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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city Mar 31. 2022

#19. 회사에 남은 82년생 김지영의 삶은..

#19. 회사에 남아 일하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반성하지 않는 삶보다 거절하지 않는 삶이 더 어렵다.

인간다움이란 무얼까? 어렵고 힘들어도 항상 나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나의 힘으로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해왔고 많이 부족하지만 애써왔다.

하지만 요새 한계를 종종 느낀다. 그러한 인간다움은 조직의 정치싸움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페북 탐라에 보이는 온갖 좋은 리더와 우아하고 멋진 조직은 거기에만 존재하는 것일 뿐 나의 타임라인에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누군가 칭찬의 독배를 마셔버렸고, 그 독배는 한번 맛을 들이면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아 그 자리를 내려오기 전에는 내가 독배를 들었구나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마 누구라도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면 독배를 성배로 잘못 알거나, 독배인줄 알고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리라.


그렇다면 일을 잘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잘러, 내가 생각한 일잘러와 현실의 일잘러에는 간극이 있다. 일이 주어졌을 때 내용을 파악하고, 필요한 리소스를 구성하고, R&R을 나누고, 일정에 맞춰 굴러가도록 윤활유를 계속 쳐주는 것..

나 같은 포지션에겐 그걸 잘 하는 사람이 일잘러였는데 아마도 난 한 가지를 놓친듯하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일을 주는 사람과의 끈끈함이다. 피하고만 싶고, 말섞임은 최소화하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는 진정성과 묵묵함을 나의 무기로 삼는다는 것은 작은 조직에나 가능할 뿐, 묵묵한 업무 처리는 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보이는 것으로만 파악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는것.


직원이 복지라고 들었는데.. 내 복지 어디에?

직원이 복지다 라고 누군가 얘기했다. 하지만 난 복지 혜택은 커녕 피해를 보고있는듯하다. 뭔가 해결해야하는 문제로 다가오는 사람들.. 대결구도를 만들고 싶지 않아도 대결구도가 되는 상황들. 내 주변의 많은 일잘러 언니들은 "차마" 간과 쓸개를 내주는 상황이 싫고 어렵고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하고 못하고 하다가 결국 피폐해지다 퇴사까지 감행한다. 그들을 보면 나는 너무 안타깝다. 왜 왜그래야하는거지? 능력 있고 그 누구보다 일을 잘하는데 나갈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이분들이 나갈 생각을 하나?

나는 그들에게 요새 용기를 북돋고 있다. 일을 잘 하기 위해 프로세스 중 하나에 간과 쓸개를 내주는 프로세스를 하나 더 넣자고. 그게 내가 좋아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그거 못할 것 뭐 있냐고, 남들은 실질적인 일은 안하고, 그 일만 하는데도 칭찬받는데, 우리는 실질적인 일만 하고 그 일을 못해서 칭찬은 커녕 구박만 받는 이 구조를 좀 타파해보자고.. 근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들이 왜 떠났는지

그동안 내가 따르던 사수가, 내가 존경하던 일잘러가 왜 회사를 떠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런 것이 힘들지 않았을까? 그 꼴을 결국 못 본 것은 아닐까? 일을 잘하고 못하고 보다 더 힘든 것. 그리고 거기서 이기지 못하면 패자가 되어 버리는 게임의 법칙.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배웠고 그들이 좋았는데.. 그들과 같다면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내가 배워온 건 다 틀려먹었다. 새 사람이 되거나 떠나거나!

결국 지금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찬찬히 생각이란걸 좀 해보자. 아 맞다.아재력! 내가 또 매번 뒷북을 쳐서 그렇지 한번 배우면 꽤 빠르게 습득하는 패스트러너니라. 이제 나는 새로운 아재로 거듭날 것이다. 칭찬 퀄리티에 따라 아재력을 구분할 것이다. 빤한 칭찬 1점~과한 것 같은데 들어도 기분이 안 나쁘고 엄청 좋아지는 칭찬은 10으로 하자.. 과한데 기분이 좋은 칭찬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니까, 연습하고 연습해서 10까지 만랩을 쌓아보자. 옳거니 구호도 외쳐보자.  

끝없는 칭찬

마르지않는 칭송

꿀 떨어지는 덕담

헥헥..아니 아직 레벨 1도 못 달았는데 영혼이 왜 이렇게 피폐해졌을까.. @_@...
간도 쓸개도 없고 무릎도 닳고 지문까지 안 보일 정도인데!!


한 길 사람 속

결국 하루만의 불 같은 분노를 누르고 박완서의 책을 읽다가 눈이 가는 구절이 있다.


"소위 명문가에서 며느리에게 가하는 압박과 긴장은 그 강도가 평범한 시집보다 훨씬 더하여 그야말로 설상가상이 된다. 당당함은 교만과 횡포가 될 수 있고, 자신만만한 긍지는 무리한 길들이기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명문가를 대기업이라고 하고 읽어보자;)


"인간성 속에는 길들여질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길들여지느니 망가지려는 부분도 있고, 평생 불변하는 부분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 속에 길들여질 수 없는 부분을 가장 소중하게 아낄 수도 있다. 아랫사람이니까 내 마음에 맞게 길들여야 한다는 생각처럼 위험한 윗사람의 교만은 없을 것이다. 그럴때 그윗사람이 피붙이이건 의리의 관계건 아랫사람에겐 언제고 벗어나기를 꿈꾸는 악몽에 불과한 존재가 될수밖에 없다."(지금 상황을 해결은 못해도 위로는 된다..)

.우리끼리클래스도 도움이 되었다. 인생 뭐 있냐. 행복하기 위해 내가 노력하는 수밖에.. 나의 손을 떠나는 여러가지 상황이 발생하지만, 그래도 인간답게 사람답게 반성하며 살아야지.(물론 아재력도 틈틈히 키워서, 비슷한 사람들을 대할 때 써먹을 것이다)

결국 지난주의 과한 일은, 주말에 아이를 혼내는 일로 이어졌다. 나의 나쁜 일버릇 중 하나가, 회사에서 털린 영혼을 가정에서 소리지르며 풀어버린 다는 것이다.. 휴.. 나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 즐겁게 사람들과 일을 하고, 보람을 느끼고,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 일을 하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괴물로 변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할 뿐이다.

201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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