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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Feb 25. 2024

로또 구매를 하면서 카드를 냈더니

서른일곱, 난생처음 로또를 구입하다


그렇다. 나는 불로소득, 횡재에 막연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일찌감치 드리워진 지배적인 생각은 "그럴 리가 없다."라는 정서다.


늘 노력한 그만큼만을 정확히 돌려받았던 인생이기에, 혹은 되려 노력보다 돌아오는 것이 적어 억울했던 일들이 먼저 떠올랐기에 경품 응모나 들인 공수에 비해 큰 것을 받을 수 있는 추첨 따위를 할 때 관심이 자연스레 사그라드는 이유는 정말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인생의 사건들 중에는 남들에게 어려운 기회가 다소 수월히 오는 경험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국 돌아보면 정신으로라도 그쪽에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나는 올해 2월 들어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일의 글쓰기를 시작하고 처음 일주일 넘게 모든 기록을 멈췄다. 아무것도 내어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얼마나, 어디까지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내 인생 그릇에 비해 훨씬 차고 넘치는 시련과 위기이기에 나는 멘붕상태에 놓여있다. 그래도 눈앞에 닥친 일들을 쳐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임을 알기에. 그저 그렇게 한 발짝씩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정말 홀로 걷고 있다. 모든 의사결정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된다. 이런 상황은 정말 사람을 끝없이 불안과 외로움, 고독으로 몰아넣는다.


그 과정에서 일주일 새 새로 생긴 나의 과제 중 하나는 우습게 들리겠지만, 매주 안내되는 번호에 따라 로또를 구매하는 일이다.


사실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 번도 로또를 구매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방법도 모르지만, 뭐 어떻게 되지 않겠나 싶어 잠시 정차가 가능한 집 주변 로또 판매점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로 가판대라거나 교통카드 충전소 같은 곳들이 나왔는데, 지리를 어느 정도 아는 곳으로 가보니 첫 번째 방문한 G*편의점은 판매를 안 하게 된 지 2년이 넘었다고 했고, 다음 가까운 곳을 갔을 땐 가판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둘러둘러 교통카드 충전 매대를 찾아 근처 공영에 차를 대고 갔더니, OMR카드 같이 생긴 용지와 컴퓨터 펜이 바깥으로 나와있었다. 날이 차고 받아 적을 숫자가 많을 것 같아, 펜을 빌리겠노라고 양해를 구하고 차로 돌아와 한참을 쳐다본다. 세로와 가로로 빽빽한 빈칸들에 어떤 순서로 칠해야 하는지 한참을 보다, 대충 느낌이 왔다. 총 5개의 덩어리를 세로로 배열해 둔 것 같았고 그 자리에 총 5개의 조합의 숫자를 메꾸는 것이었다.


신중하게 표기를 한 용지를 들고 매대로 돌아가니, 스캔을 하던 사장님이 다시 2장을 건네주며

"그 두장은 4번째 자리 숫자가 5개니 더 표기해서 줘요!"라고 하신다.
"예? 뭐가요?"


'아니 그렇게나 집중했는데 뭘 빼먹었지.' 고민하다 "다시 차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다시 빽.


다시 빈칸을 어렵게 채우고는 나는 아저씨에게 총 8개의 용지에 대한 값을 치르기 위해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동시에 아저씨는 내 얼굴과 카드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더니 눈으로 말했다.


'너 정말 처음이구나? 뭘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네?' 눈으로 모두 말한 그는 친절한 음성으로



아가씨 복권은 다 현금이에요.



잠시 사고 회로가 정지.


'그렇겠구나. 사행성 조장을 우려해서라도 복권 구매에 신용카드 결제 방식을 허용할 리가 없다. 나는 대체.... 나 정말 로또 처음 샀구나.'


종종 동료나 지인이 술자리의 즐거움으로 용지를 선물로 줘서 고이 접어 지갑에 넣어둔 적은 있지만 (그것도 그 결과를 한 번도 확인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직접 샀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뭔가 어디에 크게 하자가 있는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지옥 불구덩이 한가운데, 혹은 앞 뒤가 전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들어앉아있던 이 며칠의 무거움이 내 이 어이없는 무식함을 향한 실소 한 번에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본다.


어쩌면 이렇게 어이없게, 맥락 없게, 뒤죽박죽 대충 살다 가는 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이런 엄중함 속에서도 가판대에서 로또를 사고 있는 내가 그걸 증명하고 있지 않나?


다행히? 스펙터클 했던 로또 첫 구매는 5000원 2개 당첨이라는 소소한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부디 나는 이 과정에서 그가 얻고 싶었던 게 그게 뭐였든 얻고 싶다. 그의 답답함, 그의 공허함, 그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큰 빈칸에 일순간 아주 세속적이고도 속물적인 기쁨일지라도 함박웃음으로 가득 충만히 채워보고 싶다. 당첨금을 받게 된다면 모두 현금으로 뽑아 방바닥에 드러누워 돈벼락을 서로 맞아도 보고 다라라락 머니건도 쏴볼 일이다. 단언컨대 그것들이 그 공허를 채울 수는 없을 거다. 적어도 이렇게 울고 웃는 과정이 우리를 조금씩 채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매주 로또를 살 거다. 매주를 거듭할수록 더 능수능란하게 될 거다. 로또 베테랑이 되고 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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