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2. 그 계약직은 왜 라운드숄더가 되었을까

by Gemma Han

앞 글에서 밝혔듯, 나의 두 번째 직장이자 가장 오래 다닌 직장에 입사하게 된 것은 정식 채용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당시 팀장님이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1년 계약직.

원래 티오가 있던 자리가 아니라서 우선 계약직으로 함께 일하자. 1년 후에 서로의 니즈가 맞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에게 일을 주는 건 함께 일하던 일본어팀 직원이었기에, 출퇴근 때 인사만 하던 팀장님에게 그런 이야기가 왔을 때는 솔직히 의아했다.


나의 원래 계획은 1년 동안 그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본어 통번역 입시에 다시 도전해 볼 예정이었다. 때문에 주말반 학원에도 나가고 있었고 틈틈이 기회가 닿을 때마다 통역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사 제안을 받고 나니 이상하리만치 통번역대학원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졌다.

한 번의 고배를 마신 탓에 조금 정이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닐까, 싶었지만 내 마음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통번역가에 대한 열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 전 달에 갔던 통역 아르바이트 탓이었으리라.




2006년 당시에는 가수 '비'가 아주 핫하던 때였다.

나에게 통역을 의뢰한 곳은 비의 굿즈를 일본에 수출하던 업체였다.

아무런 사전 자료도 오지 않았다. 간단한 대화를 통역하면 되니 그냥 오라고 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얼음장 같은 공기가 나를 감쌌다.

슈트 차림의 중년 남성 두 명은 이미 굉장히 화가 나 있었고, 통역 내용은 불 보듯 뻔했다.

나는 그들의 싸움을 통역해야 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둘은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약속이나 한 듯 정해진 대사만 뱉었다.


대금을 왜 지불하지 않는 거냐는 한국 업체 대표의 말에 왜 굿즈를 빨리 보내지 않는 거냐로 응수하는 일본 측 바이어. 아무도 대답은 하지 않았고, 둘 다 같은 질문만을 반복했다.

평행선을 걷는 대화 중 갑자기 한국 대표가 보란 듯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놈, 저놈 웃긴 놈을 봤나. 한참을 한국어로 중얼거렸지만 일본 측 바이어도 그게 욕이라는 걸 알아차린 눈치였다.

한참을 욕지거리를 퍼붓던 한국인 대표는 나에게, "지금 내 말 통역해."라고 했고, 나는 "못합니다."라고 했다.


그 욕을 대체할 일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통역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가관이 되어갔다.

일본인이 영어로 대화를 시작한 것.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 대표를 멕이려는 수작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어쨌든 통역사'로 앉아있던 나를 멕이는 짓이기도 했다.


왼쪽에서는 영어, 오른쪽에서는 욕.

참다못해 "저는 일어나 보겠습니다." 하고 그 진흙탕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실장이라는 사람이 수고했다며 봉투를 쥐어주고는 문까지 안내해주었다.

마치 황급히 퇴로를 확보해주는 사람처럼.


아, 내 시간이 모욕당할 수도 있구나.

웃긴 건 그곳에서 또 한 번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고, 당연히 나는 가지 않았다.




"네. 일해볼게요. 1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입사 제안을 받은 다음날 출근해서 팀장님에게 의사를 전달했고 나는 '기획자'라는 타이틀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식 출근은 며칠 후, 8월 1일이었다.

딱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이미 반년 넘게 아르바이트로 주 3~4일 출근하던 곳에 이제 매일 오는 것뿐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야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머리가 희끗하던 멋쟁이 할아버지. 청남방에 청바지. 작은 나비넥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내 자리 앞에서 선 채로, "잘 부탁해요. 정 차장이 알아서 잘 뽑았겠지."라는 말이 끝이었다.


솔직히 나는 설명이 더 필요했다.

나를 갑자기 채용한 이유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1년에 대해. 그리고 1년 후의 확률에 대해.


하지만 괜히 물었다가 '성가신 사원'으로 찍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1년 동안, 나는 '말 잘 듣는 착한 한 사원'으로 지냈다.

고분고분이 굽신굽신이 되었고 어깨고 등이고 둥그렇게 말려진 채로 지냈다.

퇴근하고 나면 온몸이 뻐근했다.


일은 재미있었고 보람 있었다.

사람들도 친절했고 사무실 분위기도 밝았다.

지난 회사에서의 업무와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지금 있는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회사가 좋아질수록 내 어깨는 점점 라운드숄더가 되어갔다.

이곳에 오래 있고 싶다.


순간순간 몇 달 전의 통역 아르바이트가 떠올랐다.

다시는 그토록 살벌한 '프리랜서의 세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의 유일한 전략은 이곳에서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부장이 기획자들(기획자는 나를 포함해 7명이 있었다)의 역량을 높인다는 취지로 외부 강사를 데려왔다.

몇 주 동안 교육 콘텐츠 기획, 교수 설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레 차장님에게 물었다.

"저도 교육 들어가도 돼요?"

"풉, 당연하지. 당신도 기획자잖아."


뭐 그런 걸 묻느냐는 차장님의 표정을 보며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내 상황을 생각하는 것과 차장님이 내 상황을 생각하는 것 사이의 괴리감.

그리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과 내 삶 하나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나 사이의 괴리감.



아니면 말지 뭐

아니면 어쩌지


1년 동안 나를 지배했던 것은 이 두 가지 마음이었다.




1년 후 정식 계약서를 받았다.

작년에 받았던 것과 같은 형식.

'계약직'이라는 말은 삭제되어있었다.




엄청난 안도감이 밀려왔다.

몇 년 더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온 안도감이 아닌,

이제 내가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 이제 내 미래를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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