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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May 05. 2022

#1. 나는 퇴사했다.

백수 일기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든 가슴속에 '사직서' 한 장쯤은 품고 있다. 매 순간 퇴사를 결심하면서도 책임져야 할 '무언가'가 있기에 쉽사리 내놓지 못하는 사직서. 항상 그만두겠다고 다짐하지만 당장에 모아둔 돈이 없거나 혹은 책임질 가족이 있기에 그만두지 못하고 억지로 다닌다. 일, 집, 일, 집 다시 일, 집…… 나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일인 걸까? 이 망할 굴레가 끝나긴 하는 걸까? 5일 일하고 2일 쉬고, 정말 쥐꼬리만 한 월급 받고 모은 돈 없이 살다간 안 그래도 어두운 미래가 정말 암담해질 것 같았다. 이 굴레를 끊고 싶었고, 2022년 2월 20일 나는 용기를 냈다.



"작가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이아무개씨. 무슨 일이야?"



"저, 일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어……?"



일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까? 스튜디오에서 처음 근무했을 때 여기가 베이비 스튜디오라는 걸 알았을 때도 그만두고 싶었고, 하루 여덟 팀 중 반의반 혹은 반 정도의 진상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다. 다만 말할 때를 타이밍을 잡지 못해 전하지 못했을 뿐. 한 가지 아쉬운 건 너무도 단조롭게 진행됐다는 점? 이 한 마디를 내뱉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렸던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상처를 덜 받을지, 굉장히 멋있고 깔끔하고 정돈된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작가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멍해지더라. 그래서 그냥 말씀드렸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샌님의 무심한 퇴직 의사는 경상도에 나고 자란 작가님의 마음을 후벼 팠다. 나는 태생이 그렇다. 소심한 성격 탓에 말을 할 때도 조용히, 조곤조곤 말하고 행여 오해가 생길까 싶어 감정을 빼고 말한다. 이런 서울 사람의 말씀이 작가님에겐 꽤나 충격이었나 보다. 무심하게 입사했던 나는 그렇게 무심하게 나갔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고, 우리는 내가 입사했던 그때로 돌아가 과거를 회상했다. 



입사 초기, 서울 사람과 경상도 사람은 맞지 않았다. 이 문장이 지역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는 문장이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서울에서 조신하게 자라온 나와 경상도의 억센 사투리가 일상이던 작가님. 감정을 배제한 내 말과 사투리가 섞인 작가님의 말씀은 서로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서로 약간의 이해를 하며 괜찮아졌다. 코로나 이전엔 하루 최소 여섯 팀에서 여덟, 아홉 팀까지 받았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종종 점심시간까지도 아이랑 놀기 바빴다. '웃는 모습'을 찍겠다는 부모님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해 아이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먹이고, 재우고, 아기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장난감에 빠져 사는 부모님들에게 아이들과 교감하고 노는 방법을 가르쳐 드렸다. 물론 그럼에도 내 말을, 우리의 말을 귀 닫고 듣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맥이 빠졌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이아무개씨는 언제가 가장 힘들었어?"



"음……. 제 이야기를 안 들어주는 어머님을 만났을 때요?" 



아이 사진을 잘 찍으려면 컨디션을 맞추고 '재밌게' 놀아줘야 하는데 많은 부모님들은 그걸 모른다. 혹은 외면하고 싶은 하는 걸지도. 웃는 모습을 찍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아이의 컨디션을 최고로 맞춰주고 놀아주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배고파 우는 것과 잠이 와서 우는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직접 놀아주는 것보단 동요가 나오는 튤립 장난감 하나를 툭 던져 놓으면서 웃으라고 말할 뿐이다. 장난감을 보고 웃는 아이는 극히 드물다. 특히 배고프고, 잠이 오고 지쳤을 때 장난감을 보고 웃는 아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게 가슴 아파 재우고 먹이는 걸 말씀드리지만 이상하게 절대 안 먹이고, 안 재운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는 밖에서 절대 안 자요." 나는 이 말이 가장 이해가 안 된다. 밖에서 집에서만큼은 재울 환경을 만들어 본 적이나 있을까? 어두운 곳에서, 핸드폰이나 장난감을 쥐여주지 않고 온전히 아이를 안고 집중해서 단 10분이라도 재워본 적이 있을까? 이런 부모님들 특징은 조용한 수유실에서 10분 이상 재워보면 10명 중 8명은 자는 것이다. 한두 번이면 괜찮은데 매일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괴롭더라.



아, 왜 하필 스튜디오에서 일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더라. 갑자기 많은 빚이 생겼다. 때문에 일을 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다. 다만 지금처럼 편의점이나 술집에서 일한다면 뭔가 먼 미래에도 비슷할 것만 같았다. 무작정 기술을 배우고 싶어 '사진관'에 지원했던 나, 알고 보니 이곳은 '베이비'스튜디오였다. 아기 사진을 찍는 곳. 아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될 일이야?'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아기 사진과 어른 사진은 정말 다르다. 아기 사진은 기본적으로 두 명의 인원이 붙는다.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한 명과 아기를 웃음을 담당하는 어시스트 한 명. 나는 의도치 않게 팔자에도 없는 아기를 삼 년 동안 보게 됐다. 나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아기처럼 순수한 생명을 볼 때마다 괜스레 뭉클해질 때가 있고, 웃음이 없는 아이가 내가 어떠한 액션을 취했을 때 웃는 모습을 보면 그날 쌓였던 피로가 한 번에 없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또, 언젠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2세 생각이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았던 경험이라 생각한다.



하여튼 과거는 과거일 뿐, 어찌 됐든 나는 퇴사 의사를 밝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곳에선 내가 원한 미래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상태의 유지보단 어디든 나아가고 싶었다. 물론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아기를 상대하는 것도 은근히 힘들지만 아기의 '부모님'을 상대하는 건 더 괴로운 일이다. 사실 아기보단 아기의 어머님을 상대하는 게 극심한 스트레스였고, 특히 진상 중에 '맘 카페'의 리뷰로 협박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탈모가 가속화되는 기분이었다. (최근 정수리에 땜빵이 하나 생겼다.) 낮은 임금과 대비되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탈주를 선택한 나.



작가님께선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 여쭤보셨고, 다음 사람을 구해야 할 테니 3월 말까지는 일하겠다 말씀드렸다. 다행히 중간에 실장님께서 출근한다고 하셔서 2월 말까지 하는 걸로 합의를 봤고, 나는 원래 없던 사람이 되기 위해 천천히 준비를 했다. 6단짜리 서랍을 뒤져 내 물건을 하나씩 챙기거나 버렸고, 내 컴퓨터에선 필요한 자료를 D 드라이브에 옮기고, 싹 포맷했다. 다음 사람을 위해 몇 가지 기본 프로그램을 깔아 둔 것 말곤 정말 새 컴퓨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말끔히 청소했다.





그리고 대망의 28일, 우리는 스튜디오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지방과 살코기의 비율이 적당한 목살 한 점과 쓰디쓴 술 한 잔. 그리고 맘속에 담아뒀지만 말하지 못했던 말을 하나씩 꺼냈다. 말 한마디에 한 잔, 말 한마디에 한 점. 모든 감정이 풀렸는지 모르겠다만 꽤나 괜찮은 마무리라 생각되는 마지막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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