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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Sep 15.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12

공공 인프라에서도 국민의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을 위해 고민하는 일본

2019.3.30 (토)


어제 체력 소모가 꽤 컸었는지 아침 일찍이 기계적으로 눈이 떠지긴 했지만,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피곤해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였다. 그래, 오늘 쉬기로 한 거 온천에 가서 몸 좀 푹 녹이자, 그리고 이왕 가는 거 쉽게 갈 수 있는 시내 쪽 보다는 그래도 주말인데 나들이 가는 느낌 나게 페리를 타야지 갈 수 있는 사쿠라지마에 있는 온천으로 가보는 게 낫겠다 싶었고, 간 김에 지난번에 못 가본 사쿠라지마 명소들도 같이 둘러보고 오기로 하였다. 그리고 바로 온천을 하러 가는 것보다 가기 전에 가볍게 땀을 좀 내고 가는 게 좋을 듯싶어, 첫날에 갔었던 시로야마 자연유보도를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사쿠라지마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가벼운 등산에 온천까지 오늘 제대로 재충전하겠는데라며, 나갈 채비를 한 후 호텔 밖을 나섰다.    


텐몬칸거리와 데루쿠니 신사를 지나 자연유보도 입구에 도착하였다. 한 번 와봤던 곳이라고 첫날처럼 여기가 맞는 길인지 두리번 거림 없이 자연스럽게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벌써 가고시마 현지인이 다 됐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봄이 성큼 더 다가왔는지 지난번보다 더 푸릇해진 숲을 거닐고 있으니 아침에 있었던 피로감은 온데간데없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현대인이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치유와 충전하는데 도심 속 자연의 역할이 중요하구나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일본인들이 잘 정비해놓은 숲길이나 공원들도 어찌 보면 이들이 중시 여기는 생산성과 효율성 증대를 위한 사회적 공공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여분 걸어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저 멀리 보이는 사쿠라지마와 아래 빼곡히 들어선 가고시마 시가지의 탁 트인 시야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가고시마에 좀 있었다고 그동안 가봤던 곳들 모두가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고, 동시에 당시의 기억들도 새록새록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현재 일본의 모습이 미래의 우리 모습이다라는 전제하에 일본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알고 싶어 지금의 일본이 있게 된 결정적 계기인 메이지 유신의 대표 지역인 가고시마에서의 한 달 살기를 계획하였고 그 가고시마에 온 지도 어느덧 12일 차가 되었는데, 애초 계획대로 일본에 대해 잘 알아가고는 있는 건지, 남은 기간도 유의미하게 잘 보내야 할 텐데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주변 거리를 둘러보며 사쿠라지마 페리항까지 도보로 이동하였다. 페리 전용 육교를 통해 터미널에 들어간 후 배에 탑승했는데, 자전거로 승선했을 때와 달리 챙겨야 하는 짐도 적고 자전거를 묶어놓고 올라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그런지 뭔가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했다. 나름 세 번째 탑승이라고 갑판에 나가 구경도 하지 않고, 마치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현지인처럼 무심하게 실내에 앉아 TV도 보고 창 밖을 바라보기도 하며 사쿠라지마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식사 시간대라 허기가 져 예전에 먹지 못했던 사쿠리지마 페리의 명물인 우동을 한 그릇 할까도 했으나, 내리자마자 바로 식사를 할 예정이라 허기짐을 좀 더 참아보기로 하였다.    


15분 정도 바다를 가로질러 사쿠라지마에 도착하였다. 자전거 하선 때와 마찬가지로 요금은 사쿠라지마 페리 터미널에 도착해서 내릴 때 지불하였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터미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점심식사를 할 아루코 바레노(アルコバレーノ)라는 식당이 있는 호텔 레인보우 사쿠라지마로 발걸음을 재촉해보았다. 


아루코 바레노는 국내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곳으로, 일본식 카레와 흑돼지 튀김꼬치를 맛볼 수 있다고 해서 사쿠라지마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한 번 가봐야지 했던 곳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입구에 서있는 메뉴판에 카레 메뉴가 있나 쓱 봤는데 '사쿠라지마 마그마 커리'라는 메뉴가 있었다. 마그마 커리라, 이름 한 번 임팩트 있게 잘 지었네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을 잡고 아까 본 사쿠라지마 마그마 커리와 흑돼지 튀김 꼬치를 주문하였다. 관광객을 유인할 정도로 식당 내부나 메뉴 구성이 특색 있진 않았지만, 마그마라는 단어에 걸맞게 매콤하면서 화끈거리는 커리 맛과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의 흑돼지 튀김꼬치 맛은 괜찮은 편이라 허기졌던 배를 잘 채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온천하기 전에 소화를 좀 시키는 게 나을 거 같아 식당 바로 옆에 위치한 나기사 공원(なぎさ公園)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낚시터에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는데, 낚시인들과 바다 그리고 바다를 가르며 유유히 움직이고 있는 페리의 전체적인 풍경이 이상적인 바닷가의 한 모습으로 느껴졌다. 


바다 쪽 산책로를 쭉 따라 걷다 보니 족욕탕이 나왔다. 총길이 10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긴 족욕탕이라고 하는데, 앉아서 긴코만 바다와 사쿠라지마 활화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였다. 

곧 온천을 할 거긴 하지만 족욕탕이 어떤지 궁금하여 나도 인파들 틈에 앉아 발을 담가보기로 하였다. 물이 뿌옇고 분비물이 많았는데, 발을 한 번에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 사쿠라지마 온천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 벌겋게 익을 때까지 담갔다가 발을 다시 뺀 후, 온천으로 가기 전에 사쿠라지마 비지터 센터에 잠깐 들르기로 하였다. 발만 담갔는데도 이동할 때 몸이 스르륵 풀리는 기분이었다.


사쿠라지마를 이미 두 번이나 와봤던 터라 지금 와서 비지터 센터를 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했지만, 센터 내 자료 전시물들을 통해 사쿠라지마 형성 과정을 쉽고 재밌게 알 수 있어서 이걸 보고 섬 일주 라이딩을 했더라면 지형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그리고 언제 있을지 모르는 화산재 폭발 때문에 사쿠라지마 학생들은 헬멧을 지참해야 하는데 그들의 모습이 특이하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은 자제해달라는 문구를 보고, 관광지이기 전에 현지인이 살아가는 곳인 만큼 현지인을 배려하려는 당국의 세심함도 느낄 수 있었다.  


비지터 센터를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한 아루코바레노 옆에 있는 사쿠라지마 마그마 핫 스프링(桜島マグマ温泉)으로 입장하였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어서 그런지 탈의실 안에 유료 코인 라커가 별도로 있는 걸 제외하고는, 내부 시설 및 구조는 여느 일본 센토(대중탕)와 유사하였다. 현지인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그냥 맘 편하게 온천을 즐기고 싶어 라커에 짐을 보관하고 탈의 후 탕 안으로 들어갔다. 탕 안에 들어서니 온천물에 함유되어있는 유황 때문인지 녹 냄새가 진동하였고 탕 안의 물도 아까 족욕탕 보다 더 뿌옇고 분비물도 더 많아 보였다. 활화산 지역에 있는 온천이라 그런지 색이나 탁도, 냄새 면에서 지금껏 봤던 온천물과는 뭔가 차원이 달랐다.     

탕 안에 몸을 담그니 나도 모르게 '흐어'라는 소리를 내게 되었고 몸이 사르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창 너머 보이는 바다와 가고시마 시내 뷰를 바라보는 가운데 창문 사이로 솔솔 들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온천을 즐기는 기분이 끝내줬다. 

내가 탕 안에 있을 때는 일본인 할아버지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할아버지께서 눈을 감고 계시다가 갑자기 온천물이 나오는 구멍 쪽으로 가시더니 양손으로 그 물을 받아 마치 귀한 약이라도 되는 냥 드시는 것이다. 온천물이 몸에 좋은 건 알겠는데 먹어도 되려나 나도 한 입 먹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탕을 나가시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웃긴 일이 생겼다. 할아버지 옆에 있던 아저씨께서도 물 나오는 구멍 쪽으로 스윽 가시더니 할아버지처럼 두 손으로 그 물을 받아 드시는 것이었다. 이 아저씨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셨었나라는 생각에 이 분이 탕에서 나가신 다음에 나도 똑같이 물을 받아먹으면 완전 코미디겠는데라며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나도 먹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괜히 먹었다가 탈 나서 고생할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냥 조용히 탕을 나와 의자를 하나 집어 들고 개인 슬롯에 앉았다.

샴푸를 하고 있는데 등 뒤로 옷 입은 사람 한 명이 바쁘게 지나가셨다. 일하시는 분인가 하고 다시 쓱 봤는데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탕에 아저씨가 아닌 아주머니가 지나다니면서 의자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본이 '성진국'이라고 해도 남탕에 아주머니가 들어오다니. 일본인들은 탕에 들어올 때 개인 타월로 중요 부위를 가리고 다녀서 여성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크게 거부감이 없는 건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남자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남자 화장실에서 소변볼 때 아주머니가 불쑥 들어오셔서 청소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들이 이 광경을 보면 뭐라고 얘기할지 몹시 궁금해졌다. 역시 일본이 AV 선진국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려나. 


온천을 마치고 나오니 몸도 나른한 데다가 햇살까지 강렬하게 내려 쫴 머리가 묵직한 게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목욕하고 한 숨 자고 나면 언제 피곤했냐는 듯이 개운해지는데, 오늘 이왕 제대로 쉬기로 한 거 사쿠라지마 일정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가서 잠깐 자고 일어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가고시마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잠깐 들른 곳은 사쿠라지마의 특산물인 코미깡(작은 귤)과 다이콘(무)을 볼 수 있는 마그마 핫 스프링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히노시마 메구미칸(火の島めぐみ館)이었다. 건물 1층 내 매장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코미깡은 제주 한라봉보다 크기가 조금 작긴 했지만 생김새가 비슷해 어떤 맛인지 궁금하여 한 봉지를 구매하였고, 다이콘은 세계에서 가장 큰 무라고 하여 엄청 클 줄 알았는데 판매하는 것은 그렇지는 않았지만 대신 단단하고 실해 보이는 것이 날 것으로 먹어도 맛있을 거 같았다. 

코미깡을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매장 벽면 쪽으로 코미깡 아이스크림을 구매하려는 줄이 길게 서있어 나도 호기심에 하나 사 먹어보았다. 현지 특산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려나 했지만 일반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귤 향을 살짝 첨가한 것이라 맛은 살짝 실망스러웠다. 이번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냐는 관광객의 심리를 활용한 특산물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받아들이자며 실망스러운 마음을 달래기로 하였다.  


사쿠라지마 페리항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었다. 페리 앞 공터에는 승선 대기를 하고 있는 차량들이 꽤 많았다. 페리에 탑승한 후 실내에 있을까 갑판으로 나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실내를 배회하는 우동 국물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였다. 배가 고프건 아니었지만 왠지 오늘이 아니면 남은 일정 동안 먹을 기회가 없을 거 같아 한 그릇을 먹어 보기로 하였다. 

기본 메뉴를 주문한 후 면발과 국물을 같이 한 입 후루룩 해보았다. 맛은 그냥 평범하였다. 하지만 선상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는 행위가 선사하는 분위기가 뭔가 특별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는데, 이래서 여기 우동이 사쿠라지마 페리 명물이라고 하는건가 싶었다.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갑판으로 나와 점점 가까워지는 가고시마 시내를 바라보며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가고시마 페리항에 도착하니 온천하고 바로 나왔을 때보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그런지 피곤하고 졸려 눈이 감길 듯 말 듯 하였다. 어서 방에 가서 한 숨 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15분 정도를 빠르게 걸어서 겨우 방에 도착하였고, 도착하자마자 옷만 빠르게 갈아 입고 모든 피로가 날아가기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한참을 자고 나서 눈을 떴다. 혹시 일자가 바뀌었나라는 불안함에 휴대폰 일자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아직 31일 토요일 오늘이었고, 시간도 생각보다 얼마 안 된 저녁 7시 반이었다. 엄청 깊게 자서 꽤 늦은 시간인 줄 알았는데 역시 오래 자는 것보다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 평소 생활 속에서 효율성 향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에 무엇이 있는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라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계속 방에 누워있는다고 충전되는 것도 아니라,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하면서 리프레쉬도 하고 내일 계획하고 있는 기리시마 라이딩 일정도 점검하고 책도 읽을 겸 탈리스 커피로 향하였다. 주말 저녁 시간대임에도 카페 내에 남녀 커플들 보다는 주로 여성들끼리 얘기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물론 프랜차이즈 커피점이라 남녀 커플 비중이 개인 카페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일본인 남녀 커플은 주말에 식사 후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리고 카페에 오면 올 수록 일본인들에게 카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공간이지, 개인이 독서나 공부를 위한 공간으로서 활용하는 비중은 확연히 낮구나라는 생각이 좀 더 확고해졌다.


두 시간 정도 카페에 있다가 영업 종료 시간이 거의 다 돼 카페를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오뎅과 샐러드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방에서 먹었다.  

내일은 가고시마 북쪽에 위치한 기리시마(霧島)라는 곳을 둘러보고 오는 편도 55km 정도 되는 라이딩을 할 예정이다. 오늘은 푹 쉬면서 리커버리 한 만큼 내일은 알차고 파이팅 넘치는 라이딩될 수 있게 잘 준비해서 또 다른 모험을 향해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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