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그만둔다는 건

by 쥰쥰

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 공연, 노래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공부를 그냥저냥 했던 지라 그냥 공부만 하던 범생이로 자라왔고, 그냥 공부해서 들어갈 수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1학년을 다녔다. 그러다가 어떤 우연한 기회로 1년 휴학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내가 꿈꾸던 예능 쪽을 경험하게 되고, 그러다가 자퇴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연극전공으로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공연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미국에 있으면서, 특히 학교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편입으로 들어갔던 거라 대학생활이 조금 짧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마지막 학기 때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학과 정기 공연 무대감독, 학생회, 외부 공연장 무대 조감독, 학교 카페 알바에 학점은 풀로.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다했나 싶은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했으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뭔가 길이 보였다. 초반에는 거의 파트타임이라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꾸준히 무대감독으로 경험을 쌓고 인맥을 이어나가면 나도 진짜 공연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니 신분을 얻기가 힘들었고 여기저기 방법을 강구했지만 혼자서 버티는 것이 힘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에서 혼자 3년 반을 지내다가 너무 지쳐서, 내가 타지 땅에서 왜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나 싶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서 외롭게 버티고 있나 싶어서 코로나가 터지기 바로 직전 19년도 말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공연 쪽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관련 채용공고를 찾아보고 커뮤니티를 뒤적이고 실제로 여러 곳에 스태프로 지원도 해봤다. 무대감독으로 채용되었던 곳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1주일 만에 잘렸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 공연계는 정말 진입장벽이 높았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픈런 공연 조연출로는 뽑아주지도 않았고 무대감독으로 뽑기에는 경력이 부족하거나 한국 무대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뭐 하나 시작하기 어려웠다. 없는 인맥을 다 동원해서 미국에서 같이 일했던 감독님 공연도 보러 가서 인사도 하고 한국에서 어쩌다 알게 된 음악감독님한테도 연락해 보고 심지어 카톡 플러스친구에 ‘무대감독’이라고 검색해서 모르는 사람한테 무작정 메시지도 보내봤다. 나 좀 써달라고.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대학로 공연에 합류해서 하우스 어셔로 일하게 되었는데 무대 감독을 하고 싶었지만 하우스에 있는 게 너무 싫었다. 한국 특유의 공연 문화와 공연 덕후들을 상대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특히나 무대 팀은 아직까지 몸을 써서 일해야 하니 체력 좋은 남자를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실제로 함께 기획사에 입사한 남자 동기는 일하다가 무대 감독님의 눈에 들어 무대팀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사실 내가 공연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같이 나누고 싶어서였다. 특별히 창의력이 없던 나에게 무대감독이라는 직무는 공연 쪽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어쩌면 ‘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파워 J 성격과 디테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무대감독으로 일하면서 장점으로 발휘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잘하는 부분을 극대화하여 일할 수 있었던 환경 덕분에 미국에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공연을 하면서는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에 하나는 남들 일할 때 쉬고 남들 쉴 때 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는 모두 내가 정말 무지막지하게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한가한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사람을 좋아했던 나에게는 이게 정말 힘들었다. 유학생이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가족들이 없으니 친구들을 만나야 되는데 시간 맞추기가 참 어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한 팀으로 하나의 공연을 함께 올린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스케줄적인 부분과 더불어 어셔라는 일 또한 나랑 정말 안 맞았다. 말이 어셔지 그냥 CS였다. 그것도 아주 힘든.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관객들의 컴플레인들. 한국에서는 어셔로 관객들을 맞이하면서 하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모니터링이라는 이유로 공연 내내 관객들을 보면서 앉아있어야 했던 것도 지치게 하는데 한몫했다. 특히 공연 내용도 메시지나 여운이 남는 공연이 아니라 내가 생각했을 때 의미 없는 B급 유머들이 판치는 공연을 보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인지 공연은 원래 스케줄보다 연장공연을 하게 되었고 결국 나는 공연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일반 회사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연을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 아니 어쩌면 이제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렇게 마음을 먹게 된 건 내가 후회 없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봐서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와서도 틈만 나면 공연 채용공고를 기웃거리고 마음먹고 다른 걸 배우다가도 공연 쪽으로 발 담글 기회가 왔을 때 미련 없이 다시 공연을 택했다. 코로나로 무대감독으로 채용되었다가 공연이 무산되어서 다시 알바로 전전할 때도 어떻게든 대학로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대학로에 서서 일해보니 그때서야 미련 없이 툴툴 털고 다른 걸 할 수 있게 되더라. 다시 내가 하고 싶은 다른 걸 찾게 되더라. 그 이후 다시 공연계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점차적으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그냥저냥 회사에 다니면서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내 돈 주고 예매해서 사람들과 함께 보러 다니는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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