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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버그 Apr 15. 2020

월급 65만원이어도 행복했다

일과 내가 하나가 된 기분

2012년 봄. 독일에서 막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와 인턴십을 하기 위해 휴학 신청을 했다. 마침 평소에 관심 있었던 세계 예술 축제의 인턴 채용 공고가 떠서 바로 지원을 했다.


출근 첫날 통보받은 월급은 무려 '65만 원!'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순진한 대학생이던 나는 "그래, 경험 쌓는다고 치자!" 하고 일을 시작했다. 과외도 병행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하네.


처음에는 홍보팀 인턴으로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일을 맡았다. 축제의 활기찬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들어왔는데 컴퓨터 앞에만 앉아 페이스북이나 끄적거리고 있다니 너무 지겨웠다. 그런데 마침(?) 자원활동가 총괄을 했던 다른 인턴이 갑자기 퇴사했고, 지금 맡은 일 대신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자원했다.


당시에 완전 '노잼'으로 생각했던 그 일을 지금은 메인으로 하고 있다니ㅎㅎ


축제의 자원활동가는 약 100여 명으로, 한 달 정도 진행되는 행사의 사전 홍보, 공연 지원 등의 업무를 한다. 자원활동가 총괄 인턴의 역할은 활동가들을 뽑고,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스케줄 표까지 일일이 짜고 일정에 펑크가 나지 않도록 계속 조율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리더십과 이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축제의 주제와 맞게 '댄스팀' 자원활동가들도 따로 선발했다. 춤을 잘 추는 대학생 8명으로 팀을 꾸렸다. 음악도 따로 준비하고 댄스팀이 안무를 짜서 다른 팀 자원활동가들에게 가르쳐줬다.


축제 전에는 대학로와 홍대에서 3번 플래시몹을 하면서 축제를 알렸고, 공연장에서는 공연 시작 전에 스태프 모두가 모여 플래시몹을 하면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추억의 대학로 플래시몹 현장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신났다!


이 외에도 각종 번역과 통역, 수만 부의 전단지 발송 등 6개월 동안 정말 알차게 쓰임을 당했다.


스트레스받는 일들도 분명 많았지만 엄청난 박봉과 업무량 속에서도 지금까지 나의 6년 경력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재밌었고, 또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1. 함께하는 사람들이 열정적이었다

우선 직원들 모두가 책임감 넘치고 똑 부러지게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으쌰으쌰 하면서 축제를 한 단계 한 단계 일궈나갔다. 자원활동가 중에서도 특히 더 열정적으로 도와준 친구들이 있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2. 예술가들의 순수한 열정이 아름다웠다

축제의 예술가들은 국내외 현대 무용수들로, 정말 순수한 열정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었다. 현실적인 어려움 따위는 그들의 꿈과 열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공연 자체도 감동적인 것들이 많았고, 예술가와의 대화 시간에 관객과 예술가의 징검다리 역할인 통역을 하며 공연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해외 예술가들과 함께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던 것도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3. 관객들이 행복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관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감동을 받아 충만해 보였다. 하나의 작은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도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필요한데 좋은 공연을 전달하겠다는 우리들의 열정이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느껴졌을 거다. 크고 작은 이벤트들도 준비했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재밌게 참여하는 걸 보면서도 뿌듯했다.


역시, 결국 다 사람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일과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았다. 평일 저녁에도, 주말에도 공연이 있어서 당연히 일정을 비워야 했고, 그에 대해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자나 깨나 축제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들 자체를 즐겼었던 것 같다.


인턴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나는 보다 현실적인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분명 일은 즐거웠지만, 문화예술 분야의 녹록지 않은 현실도 단단히 목격했기에 그쪽으로의 길을 더 모색하지 않았다.


아쉽다. 언제쯤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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