정도의 협동조합주택이 운영되고 있다.


 

협동조합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렌트비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죽지 않는 이상 협동조합주택에 공실이 발생할리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입주 경쟁률이 굉장히 치열하다. 이렇듯 협동조합주택이 인기가 많은 가장 큰 이유는 렌트비가 시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주택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렌트비는 주변 시세의 85% 이하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여러 협동조합주택의 렌트비를 살펴본 결과 대부분 시세의 60~70% 수준으로 운영 및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비싼 렌트비로 악명 높은 밴쿠버에서 협동조합주택은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커뮤니티 참여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주택 조합원은 커뮤니티 활동에 꼭 참여해야 한다. 청소부터 회계, 간단한 건물 보수는 다 조합원들이 처리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하는 일들을 주민들이 직접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협동조합주택의 렌트비가 시세보다 저렴하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이다. 

 

협동조합주택 규정을 보면 일주일에 2-3시간씩 의무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귀찮을 수 있는 조항이다.


하지만 나 같은 이민자의 입장에서 커뮤니티 활동은 좋은 사회 활동일 수 있다. 가족은 물론 아는 사람도 많이 없는 이역만리 타지에서 늘 가깝게 지낼지도 모르는 좋은 이웃이 생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협동조합주택을 지원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물론 렌트비 절약도 지원을 결심하게 된 큰 이유이기는 하지만...)



취업 면접보다 힘들었던 면접


이번에 면접을 보게 된 협동조합주택은 1988년에 설립된 주택이며 비교적 조용한 밴쿠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총 가구수가 20가구 정도로 다른 협동조합 주택에 비해 작은 규모였다.


면접은 저녁 7시 30분부터 진행됐고 무려 5명이나 인터뷰어로 나왔다. 면접은 8시 30분까지 1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20개가 넘는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지금껏 봤던 모든 면접 중에 단연코 가장 힘든 면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계속 같이 살아야 할 입주민을 골라야 하는 면접이니 취업 면접보다도 밀도 있게 진행이 된 것 같다. 


구글뷰로 본 건물 모습. 1988년 건물 치고는 나쁘지 않다


여러 질문 중 우리를 가장 당황시켰던 질문은

형편이 어려워서 렌트비를 계속 밀리는 입주민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머릿속으로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쫓아내야 되지 않을까요?"라는 1차원적인 대답이 먼저 떠올랐지만 왠지 정답이 아닌 것 같아 "몇 달간은 지켜보고 지속적으로 렌트비가 밀린다면 입주민 전체 회의를 통해 퇴거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협동조합 주택에는 정부로부터 주거 관련 보조금을 받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꽤 많이 산다. 정부에서 각 협동조합주택마다 저소득층 가구수를 할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온 것 같다. 면접이 끝난 뒤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네들도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은 없다고 했다.



지원을 철회하겠습니다.


면접을 본 다음날 전화를 걸어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통보했다. 면접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면접을 본 뒤 우리와는 맞지 않는 협동조합주택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면접에 합격할 시 입주 가능한 유닛이 설명은 투베드룸이라고 했지만 현재 사는 원베드룸보다 사이즈가 작은 것 같았고, 위치도 현재 사는 곳보다 외진 곳에 있어 출퇴근이 더 어려워질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또한 현재 거주 중인 주민들의 연령대별 비율을 보면 약 70%가 60대 이상의 노인분들이고 더불어 현재 영유아를 양육 중인 젊은 세대들의 수도 적어, 추후 아이를 낳아 다른 젊은 가족들과 소통하며 지내길 원하는 아내의 바람과 맞지 않는 것도 지원 철회를 결심하게 된 또 다른 이유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다른 협동조합주택에 계속해서 지원해 볼 생각이다. 렌트비를 절약할 수 있고, 무엇보다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커뮤니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구스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