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맡은 업무는 교육 콘텐츠 기획자 겸 일본어 내용 전문가 겸 Project Manager 였다.
커리큘럼을 짜고 효율적인 웹 환경에서의 교육 콘텐츠(e-learning)를 기획하는 업무는 아무래도 프로젝트의 초반에 진행되기 마련이다.
이후 강사를 섭외해서 시강을 진행하는 것도 나고, 촬영 내내 모니터링을 하는 것도 이후에 검수를 하는 것도 일본어 내용 전문가(SME)의 역할이었다.
이것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처음 해 본 교육 콘텐츠 기획이나 커리큘럼을 짜는 일 등은 (아직 학생 신분을 벗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더욱 그랬는지) 손에 착착 붙었다. 대학 때 과외나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오래 해왔던 것도 '티칭 마인드'를 탑재하는 것에 일조한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Project Manager역할이었다.
타사의 경우 디자이너나 개발자도 PM을 맡는 케이스가 있다고 들었고, 실무를 맡지 않은 팀장이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케이스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정석대로(?) 기획자가 PM 역할을 했다.
PM역할이라는 것은 총책임자, 혹은 지휘자라는 거창한 메타포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실상은 눈치 100단을 향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게다가 나는 모든 실무자들 중에 가장 어리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개발자, 디자이너, 촬영자, 편집자 모두 과장 아니면 대리였고 나이도 대여섯 살은 많은 사람들이었다.
강사는 또 어떤가.
일본어를 10년 넘게 가르쳐온 사람에게 "선생님 이 부분 설명이 틀렸습니다." "선생님, 이 부분 발음이 어색합니다." 운운해야 한다.
대부분 나이스 하게 받아들이지만 간혹 내가 어리고 경력이 얕다는 이유로 "저 원래 이렇게 가르쳐왔는데 한 번도 틀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랄지 "뫄뫄 씨가 너무 까다로운 것 같은데 사실 이 발음은 이렇게도 해요."라며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돋우는 강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의 녹을 먹는 입장.
오류 투성이의 강의를 그대로 둘 수 없어서 그런 강사를 만나면 기운 뺄 것 없이 원어민 교수와 전화 연결을 해 주기도 하고 어느 순간 순한 사원의 탈을 벗어던지기도 해야 했다.
하나 생각나는 에피소드.
공교롭게도 통번역대학원 입시학원을 다녔을 때 나의 스승 (당시엔 눈도 못 마주쳤던 분들이다)이었던 분을 어쩌다 섭외해서 강의를 진행하게 된 경우가 있었다.
일본어 쪽에서는 난다 긴다 하셔도 카메라 앞에서는 내가 더 전문가이기 마련이라 실수로 마이크를 친다거나 손짓이 어색하거나 한 경우 NG를 내야 하는 것이다.
이중 한 분은 정말 조선의 카리스마... 였는데 이분께 강의 디렉션을 드리고 모니터링을 위해 자리에 앉으니 옛날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전,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돌아가면서 번역한 것을 발표하는데 東京(도쿄)라는 표현을 '동경'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걸 듣던 선생님은 동경이 아니라 '도쿄'라고 해야 한다며, 학생의 그 논리라면 大阪(오사카)를 '대판'이라고 읽을 것이냐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50명 넘게 꽉 찬 교실에서 누구 하나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다.(서로가 경쟁자였지만 서로를 애잔하게 보는 그런 공기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벌게진 얼굴을 다스리느라 진땀을 뺐었지.
내가 오늘은 그런 선생님에게 크리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선생님은 (무서운 것 빼고) 좋은 분이었고 멋지게 강의를 하고 계셨지만 부조정실 건너편의 나는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했다.
그나마 강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3~4주 안에 끝나고 나머지의 긴긴 시간은 내부고객 만족을 위해 힘써야 했다.
디자이너, 개발, 촬영, 편집.
어느 누구 하나 27살의 나에게 나이스 하지 않았다.
특히 당시 개발자는 프로토 타입에 대한 오류 보고를 하면 '기각'이라고 회신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도 오류를 기각하는 것은 대체 어떤 사고의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건지 알 수 없다.
(아마 체면 탓이 사원인 나에게는 '기각'이라고 해놓고 몰래 고쳐두었을 것 같다)
촬영, 편집자는 영상 쪽에 아직 문외한인 내게 전문용어를 쏟아냈다.
컷 당 프레임 수, 치찰음, 헤드룸, 화각, 로우 앵글..
2008년 당시에는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도 없었기에 일반인이 영상에 관해 아는 것이래 봤자 카메라, 마이크, 조명 정도가 아니었을까.
내가 알기 쉬운 용어로 이야기해주거나 용어에 대한 뜻을 설명해주기만 했어도 일이 덜 힘들었을 텐데 그때는 그렇게 쓰잘데기없는 것으로 힘을 빼던 시절이었다. (요즘 친구들은 확실히 이런 텃세가 덜한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렇게 '으른들'과 일하다 보니 배운 것도 많다.
우선 일에서 실수가 없어야 했다. 안그래도 얻을 것이 없는 평판에서 실수까지 잦으면 내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에 있어서의 신중함’같은 것은 또래들과 격 없이 일했다면 결코 가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움, 두려움, 기가 죽음과 같은 감정은 일을 재촉하기도 그르치기도 하는 법.
주로 나이나 연차가 많은 사람들이랑 일하다 보면 별별 ‘척’을 다 하는데, 대표적인 게 ‘알아들은 척’과 ‘놀라지 않은 척’이다.
전자는 명백히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하고, 후자는 상황을 모면하려다 성급하게 일을 그르친다.
입사 후 첫 아픔(?)은 디자이너와의 협업에서 왔다.
당시 나와 같은 팀에서 일하던 대리 (내 사수)는 디자인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다.
아직 제대로 일머리가 없던 나는 디자인 시안을 받으면 황급히 메일로 피드백을 회신하곤 했다.
그렇게 하면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그건 큰 실수였다.
이 모든 메일을 포워딩해서 받고 있던 사수가 "뫄뫄 씨 디자인 이거 컨펌 끝난 거야?" 라며 나의 등골을 서늘하게 한 것이다.
"뭐 문제 있을까요?"
"이거 색이 너무 칙칙한데 이대로 괜찮겠어요?"
"아... 제 모니터에서는 그렇게까지 칙칙하지 않았는데.. 다시 디자이너와 협의할게요."
(모니터 브랜드마다 색이 묘하게 다르게 보이는 건 때로는 좋은 탈출구가 되어준다)
디자이너는 내 컨펌이 완료된 상황에서 이미 코딩을 진행하고 있었고, 전체 색을 바꾸는(!) 중대 결정을 차마 메일로 할 수 없어 디자이너 자리로 쪼르르 달려갔다.
"대리님, 이거... 저희 대리님이 색이 조금 칙칙하다고."
예상대로 화산 폭발 수준의 분노가 펼쳐졌다.
내가 잘못한 것 - 상사의 의견을 누락한 것 -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가만히 그 폭풍을 맞고 서 있었다.
코딩하던 것을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시안 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이해했다.
이렇게 되면 전체 스케줄이 꼬이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디자이너가 나의 심장에 한 마디를 내다 꽂았다.
"뫄뫄 씨도 이 색깔이 칙칙하다고 생각해서 저한테 온 거예요? 이거 뫄뫄 씨 프로젝트잖아."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난 그저 상사가 그렇다고 하니 이거 사달이 났구나! 싶어서 쪼르르 달려온 것이지,
내 의견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내 프로젝트인데.
디자이너의 모니터에서 다시 본 디자인은 내가 처음 컨펌했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칙칙하지 않았다.
화이트에서 약간 톤 다운되어서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처음 보고 내린 판단이 맞았다.
모니터 탓이 아니었다. 그저 급한 불을 빨리 끄고 싶은 (내 사수의 빡침을 모면하고 디자이너가 더 작업하기 전에 멈추게 하여 덜 빡치게 하기 위해) 마음에 휘둘려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시간을 다시 돌려보자.
1. 디자인 시안이 왔을 때 디자이너가 아무리 재촉해도 상사와 먼저 공유했어야 했다.
2. 상사가 주는 의견은 어디까지나 의견일 뿐,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상사와 이야기해서 내 의견을 관철해내야 했다.
3. 만약 상사의 의견을 꺾을 수 없다면 '이거 저희 대리님이 그러는데' 따위의 말은 하지 말아야 했다. 타 팀에 가서 협조를 구하는 상황에서라면 내가 관철시키지 못한 의견도 결국 내 책임. 내 생각인 것처럼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실무자 역시 덜 빡칠 수 있다. (눈 앞에 허수아비를 두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니까)
이날 내가 깨달은 것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 내 안에 머물렀고,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책임감이라는 말을 넣을 정확한 상황을 찾아낸 것 같았다.
순간의 감정에 상황을 욱여넣지 않아야 한다.
책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인간의 모든 판단은 두 가지 생각에서 유래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두려움' 그리고 '사랑'.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은 것도, 타박을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리스크를 줄이고 싶은 것도 모두 두려움이라는 감정에서 온다.
두려움은 참 강력한 감정이다.
하지만 이 감정에 휩싸여서 내린 판단이 신중 할리도 없고 옳기도 힘들다.
일에 대한 애정.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진 책임감이라는 뿌리를 깊게 내 발 밑으로 깊게 내릴 것.
그래서 기준에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
사원 1년 차 무렵에 감사하게도 깨닫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